윌슨 응이 해석한 '말러 장송행진곡'…절제로 완성한 큰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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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
한경아르떼필하모닉 공연
국공립교향악단 20곳과 함께
민간교향악단 3곳 초청돼 화제
지휘자 윌슨 응, 에스메콰르텟
쇤베르크 '현악 사중주' 협연
느린 서주로 시작한 앙상블
거칠고 입체적 바로크식 해석
앙코르로 '아다지에토' 마무리
그 어떤 총주보다 거대하게 밀려와
한경아르떼필하모닉 공연
국공립교향악단 20곳과 함께
민간교향악단 3곳 초청돼 화제
지휘자 윌슨 응, 에스메콰르텟
쇤베르크 '현악 사중주' 협연
느린 서주로 시작한 앙상블
거칠고 입체적 바로크식 해석
앙코르로 '아다지에토' 마무리
그 어떤 총주보다 거대하게 밀려와
예술의전당이 주최하는 교향악축제가 음악당 콘서트홀에서 열리고 있다. 올해는 국공립교향악단 20곳과 함께 탄탄한 실력을 갖춘 민간교향악단 3곳이 초청돼 화제가 됐다.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 심포니송과 함께 초청된 한경아르떼필하모닉의 공연이 지난 1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렸다. 수석객원지휘자 윌슨 응이 지휘봉을 잡았다.
이날 에스메콰르텟이 쇤베르크 ‘현악 사중주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을 협연했다. 신빈악파 작곡가 아르놀트 쇤베르크는 12음기법 등 난해한 음악으로 알려졌지만 1933년 쓴 이 작품은 바로크 작곡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의 합주협주곡 Op.6의 7번을 자유롭게 개작한 곡이다. 첼로를 제외하고 모두 서서 연주한 에스메콰르텟은 피치카토로 느린 서주를 시작했다. 호른과 보조를 맞춰 질서 정연한 오케스트라와 개성적인 현악 사중주단의 앙상블을 만들어갔다. 오후의 정원 같이 느껴진 2악장 서정적인 라르고를 지나 3악장 알레그로 그라치오소에 이어 피날레로 곡이 끝을 맺었다. 기존 헨델 곡에 비해 입자가 거칠고 입체적인 바로크 음악 같았다. 에스메콰르텟만의 앙코르가 더 인상적이었다. 작년 발매된 ‘Yessori’ 앨범의 타이틀곡이기도 한 여수연의 ‘옛소리’였다. 바이올린은 가야금, 비올라는 대금을 닮았고 첼로 몸통을 북처럼 두들기고 목소리도 내는 국악풍 곡이었다. 청중의 호응이 뜨거웠다. 2부에 윌슨 응과 한경아르떼필하모닉은 말러 교향곡 5번을 연주했다. 트럼펫이 팡파르를 연주하고 현이 장송행진곡을 이어갔다. 총주의 스케일은 매우 컸다. 공(gong)을 비롯한 타악기의 떨림과 금관악기가 ‘소리 반 공기 반’으로 이뤄진 질감을 형성했는데 이로 인해 습윤한 사운드가 홍수를 이루듯 흘러넘쳤다. 단호함과 호쾌함이 교차하는 가운데 한경아르떼필하모닉은 안정적이면서도 모험을 위한 여지를 남겨둔 채 도약하는 자세를 유지했다. 디테일에 신경 쓴 듯 풍성한 정보량을 품은 음의 덩어리가 객석으로 향했다.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악구를 꾹꾹 밟고 나아가는 연주가 이어졌다. 클레츠머(유대인의 전통음악 중 하나) 같은 부분은 애달픈 감정으로 실어 날랐다. 겉으로는 무심해 보였지만 그 저류가 도도했다.
2악장의 공격적인 도입부에서 저역현의 윤택함이 돋보였다. 고급스러운 야성미랄까. 분출하면서도 차곡차곡 쌓아가는 이성적인 연주는 절제와 연마를 바탕으로 하며 ‘스토이시즘’(감정의 영향을 받지 않는 상태)이란 단어를 연상시켰다. 무게중심이 잡힌 현과 타악 사이를 금관이 틈입하면서 두꺼운 사운드를 객석에 보냈다. 첼로군의 노래는 감동적이었는데, 따스함이 강조된 현악군이 연마된 소리를 내줬다. 느긋한 템포 속에서 바이올린의 최고음과 이례적인 힘으로 두드리는 팀파니가 인상적이었고 최후의 총주는 찬란했다.
3악장에서는 객원 호른수석 보라 데미르(베를린도이치심포니)의 크고도 놀라운 연주가 악단 전체를 견인했다. 벨 부분을 하늘로 치켜든 클라리넷이 절규했고 플루트의 지저귐이 어우러졌다. 빈 왈츠의 느낌 후 렌틀러로 전환될 때의 표현은 꿈결 같았다. 윌슨 응은 서두르지 않고 모든 소리를 다 내도록 독려했다. 호른과 첼로/비올라의 대화에서도 고독하기보다는 고급스러운 사운드가 흘렀다. 해석상 템포를 일부러 느리게 가져가다 점점 빠르게 하면서 다이내믹 레인지를 늘리는 효과를 여러 번 쓰는 것 같았다. 타악기의 세부가 명료하게 들리는 것도 이번 공연의 특징이었다.
하프 주자가 현에 손을 얹고 준비하는 게 보이더니 4악장 아다지에토가 시작됐다. ‘베니스에서 죽다’ ‘헤어질 결심’ ‘타르’ ‘마에스트로 번스타인’ 등 수많은 영화에 등장해 모르는 사람이 없어진 그 선율이다. 반음계가 ‘쿵’하고 내려앉을 때마다 하프가 허허로운 공백을 메워줬다. 현은 두꺼우면서도 따스하고 여유로웠다. 윌슨 응은 몇 군데에서 완급을 조절했고 바이올린군의 고음이 아름답게 벼려져 나오기도 했다. 대양을 헤엄치는 듯한 피날레는 잊히지 않을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아다지에토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5악장이 시작됐다. 각 악기군이 톱니바퀴처럼 갈마들며 맞아떨어졌다. 클라리넷과 플루트의 이야기가 뚜렷했다. 거대한 돌림노래 같은 이 악장의 한가운데서 단정하게 표정을 살리기도 했다. 막바지라 금관군의 긴장감이 풀어질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느긋하고 의연함을 유지했다. 팀파니의 연타 속에 그를 중심으로 좌우에 포진한 심벌즈의 타격은 장관을 이뤘다.
윌슨 응과 한경아르떼필하모닉은 앙코르로 아다지에토를 다시 한번 연주했다. 곡이 끝났어도 ‘삐’ 하는 휴대폰 동영상 촬영음이 정적을 깰 때까지 이어진, 1층부터 3층까지 자리한 청중의 무거운 침묵은 그 어떤 총주보다도 거대하게 다가왔다. 이날 공연은 윌슨 응으로서도 한경아르떼필하모닉으로서도 최고의 순간 중 하나로 기억될 것 같다.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음악 칼럼니스트
이날 에스메콰르텟이 쇤베르크 ‘현악 사중주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을 협연했다. 신빈악파 작곡가 아르놀트 쇤베르크는 12음기법 등 난해한 음악으로 알려졌지만 1933년 쓴 이 작품은 바로크 작곡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의 합주협주곡 Op.6의 7번을 자유롭게 개작한 곡이다. 첼로를 제외하고 모두 서서 연주한 에스메콰르텟은 피치카토로 느린 서주를 시작했다. 호른과 보조를 맞춰 질서 정연한 오케스트라와 개성적인 현악 사중주단의 앙상블을 만들어갔다. 오후의 정원 같이 느껴진 2악장 서정적인 라르고를 지나 3악장 알레그로 그라치오소에 이어 피날레로 곡이 끝을 맺었다. 기존 헨델 곡에 비해 입자가 거칠고 입체적인 바로크 음악 같았다. 에스메콰르텟만의 앙코르가 더 인상적이었다. 작년 발매된 ‘Yessori’ 앨범의 타이틀곡이기도 한 여수연의 ‘옛소리’였다. 바이올린은 가야금, 비올라는 대금을 닮았고 첼로 몸통을 북처럼 두들기고 목소리도 내는 국악풍 곡이었다. 청중의 호응이 뜨거웠다. 2부에 윌슨 응과 한경아르떼필하모닉은 말러 교향곡 5번을 연주했다. 트럼펫이 팡파르를 연주하고 현이 장송행진곡을 이어갔다. 총주의 스케일은 매우 컸다. 공(gong)을 비롯한 타악기의 떨림과 금관악기가 ‘소리 반 공기 반’으로 이뤄진 질감을 형성했는데 이로 인해 습윤한 사운드가 홍수를 이루듯 흘러넘쳤다. 단호함과 호쾌함이 교차하는 가운데 한경아르떼필하모닉은 안정적이면서도 모험을 위한 여지를 남겨둔 채 도약하는 자세를 유지했다. 디테일에 신경 쓴 듯 풍성한 정보량을 품은 음의 덩어리가 객석으로 향했다.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악구를 꾹꾹 밟고 나아가는 연주가 이어졌다. 클레츠머(유대인의 전통음악 중 하나) 같은 부분은 애달픈 감정으로 실어 날랐다. 겉으로는 무심해 보였지만 그 저류가 도도했다.
2악장의 공격적인 도입부에서 저역현의 윤택함이 돋보였다. 고급스러운 야성미랄까. 분출하면서도 차곡차곡 쌓아가는 이성적인 연주는 절제와 연마를 바탕으로 하며 ‘스토이시즘’(감정의 영향을 받지 않는 상태)이란 단어를 연상시켰다. 무게중심이 잡힌 현과 타악 사이를 금관이 틈입하면서 두꺼운 사운드를 객석에 보냈다. 첼로군의 노래는 감동적이었는데, 따스함이 강조된 현악군이 연마된 소리를 내줬다. 느긋한 템포 속에서 바이올린의 최고음과 이례적인 힘으로 두드리는 팀파니가 인상적이었고 최후의 총주는 찬란했다.
3악장에서는 객원 호른수석 보라 데미르(베를린도이치심포니)의 크고도 놀라운 연주가 악단 전체를 견인했다. 벨 부분을 하늘로 치켜든 클라리넷이 절규했고 플루트의 지저귐이 어우러졌다. 빈 왈츠의 느낌 후 렌틀러로 전환될 때의 표현은 꿈결 같았다. 윌슨 응은 서두르지 않고 모든 소리를 다 내도록 독려했다. 호른과 첼로/비올라의 대화에서도 고독하기보다는 고급스러운 사운드가 흘렀다. 해석상 템포를 일부러 느리게 가져가다 점점 빠르게 하면서 다이내믹 레인지를 늘리는 효과를 여러 번 쓰는 것 같았다. 타악기의 세부가 명료하게 들리는 것도 이번 공연의 특징이었다.
하프 주자가 현에 손을 얹고 준비하는 게 보이더니 4악장 아다지에토가 시작됐다. ‘베니스에서 죽다’ ‘헤어질 결심’ ‘타르’ ‘마에스트로 번스타인’ 등 수많은 영화에 등장해 모르는 사람이 없어진 그 선율이다. 반음계가 ‘쿵’하고 내려앉을 때마다 하프가 허허로운 공백을 메워줬다. 현은 두꺼우면서도 따스하고 여유로웠다. 윌슨 응은 몇 군데에서 완급을 조절했고 바이올린군의 고음이 아름답게 벼려져 나오기도 했다. 대양을 헤엄치는 듯한 피날레는 잊히지 않을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아다지에토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5악장이 시작됐다. 각 악기군이 톱니바퀴처럼 갈마들며 맞아떨어졌다. 클라리넷과 플루트의 이야기가 뚜렷했다. 거대한 돌림노래 같은 이 악장의 한가운데서 단정하게 표정을 살리기도 했다. 막바지라 금관군의 긴장감이 풀어질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느긋하고 의연함을 유지했다. 팀파니의 연타 속에 그를 중심으로 좌우에 포진한 심벌즈의 타격은 장관을 이뤘다.
윌슨 응과 한경아르떼필하모닉은 앙코르로 아다지에토를 다시 한번 연주했다. 곡이 끝났어도 ‘삐’ 하는 휴대폰 동영상 촬영음이 정적을 깰 때까지 이어진, 1층부터 3층까지 자리한 청중의 무거운 침묵은 그 어떤 총주보다도 거대하게 다가왔다. 이날 공연은 윌슨 응으로서도 한경아르떼필하모닉으로서도 최고의 순간 중 하나로 기억될 것 같다.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