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 용산 사옥 외관 모습 /사진=한경DB
하이브 용산 사옥 외관 모습 /사진=한경DB
최근 만난 한 공연계 종사자는 기자에게 "하이브 사옥 투어를 할 방법이 없냐"고 물었다. 뜬금없이 무슨 말이냐고 묻자 "고등학생인 조카가 학교에 내는 희망 진로에 '하이브 직원'이라고 적었다. 학생들한테는 이미 대기업으로 불린다는데 얼마나 대단한지 직접 가서 한번 보고 싶어서"라고 배경을 전했다.

방탄소년단(BTS)을 전 세계적인 그룹으로 키워낸 하이브(352820)가 자산 규모 5조원을 넘기며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 최초로 대기업집단 편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2020년 10월 상장하며 가요 기획사 후발주자로 나선 하이브는 몇 년 새 공격적으로 국내외 레이블을 인수하고, 사업 다각화를 이루며 단숨에 몸집을 불렸다. 그런 하이브를 두고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대기업이 따로 없다"는 말이 나오곤 했는데, 실제로 대기업 진입 가능성이 코앞으로 다가온 셈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기업집단 일반 계열사의 자산 총액과 금융 계열사의 자본 총액을 더한 자산인 '공정 자산'이 5조원을 넘긴 곳을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한다. 하이브의 자산은 2021년 4조7289억원, 2022년 4조8704억원에 이어 지난해 5조3457억원으로 처음 5조원을 넘겼다.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지분 31.57%를 보유한 방시혁 의장은 동일인(총수)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크다.

한 가요 관계자는 "과거 열악한 환경에서 주먹구구식 운영 이미지를 갖고 있었던 연예계에서 첫 대기업 지정 가능성이 나왔다는 자체가 고무적"이라면서 "대형 기획사를 위주로 K팝 산업이 굉장히 체계적으로 시스템화됐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을 밝혔다.

이어 "하이브는 엔터뿐만 아니라 아티스트 IP를 활용한 플랫폼, 게임 등의 사업군까지 내재화했기 때문에 단순히 엔터사의 영역으로만 볼 순 없을 것"이라며 대기업 지정은 예상된 수순이었다고 덧붙였다.
(시계방향) 그룹 세븐틴, 르세라핌,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뉴진스 /사진=한경DB, 하이브
(시계방향) 그룹 세븐틴, 르세라핌,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뉴진스 /사진=한경DB, 하이브
외연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한때 본업에 소홀하다는 지적이 따르기도 했지만, 곧장 하이브는 '멀티 레이블 체제'를 통해 내실을 키우는 데 주력했다. 상장 전 인수한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 쏘스뮤직, KOZ엔터테인먼트에 추가로 CJ ENM과의 합작 회사였던 빌리프랩을 완전 인수했고, SM엔터테인먼트 출신 민희진을 영입해 새 레이블 어도어(ADOR)도 설립했다.

각 레이블이 독자적인 권한을 행사하며 돌아가도록 하는 '멀티 레이블 체제'는 하이브의 핵심 전략이다. 이에 따라 '하이브 한솥밥' 개념 없이 레이블별로 준비된 아티스트들이 활동에 나설 수 있었다. 컴백 시기 '눈치 보기'가 사라지면서 아티스트 활동 주기가 짧아졌고, 결과적으로는 공백없이 모든 라인업을 가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프로듀싱 측면에서도 독립성을 유지했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빅히트뮤직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쏘스뮤직 르세라핌, 빌리프랩 엔하이픈·아일릿 등의 음악에 관여하며, 민희진 어도어 대표는 뉴진스에 전념한다. 플레디스 아티스트는 한성수 마스터 프로페셔널이 총괄하며, KOZ엔터테인먼트는 가수 지코가 진두지휘한다.

일각에서는 각개전투의 전형으로 레이블 통합 시너지는 약하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브랜드 공연으로 내세웠던 '하이브 레이블즈 콘서트'는 일부 팀들이 빠지고 단합하는 모습을 보기 어려워 간판을 내리고 페스티벌 형식의 '위버스콘'으로 탈바꿈한 상태다.

하지만 기업 측면에서는 유수의 성과를 내고 있는 '멀티 레이블 체제'다. 하이브는 지난해 매출 2조1780억원을 달성해 역대 최고를 달성했다.

레이블별로 살펴보면 지난해 ▲빅히트뮤직(방탄소년단·투모로우바이투게더) 5523억 ▲플레디스(백호·세븐틴·프로미스나인) 3271억 ▲어도어(뉴진스) 1102억 ▲빌리프랩(엔하이픈) 912억 ▲쏘스뮤직(르세라핌) 611억 ▲KOZ엔터(지코·보이넥스트도어) 194억의 매출을 달성했다. 영업익은 각각 1775억, 769억, 335억, 131억, 119억, 90억이다.

전 레이블이 가동되며 군 복무 중인 방탄소년단의 빈자리까지 꽉 채우고 있다. 세븐틴은 지난해 1593만장의 앨범을 판매해 국내 아티스트 앨범 판매량 1위를 차지했고,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650만장으로 3위, 뉴진스가 426만장으로 4위, 엔하이픈이 388만장으로 6위, 르세라핌이 195만장으로 16위를 기록했다. 특히 방탄소년단 멤버들도 입대 전 솔로로 '열일'하며 성과를 냈다. 입대 후에도 사전에 작업했던 결과물들을 공개하며 그야말로 공백없는 공백기를 나고 있다.
그룹 투어스(TWS) /사진=한경DB
그룹 투어스(TWS) /사진=한경DB
그룹 아일릿(ILLIT) /사진=한경DB
그룹 아일릿(ILLIT) /사진=한경DB
바통은 그대로 신인 주자들이 이어받았다. 투어스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가 음원차트서 호성적을 거둔 데 이어 아일릿 '마그네틱(Magnetic)'까지 정상에 올랐다. 신인이 잇달아 성공하며 든든한 성장 동력을 얻은 셈이다. 여기에 컴백을 앞둔 보이넥스트도어의 신보 선주문량도 전작 대비 40% 증가한 57만장을 돌파했다.

다만 하이브의 1분기 실적과 관련해서는 컴백 팀이 르세라핌 한 팀에 그쳤고, 신인이 두 팀이나 데뷔하면서 투입됐을 비용을 고려해 부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2분기부터 핵심 아티스트들의 활동이 본격화하며 기대감이 높은 상황이다. 지난 1일 컴백한 투모로우바이투게더를 시작으로 세븐틴, 엔하이픈, 뉴진스 등이 출격한다. 다수의 공연도 예정돼 있다.

임수진 대신증권 연구원은 "1분기 활동 횟수 감소로 YoY(전년 동기 대비 증감률) 실적 감소는 불가피하다"면서도 "이는 2분기에 활동이 집중된 영향으로 연간 매출에서의 변화는 없어 부정적인 이슈는 아니다. 오히려 미래 성장에 중요한 신인의 경우 모두 성공적인 데뷔를 기록해 경쟁력이 강화된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안도영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1분기 부진으로 주가 반등이 어려운 상황이나 2분기 실적 반등과 6월부터 시작되는 BTS 멤버들의 전역, 신인 라인업의 빠른 이익 기여, UMG와의 파트너십, 해외 레이블 실적 개선, 위버스 수익화 등 기대할 요소들이 많다"고 짚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