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할 여친 잔혹 살해…"191회 찔렀는데 징역 17년뿐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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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소음→경제적 곤궁→모욕당했다" 뚜렷한 범행동기 없어
유족 "우발적 범행 판단 이해 불가…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원해" "저 같으면 내가 죽인 아이의 엄마가 저기 와 있으면 '잘못했다'고 할 것 같아요.
제가 있는 걸 봤잖아요.
'어머니, 잘못했어요' 말 한마디 할 줄 알았어요.
저는 그 소리를 기다렸는데…"
결혼을 약속한 동거남에게 흉기로 무려 200회 가까이 찔려 잔혹하게 살해당한 정혜주(사망 당시 24세)씨의 모친 차경미(54)씨는 지난달 20일 가해자 류모(28)씨의 살인 사건 항소심 재판이 열린 춘천지법을 찾았다.
사건 발생 이후 한 줌의 재가 될 때까지 딸의 얼굴도 보지 못했다는 차씨. 혹시나 가해자가 자신을 향해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법정을 찾았지만, 아무런 말도 들을 수 없었다.
공교롭게도 재판이 열린 이날은 '그 사건'만 없었다면 딸 혜주씨와 가해자가 신혼여행을 보내고 있을 시기였다.
소소한 행복을 꿈꿨던 혜주씨. 그는 결혼을 약속했던 류씨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혜주씨는 지난해 7월 24일 낮 12시 47분께 강원 영월군 집에서 류씨에게 살해당했다.
불과 40여분 전 류씨에게 '잘래', '졸려'라는 메시지를 보낸 뒤 집에서 잠을 청하며 쉬고 있었던 혜주씨는 류씨가 휘두른 흉기에 온몸을 찔렸다.
부검 결과 류씨가 찌른 횟수는 총 191회. 류씨가 "제가 여자친구를 죽였어요", "여자친구를 난도질했거든요"라며 112에 스스로 신고한 시각은 낮 12시 53분.
단 6분 만에 이뤄진 잔혹한 범행이었지만, 당최 범행 동기를 찾을 수 없었다.
계획적이라고 보기엔 범행 직전 엘리베이터를 탄 모습은 너무나 평범했고 미리 준비한 흉기도 없었다.
혜주씨와의 다툼이 원인이라기엔 두 사람이 주고받은 메시지도 너무나 일반적이었다.
전날 밤 혜주씨가 아르바이트하는 카페의 폐쇄회로(CC)TV를 봐도 여자친구의 일을 도와주는 다정한 남자친구의 모습만 관찰될 뿐이었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혜주씨가 살해당할 이유가 없었고, 류씨가 털어놓은 범행 동기도 비상식적이었다.
류씨가 경찰에 털어놓은 첫 범행 동기는 '층간소음 스트레스'였다.
1년여 전부터 옆집 아이가 일으키는 소음으로 인해 옆집과 112 신고 또는 고소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이야기였다.
검찰 조사 단계에 들어서는 결혼을 앞두고 빚만 늘어날 뿐 경제적으로 곤궁한 상황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쌓이던 중 문득 '혜주씨를 살해하면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순간적으로 실행에 옮겼다고 했다.
그러나 1심 재판에서는 "피해자로부터 '정신지체냐'라는 말을 듣고 격분해 범행했다"고 진술을 바꿨다.
차경미씨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어떤 이유든 간에 191회나 찔러 죽일만한 이유가 되느냐"고 반문했다.
차씨는 "100번 양보해서 모욕적인 말을 들어서 우발적으로 범행했다고 할지라도, 우발적이라는 게 한두 번 찌르는 게 우발적이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제1형 당뇨병(소아당뇨병)을 안고 태어난 혜주씨는 주삿바늘을 달고 살다시피 할 정도로 몸이 불편했다.
"사는 게 중요하지, 학교가 뭐가 중요하냐"는 의사 선생님의 야단에도 꿋꿋하게 학교와 병원에 오가며 초·중·고등학교 졸업장을 품에 안았다.
세 자녀 중 맏딸이었던 혜주씨는 가족들과 마트에 가서 먹고 싶은 걸 가져오라고 하면 부모님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 사탕 하나, 껌 하나만 들고 올 정도로 속이 깊었다.
그런 혜주씨가 지인 소개로 류씨를 만난 건 2022년 봄이었다.
그해 3월 추간판탈출증(디스크) 수술을 하고 병원에 입원해 있던 혜주씨를 류씨가 자주 병문안 오면서 두 사람은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처음엔 말렸어요.
내 딸이 몸이 너무 많이 아프고, 너는 외아들이라 부모님의 기대가 있을 테니 결혼을 전제로 만나지 말고 그냥 친구처럼 만나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저희 부모님도 몸이 불편하셔서 아픈 사람 마음을 잘 안다'면서 자기가 얼마든지 보듬어 줄 수 있다더라고요.
"
서로 보듬고 애쓰는 모습에 차씨도 두 사람의 뜻을 꺾을 수 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2024년 3월 16일 결혼식을 올리기로 하고 공공임대주택에서 2022년 11월부터 동거를 시작했다.
혜주씨는 류씨 혼자 생활비를 감당하게 하는 것이 미안해 의료수급을 포기하고, 카페와 아이스크림 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만 두 탕을 뛰며 생활비를 보탰다.
애초에 예물이나 예단 따위는 생략하기로 했다.
2023년 9월에 류씨가 숙소를 제공하는 충남지역 회사로 직장을 옮기기로 했고, 10월엔 웨딩 촬영 계획을 잡는 등 결혼 준비를 두고 이렇다 할 말다툼이 오가지도 않았다.
차씨는 사위도 자식이라고 여기고 류씨를 가족처럼 살갑게 대했다.
하지만 류씨의 끔찍한 범행으로 인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정신병원까지 입원했던 차씨가 정신을 차리고 난 사이 류씨는 지난 1월 춘천지법 영월에서 징역 17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층간소음 문제와 경제적 곤궁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살해했다는 점이 선뜻 이해되지 않고, 이례적인 범행동기를 가질 만한 정신질환도 없었던 점을 근거로 피해자로부터 '정신지체냐'라는 말을 듣고 우발적으로 범행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범행 당시 일시적인 정신 마비로 인한 심신상실 또는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다"는 류씨 측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은 징역 25년을 구형했으나 재판부는 검찰이 유족에게 지급한 유족구조금을 류씨 측이 구상금으로 검찰에 지급한 사정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삼아 징역 17년을 내렸다.
검찰과 피고인이 모두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한 이 사건은 오는 17일 선고를 앞두고 있다.
차씨는 "어차피 우리나라는 사형이 폐지된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을 원한다"고 말했다.
"17년을 받든, 20년을 받든, 30년을 받든, 우리 딸은 돌아오지 않아요.
하지만 17년은 합당하지 않아요.
누가 봐도 납득할 만한 죗값을 치러야 류씨도 이 세상에 나왔을 때 당당하게 설 수 있지 않겠어요.
그래야 저도 죄를 용서하지 않을까 싶어요…"
/연합뉴스
유족 "우발적 범행 판단 이해 불가…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원해" "저 같으면 내가 죽인 아이의 엄마가 저기 와 있으면 '잘못했다'고 할 것 같아요.
제가 있는 걸 봤잖아요.
'어머니, 잘못했어요' 말 한마디 할 줄 알았어요.
저는 그 소리를 기다렸는데…"
결혼을 약속한 동거남에게 흉기로 무려 200회 가까이 찔려 잔혹하게 살해당한 정혜주(사망 당시 24세)씨의 모친 차경미(54)씨는 지난달 20일 가해자 류모(28)씨의 살인 사건 항소심 재판이 열린 춘천지법을 찾았다.
사건 발생 이후 한 줌의 재가 될 때까지 딸의 얼굴도 보지 못했다는 차씨. 혹시나 가해자가 자신을 향해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법정을 찾았지만, 아무런 말도 들을 수 없었다.
공교롭게도 재판이 열린 이날은 '그 사건'만 없었다면 딸 혜주씨와 가해자가 신혼여행을 보내고 있을 시기였다.
소소한 행복을 꿈꿨던 혜주씨. 그는 결혼을 약속했던 류씨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혜주씨는 지난해 7월 24일 낮 12시 47분께 강원 영월군 집에서 류씨에게 살해당했다.
불과 40여분 전 류씨에게 '잘래', '졸려'라는 메시지를 보낸 뒤 집에서 잠을 청하며 쉬고 있었던 혜주씨는 류씨가 휘두른 흉기에 온몸을 찔렸다.
부검 결과 류씨가 찌른 횟수는 총 191회. 류씨가 "제가 여자친구를 죽였어요", "여자친구를 난도질했거든요"라며 112에 스스로 신고한 시각은 낮 12시 53분.
단 6분 만에 이뤄진 잔혹한 범행이었지만, 당최 범행 동기를 찾을 수 없었다.
계획적이라고 보기엔 범행 직전 엘리베이터를 탄 모습은 너무나 평범했고 미리 준비한 흉기도 없었다.
혜주씨와의 다툼이 원인이라기엔 두 사람이 주고받은 메시지도 너무나 일반적이었다.
전날 밤 혜주씨가 아르바이트하는 카페의 폐쇄회로(CC)TV를 봐도 여자친구의 일을 도와주는 다정한 남자친구의 모습만 관찰될 뿐이었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혜주씨가 살해당할 이유가 없었고, 류씨가 털어놓은 범행 동기도 비상식적이었다.
류씨가 경찰에 털어놓은 첫 범행 동기는 '층간소음 스트레스'였다.
1년여 전부터 옆집 아이가 일으키는 소음으로 인해 옆집과 112 신고 또는 고소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이야기였다.
검찰 조사 단계에 들어서는 결혼을 앞두고 빚만 늘어날 뿐 경제적으로 곤궁한 상황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쌓이던 중 문득 '혜주씨를 살해하면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순간적으로 실행에 옮겼다고 했다.
그러나 1심 재판에서는 "피해자로부터 '정신지체냐'라는 말을 듣고 격분해 범행했다"고 진술을 바꿨다.
차경미씨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어떤 이유든 간에 191회나 찔러 죽일만한 이유가 되느냐"고 반문했다.
차씨는 "100번 양보해서 모욕적인 말을 들어서 우발적으로 범행했다고 할지라도, 우발적이라는 게 한두 번 찌르는 게 우발적이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제1형 당뇨병(소아당뇨병)을 안고 태어난 혜주씨는 주삿바늘을 달고 살다시피 할 정도로 몸이 불편했다.
"사는 게 중요하지, 학교가 뭐가 중요하냐"는 의사 선생님의 야단에도 꿋꿋하게 학교와 병원에 오가며 초·중·고등학교 졸업장을 품에 안았다.
세 자녀 중 맏딸이었던 혜주씨는 가족들과 마트에 가서 먹고 싶은 걸 가져오라고 하면 부모님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 사탕 하나, 껌 하나만 들고 올 정도로 속이 깊었다.
그런 혜주씨가 지인 소개로 류씨를 만난 건 2022년 봄이었다.
그해 3월 추간판탈출증(디스크) 수술을 하고 병원에 입원해 있던 혜주씨를 류씨가 자주 병문안 오면서 두 사람은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처음엔 말렸어요.
내 딸이 몸이 너무 많이 아프고, 너는 외아들이라 부모님의 기대가 있을 테니 결혼을 전제로 만나지 말고 그냥 친구처럼 만나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저희 부모님도 몸이 불편하셔서 아픈 사람 마음을 잘 안다'면서 자기가 얼마든지 보듬어 줄 수 있다더라고요.
"
서로 보듬고 애쓰는 모습에 차씨도 두 사람의 뜻을 꺾을 수 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2024년 3월 16일 결혼식을 올리기로 하고 공공임대주택에서 2022년 11월부터 동거를 시작했다.
혜주씨는 류씨 혼자 생활비를 감당하게 하는 것이 미안해 의료수급을 포기하고, 카페와 아이스크림 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만 두 탕을 뛰며 생활비를 보탰다.
애초에 예물이나 예단 따위는 생략하기로 했다.
2023년 9월에 류씨가 숙소를 제공하는 충남지역 회사로 직장을 옮기기로 했고, 10월엔 웨딩 촬영 계획을 잡는 등 결혼 준비를 두고 이렇다 할 말다툼이 오가지도 않았다.
차씨는 사위도 자식이라고 여기고 류씨를 가족처럼 살갑게 대했다.
하지만 류씨의 끔찍한 범행으로 인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정신병원까지 입원했던 차씨가 정신을 차리고 난 사이 류씨는 지난 1월 춘천지법 영월에서 징역 17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층간소음 문제와 경제적 곤궁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살해했다는 점이 선뜻 이해되지 않고, 이례적인 범행동기를 가질 만한 정신질환도 없었던 점을 근거로 피해자로부터 '정신지체냐'라는 말을 듣고 우발적으로 범행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범행 당시 일시적인 정신 마비로 인한 심신상실 또는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다"는 류씨 측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은 징역 25년을 구형했으나 재판부는 검찰이 유족에게 지급한 유족구조금을 류씨 측이 구상금으로 검찰에 지급한 사정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삼아 징역 17년을 내렸다.
검찰과 피고인이 모두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한 이 사건은 오는 17일 선고를 앞두고 있다.
차씨는 "어차피 우리나라는 사형이 폐지된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을 원한다"고 말했다.
"17년을 받든, 20년을 받든, 30년을 받든, 우리 딸은 돌아오지 않아요.
하지만 17년은 합당하지 않아요.
누가 봐도 납득할 만한 죗값을 치러야 류씨도 이 세상에 나왔을 때 당당하게 설 수 있지 않겠어요.
그래야 저도 죄를 용서하지 않을까 싶어요…"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