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처럼 쌓인 군침 도는 '볼롱의 버터'…그런데 왜, 상온에 놓았을까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맛있는 미술관
냉장기술 대중화 이전 시기
버터는 상온에 두고 먹던 식재료
유럽 버터는 지방 함유 82% 달해
풍미 가득했던 그시절 식탁 풍경 떠올라
냉장기술 대중화 이전 시기
버터는 상온에 두고 먹던 식재료
유럽 버터는 지방 함유 82% 달해
풍미 가득했던 그시절 식탁 풍경 떠올라

음식평론가이다 보니 나는 이런 작품을 보고도 좀 결이 다른 걱정을 한다. 아니, 이 많은 버터를 그냥 상온에 둔 거야? 그리고 바로 나의 멍청함을 깨닫는다. ‘버터 더미’는 1875~1885년 사이에 그려졌고 우리가 아는, 프레온 가스를 냉매로 쓰는 냉장고는 1918년이 돼서야 미국 제너럴일렉트릭이 대량 생산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냉장기술 대중화 이전이었으니 버터는 그렇게 상온에 두고 먹는 식재료였을 것이다.
지방 함유량이 높은 버터일수록 냉장고에서 꺼내더라도 상온에서 금방 부드러워지며 제맛과 질감을 내준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버터는 지방 함유량이 최소 82%에 이른다. 볼롱의 버터도 지방이 매우 풍부했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주재료인 크림을 발효시켜 느끼함도 덜하다.
그렇다면 볼롱은 자신이 먹으려고 저 많은 버터를 산 걸까? 그랬을 것 같지 않다. 일단 버터의 풍모가 갓 만들어 나온 듯 보인다. 버터는 우유의 크림을 원심력으로 분리한 뒤 반죽해 물기를 최대한 걷어내 만든다. 볼롱의 버터를 자세히 보면 모양을 막 잡아낸 지방의 결의 생생하다. 두르고 있는 천 또한 당시 버터의 보관에 많이 쓰인 눈이 고운 면포 같다.
말하자면 버터가 모델로 출연했을 거라는 말인데, 이처럼 정물이 볼롱의 작품 세계를 아주 풍요롭게 구축해 줬다. ‘춘희’의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가 팬이었다는 이야기가 잘 알려져 있듯, 볼롱의 작품은 오늘날 상당수가 개인 소장품이다. ‘버터 더미’는 미국 워싱턴DC 국립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이용재 음식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