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멋대로인 산책에 동행하고픈 연주자, 첼리스트 박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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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구본숙의 Behind the Scenes
소박한 부드러움과 조용한 열정 돋보여
서울시향 제2수석 등으로 활동
소박한 부드러움과 조용한 열정 돋보여
서울시향 제2수석 등으로 활동
나는 소요(逍遙)하길 좋아한다. 그냥 어슬렁거린다고 표현해도 같은 의미인데, 하필 이런 표현을 쓰는 데는 의미가 있다. 『장자』 첫머리를 장식하는 편은 제목이 소요유(逍遙遊)인데 ‘거리낌 없이 자유롭고 편하게 노닌다’는 뜻이란다. 사실 장자가 말하는 ‘노닌다’는 것은 실제로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완전한 정신적 자유를 뜻한다고 한다. 나 또한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이고 싶지만, 그게 어디 뜻대로 되나. 여건이 허락하는 한, 일단 몸이라도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싶다. 그게 장자가 말하는 것에 한참 못 미치는 반쪽짜리 소요이라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약속이 없을 때면 이따금 작업실까지 정해진 경로가 아닌 낯선 동네를 산책하듯 헤매며 걷기를 좋아한다. 매일 똑같은 길로 다니는 건 권태롭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무작정 걷다 보면 복잡했던 머리가 정리되기도 하고 반대로 아무 생각이 안 날 때도 있지만, 후자라고 해서 무익하다고는 결코 느끼지 않는다. 아니, 실제로는 후자가 더 유익하지 않을까. 나를 비롯한 현대인은 대개 생각이 너무 많다. 머릿속에 휴식을 줄 필요가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머리가 휴식을 취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몸을 쓸 때 머리가 쉬는 법이다. 그래서 난 생각의 고삐를 놓은 채, 때론 발걸음이 어디로 향하는지조차 의식하지 않고 여기저기 다니는 그 시간이 너무나 즐겁고 소중하다. 무작정 걸으면서 커피 한 잔 사 들고 사람 구경, 동네 구경을 하곤 한다. 어지러운 선로 위 고가를 걸으며 열차가 지나다니는 것을 보기도 하고 재래시장 사이를 걸으며 상인들의 호객 행위도 들으며 묵묵히 걷고 또 걷는다. 걸음을 걷다가 갑자기 떠오른 감정과 생각을 휴대폰 메모장에 기록해두기도 하는데, 이것이 쌓여 작업 노트의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또한 뭔가 그럴싸한 생각을 찾으려고 애쓰는 것은 아니다. 목적 없이 적은 단어나 문장들은 시간이 지난 뒤에 보면 나 자신도 ‘이걸 왜 썼지?’ 싶을 때가 있다. 그냥 그 순간에, 그 생각들이 그저 나를 찾아왔다 떠나간 것일 게다. 말하자면 생각이 내 머릿속을 소요하다 간 셈이다. 그렇기에 나는 생각을 굳이 붙잡으려 애쓰지 않는다. 머물 만하면 머물 것이고, 아니면 그냥 떠나는 것이다.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평생 같은 시각에 산책을 했기에 마을 사람들이 칸트를 보고 시계바늘을 조정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 일관성은 참 대단한 것이지만, 나로서는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히는 기분이다. 나는 내킬 때마다 산책하지만, 보통 날이 화창하고 걷기 좋은 오전과 밤 산책을 선호하는 편이다. 어디로, 얼마나 걸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충분히 걸었다는 생각이 드는 시점이 돌아설 때이다.
이처럼 제멋대로인 산책에 동행하고픈 연주자가 하나 있다. 첼리스트 박진영. 세계 여러 내로라하는 오케스트라에서 객원 수석으로 요청을 많이 받는 연주자이다. 색깔이 다른 오케스트라마다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실력과 조화를 갖춘 능력자라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정체성이 없는 노력은 남을 무조건 좇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던가. 또 『장자』를 인용하게 되는데, 한단지보(邯鄲之步)라는 사자성어가 바로 그런 경우를 가리키는 말이다. 하지만 박진영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는 오케스트라와 실내악에 잘 스며들면서도 솔리스트로서의 정체성도 확실한 연주자이다. 등 뒤로 따듯한 햇살을 받으며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살아오면서 가지는 생각들,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 소소하게 대화를 할 수 있는 만남을 가지고 싶은 사람이다. 오랫동안 나는 여러 무대에서 그녀를 지켜보았지만 아직 개인적인 면모까지 알지는 못한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더 궁금하고, 더 잘 알았으면 싶은 인물이기도 하다.
박진영은 14세에 커티스 음악원에 입학해 2014년 서울시향의 제2수석으로 있었고 스무 살 무렵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객원단원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故박성용영재특별상을 수상했을때 개인적으로 열렬한 응원을 보내기도 한 기억이 난다. 이미 미국에서 두 차례에 걸쳐 크리스토프 에셴바흐의 지휘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데뷔하기도 했고, 수많은 수상 경력이 있으며 실내악에 남다른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안네 조피 무터,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브루노 카니노 등 세계적인 음악가들과 실내악을 연주했고 2021년에는 오스트리아의 체임버 오케스트라 ‘카메라타 잘츠부르크’의 수석 첼리스트로 임용되었다. 카메라타 잘츠부르크는 1952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스승이었던 전설적인 지휘자 베른하르트 파움가르트너가 창단한 연주단체로, 유럽의 유서 깊은 체임버 오케스트라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그밖에 첼로프로젝트 음악감독, 첼리스타 첼로 앙상블 멤버, 서울챔버뮤직소사이어티 예술감독으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박진영은 2016년에는 고음악 거장 바로크 첼로의 거장 안너 빌스 (Anner Bylsma 1934~2019)의 요청으로 그가 쓴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에 대한 책을 한국어로 번역했다. 안너 빌스마는 1998년 영국의 클래식 음악 잡지 <Classic CD>에 ‘가장 위대한 첼리스트 여섯 명’에 당시 아직 생존해 있던 로스트로포비치와 함께 선정된 적이 있는 거장 첼리스트이다. 박진영 첼리스트에 대한 이분의 지목과 애정으로 번역본 책이 나왔다고 들었다. 이런 지적인 면모가 그녀의 연주에도 담겨있는 게 아닌가 싶다. 2023년 12월, 그녀가 내 작업실에 온 적이 있다. 짧은 국내 일정에 들렀는데, 다정다감한 목소리와 기분 좋은 미소는 여전했다. 소박한 부드러움과 조용한 열정이 보이는 연주자이다. 발터 벤야민의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 나오는 문장인데, “사진 초창기에 초상사진이 사진의 중심부를 이루었고, 초상사진에서 아우라가 마지막으로 스쳐 지나간 것은 사람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표정에서이다. 멜랑콜리하고 그 어느 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아름다움의 비결은 바로 이러한 아우라이다”라고 한다. 촬영 내내 미소를 띠고 있던 외적인 아름다움도 매력적이었지만 잠깐 이야기를 나눠보니 더욱 궁금해지는 연주자였다. 외적인 사교성과 내적인 치열함이 잘 균형을 이룬 인물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함께 거닌다면 무슨 얘기를 하게 될까. 아직 생각한 것은 없다. 어쩌면 아무 말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 산책에는 정해둔 것이 없기에 이 경우에도 미리 무엇을 정해두지 않으려 한다. 내딛는 발걸음과 이런저런 풍경을 마주하며 짓는 표정 등을 보면 나의 목적 없는 산책, 아니 소요를 함께 즐기는지 알 수 있을 것이고, 즐긴다면 나로서는 그것으로 충분하니까. /구본숙 사진작가
그래서 나는 약속이 없을 때면 이따금 작업실까지 정해진 경로가 아닌 낯선 동네를 산책하듯 헤매며 걷기를 좋아한다. 매일 똑같은 길로 다니는 건 권태롭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무작정 걷다 보면 복잡했던 머리가 정리되기도 하고 반대로 아무 생각이 안 날 때도 있지만, 후자라고 해서 무익하다고는 결코 느끼지 않는다. 아니, 실제로는 후자가 더 유익하지 않을까. 나를 비롯한 현대인은 대개 생각이 너무 많다. 머릿속에 휴식을 줄 필요가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머리가 휴식을 취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몸을 쓸 때 머리가 쉬는 법이다. 그래서 난 생각의 고삐를 놓은 채, 때론 발걸음이 어디로 향하는지조차 의식하지 않고 여기저기 다니는 그 시간이 너무나 즐겁고 소중하다. 무작정 걸으면서 커피 한 잔 사 들고 사람 구경, 동네 구경을 하곤 한다. 어지러운 선로 위 고가를 걸으며 열차가 지나다니는 것을 보기도 하고 재래시장 사이를 걸으며 상인들의 호객 행위도 들으며 묵묵히 걷고 또 걷는다. 걸음을 걷다가 갑자기 떠오른 감정과 생각을 휴대폰 메모장에 기록해두기도 하는데, 이것이 쌓여 작업 노트의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또한 뭔가 그럴싸한 생각을 찾으려고 애쓰는 것은 아니다. 목적 없이 적은 단어나 문장들은 시간이 지난 뒤에 보면 나 자신도 ‘이걸 왜 썼지?’ 싶을 때가 있다. 그냥 그 순간에, 그 생각들이 그저 나를 찾아왔다 떠나간 것일 게다. 말하자면 생각이 내 머릿속을 소요하다 간 셈이다. 그렇기에 나는 생각을 굳이 붙잡으려 애쓰지 않는다. 머물 만하면 머물 것이고, 아니면 그냥 떠나는 것이다.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평생 같은 시각에 산책을 했기에 마을 사람들이 칸트를 보고 시계바늘을 조정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 일관성은 참 대단한 것이지만, 나로서는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히는 기분이다. 나는 내킬 때마다 산책하지만, 보통 날이 화창하고 걷기 좋은 오전과 밤 산책을 선호하는 편이다. 어디로, 얼마나 걸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충분히 걸었다는 생각이 드는 시점이 돌아설 때이다.
이처럼 제멋대로인 산책에 동행하고픈 연주자가 하나 있다. 첼리스트 박진영. 세계 여러 내로라하는 오케스트라에서 객원 수석으로 요청을 많이 받는 연주자이다. 색깔이 다른 오케스트라마다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실력과 조화를 갖춘 능력자라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정체성이 없는 노력은 남을 무조건 좇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던가. 또 『장자』를 인용하게 되는데, 한단지보(邯鄲之步)라는 사자성어가 바로 그런 경우를 가리키는 말이다. 하지만 박진영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는 오케스트라와 실내악에 잘 스며들면서도 솔리스트로서의 정체성도 확실한 연주자이다. 등 뒤로 따듯한 햇살을 받으며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살아오면서 가지는 생각들,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 소소하게 대화를 할 수 있는 만남을 가지고 싶은 사람이다. 오랫동안 나는 여러 무대에서 그녀를 지켜보았지만 아직 개인적인 면모까지 알지는 못한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더 궁금하고, 더 잘 알았으면 싶은 인물이기도 하다.
박진영은 14세에 커티스 음악원에 입학해 2014년 서울시향의 제2수석으로 있었고 스무 살 무렵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객원단원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故박성용영재특별상을 수상했을때 개인적으로 열렬한 응원을 보내기도 한 기억이 난다. 이미 미국에서 두 차례에 걸쳐 크리스토프 에셴바흐의 지휘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데뷔하기도 했고, 수많은 수상 경력이 있으며 실내악에 남다른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안네 조피 무터,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브루노 카니노 등 세계적인 음악가들과 실내악을 연주했고 2021년에는 오스트리아의 체임버 오케스트라 ‘카메라타 잘츠부르크’의 수석 첼리스트로 임용되었다. 카메라타 잘츠부르크는 1952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스승이었던 전설적인 지휘자 베른하르트 파움가르트너가 창단한 연주단체로, 유럽의 유서 깊은 체임버 오케스트라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그밖에 첼로프로젝트 음악감독, 첼리스타 첼로 앙상블 멤버, 서울챔버뮤직소사이어티 예술감독으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박진영은 2016년에는 고음악 거장 바로크 첼로의 거장 안너 빌스 (Anner Bylsma 1934~2019)의 요청으로 그가 쓴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에 대한 책을 한국어로 번역했다. 안너 빌스마는 1998년 영국의 클래식 음악 잡지 <Classic CD>에 ‘가장 위대한 첼리스트 여섯 명’에 당시 아직 생존해 있던 로스트로포비치와 함께 선정된 적이 있는 거장 첼리스트이다. 박진영 첼리스트에 대한 이분의 지목과 애정으로 번역본 책이 나왔다고 들었다. 이런 지적인 면모가 그녀의 연주에도 담겨있는 게 아닌가 싶다. 2023년 12월, 그녀가 내 작업실에 온 적이 있다. 짧은 국내 일정에 들렀는데, 다정다감한 목소리와 기분 좋은 미소는 여전했다. 소박한 부드러움과 조용한 열정이 보이는 연주자이다. 발터 벤야민의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 나오는 문장인데, “사진 초창기에 초상사진이 사진의 중심부를 이루었고, 초상사진에서 아우라가 마지막으로 스쳐 지나간 것은 사람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표정에서이다. 멜랑콜리하고 그 어느 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아름다움의 비결은 바로 이러한 아우라이다”라고 한다. 촬영 내내 미소를 띠고 있던 외적인 아름다움도 매력적이었지만 잠깐 이야기를 나눠보니 더욱 궁금해지는 연주자였다. 외적인 사교성과 내적인 치열함이 잘 균형을 이룬 인물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함께 거닌다면 무슨 얘기를 하게 될까. 아직 생각한 것은 없다. 어쩌면 아무 말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 산책에는 정해둔 것이 없기에 이 경우에도 미리 무엇을 정해두지 않으려 한다. 내딛는 발걸음과 이런저런 풍경을 마주하며 짓는 표정 등을 보면 나의 목적 없는 산책, 아니 소요를 함께 즐기는지 알 수 있을 것이고, 즐긴다면 나로서는 그것으로 충분하니까. /구본숙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