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타임용으로 리메이크된 봉준호 최애 영화 '공포의 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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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허남웅의 씨네마틱 유로버스
영화 <공포의 보수>
B급 액션에 강조점을 찍은 두 번째 리메이크
영화 <공포의 보수>
B급 액션에 강조점을 찍은 두 번째 리메이크
유정이 폭발했다. 그것만으로도 위험한데 그 밑에 가스 포켓까지 생겨 더 큰 폭발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그랬다가 주변 마을에 불이 번져 5000명 정도 되는 주민이 모두 타죽게 생겼다. 해결 방법은? 한 방울만 떨어뜨려도 가공할 만한 폭발을 일으키는 니트로글리세린 한 트럭 분을 가져와 터뜨려 가스 포켓을 없애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걸 운반하려면 구불구불하고 울퉁불퉁한 길을 지나쳐야 하고, 잠깐 한눈팔면 천 길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급경사 도로를 통과해야 한다는 것.
위험하긴 해도 이 정도면 천천히 트럭을 몬다면야 어렵지 않게 니트로글리세린을 운반할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이곳은 중동(으로 추정되는) 어느 국가의 분쟁 지역이다. 여기저기서 도적들이 출몰해 총기로 위협을 가하고 잠잠하다 싶어 안심하고 전진할 때면 어디 묻혔는지 모를 지뢰가 터지기도 한다. 이러니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면 니트로글리세린 수송 작전에 참여할 리가 없다. 프랭크(프랑크 가스탐비드)와 알렉스(알반 레노이어) 형제는 다르다. 이들에게는 목숨을 걸어서라도 니트로글리세린을 운반해야 할 이유가 있다.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프랑스 영화 <공포의 보수>(2024)의 줄거리다. 이 영화가 원작으로 삼고 있는 프랑스 출신 앙리 조르주 클루조 감독의 <공포의 보수>(1952)는 봉준호 감독이 자신의 베스트 10을 꼽을 때면 빠짐없이 언급하는 영화다.
이 작품은 <엑소시스트>(1973) <프렌치 커넥션>(1971)으로 ‘아메리칸 뉴 시네마’, 즉 할리우드 영화의 새로운 조류를 이끈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이 <소서러 (Sorcerer, Wages Of Fear)>(1977)로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번에 공개된 <공포의 보수>는 원작 영화의 두 번째 리메이크작이다. 두 번이나 리메이크되었다는 건 그만큼 원작 영화가 지닌 설정의 힘이 가공할뿐더러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이다. 거액의 돈을 위해서라면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것, 그런 극단적인 설정은 인간이 가진 욕망의 실체를 보여주는 최선의 조건이 된다.
올해 리메이크한 <공포의 보수>는 설정을 좀 달리 가져가 앞선 두 작품과는 확연한 완성도의 차이를 보여준다. 거액의 돈 대신 두 형제 사이를 갈라놓은 모종의 사건을 전제로 두고 니트로글리세린 운반을 화해의 과정으로 이끈다. 좀 더 긴장감 있게 전개할 수 있는 소재를 스스로 김빠지게 만든다고 할까.
인간성의 가장 어두운 측면을 고발하려는 선배 감독들의 의도를 이어받는 대신 형제는 용감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메시지를 위해 액션을 이용하는 식의 연출은 <공포의 보수>가 가진 가능성을 B급 액션물 정도로 축소한다. 제이슨 스타뎀을 떠올리게 하는 프랭크 역의 프랑크 가스탐비드를 캐스팅한 배경에서 그 의도가 노골적으로 엿보인다.
그래서 제이슨 스타뎀의 대표작 중 하나인 <분노의 질주> 시리즈를 좋아하는 영화 팬들에게 2024년 작 <공포의 보수>는 ‘분노의 질주’와는 반대로 ‘조심스러운 질주’로 일관해도 언제 어디서 니트로글리세린이 터질지 모른다는 스릴과 화끈한 폭발신이 난무하는 까닭에 킬링타임용 액션물로 만족스러울 수 있겠다. 하지만 앙리 조르주 클루조의 <공포의 보수>와 윌리엄 프리드킨의 <소서러>를 본 이들에게 최신의 <공포의 보수>는 원작과 그에 버금가는 첫 번째 리메이크작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완성도로 실망을 안기는 작품이다. 1952년 작 <공포의 보수>는 니트로글리세린을 실은 트럭이 바퀴를 헛디딜 때 조성되는 긴장감이 이를 운전하는 주인공(전설의 배우 이브 몽탕이 연기했다!)의 거액의 돈을 향한 헛된 욕망과 결합하며 인간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하는 질문으로 걸작의 지위에 올랐다.
<소서러>는 또 어떤가. 썩은 나무로 만든 것 같은 흔들다리 위를 휘청거리며 트럭이 지나가는 장면은 모든 걸 CG로 쉽게 처리하려는 지금의 편의주의적 연출이 절대 표현할 수 없는 공포의 경지를 선사한다. <독전>(2018)의 이해영 감독이 특히 애정하는 거로 알려졌는데 “극장에서 봐야 하는 이유를 알려주는 영화”라며 주변에 많이 추천한다고 전해진다.
<소서러>를 지금 극장에서 관람하는 건 어려운 일이 되었지만, 2차 매체를 통한다면 보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 두 번째로 리메이크된 <공포의 보수>를 보고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면 <소서러>와 동명의 원작 영화로 부족한 기분을 채우는 것도 나쁘지 않다. 넷플릭스로 공개된 <공포의 보수>의 가장 큰 미덕이라면 앞선 두 작품의 뛰어난 존재를 다시금 떠올리게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허남웅 영화평론가
위험하긴 해도 이 정도면 천천히 트럭을 몬다면야 어렵지 않게 니트로글리세린을 운반할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이곳은 중동(으로 추정되는) 어느 국가의 분쟁 지역이다. 여기저기서 도적들이 출몰해 총기로 위협을 가하고 잠잠하다 싶어 안심하고 전진할 때면 어디 묻혔는지 모를 지뢰가 터지기도 한다. 이러니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면 니트로글리세린 수송 작전에 참여할 리가 없다. 프랭크(프랑크 가스탐비드)와 알렉스(알반 레노이어) 형제는 다르다. 이들에게는 목숨을 걸어서라도 니트로글리세린을 운반해야 할 이유가 있다.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프랑스 영화 <공포의 보수>(2024)의 줄거리다. 이 영화가 원작으로 삼고 있는 프랑스 출신 앙리 조르주 클루조 감독의 <공포의 보수>(1952)는 봉준호 감독이 자신의 베스트 10을 꼽을 때면 빠짐없이 언급하는 영화다.
이 작품은 <엑소시스트>(1973) <프렌치 커넥션>(1971)으로 ‘아메리칸 뉴 시네마’, 즉 할리우드 영화의 새로운 조류를 이끈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이 <소서러 (Sorcerer, Wages Of Fear)>(1977)로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번에 공개된 <공포의 보수>는 원작 영화의 두 번째 리메이크작이다. 두 번이나 리메이크되었다는 건 그만큼 원작 영화가 지닌 설정의 힘이 가공할뿐더러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이다. 거액의 돈을 위해서라면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것, 그런 극단적인 설정은 인간이 가진 욕망의 실체를 보여주는 최선의 조건이 된다.
올해 리메이크한 <공포의 보수>는 설정을 좀 달리 가져가 앞선 두 작품과는 확연한 완성도의 차이를 보여준다. 거액의 돈 대신 두 형제 사이를 갈라놓은 모종의 사건을 전제로 두고 니트로글리세린 운반을 화해의 과정으로 이끈다. 좀 더 긴장감 있게 전개할 수 있는 소재를 스스로 김빠지게 만든다고 할까.
인간성의 가장 어두운 측면을 고발하려는 선배 감독들의 의도를 이어받는 대신 형제는 용감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메시지를 위해 액션을 이용하는 식의 연출은 <공포의 보수>가 가진 가능성을 B급 액션물 정도로 축소한다. 제이슨 스타뎀을 떠올리게 하는 프랭크 역의 프랑크 가스탐비드를 캐스팅한 배경에서 그 의도가 노골적으로 엿보인다.
그래서 제이슨 스타뎀의 대표작 중 하나인 <분노의 질주> 시리즈를 좋아하는 영화 팬들에게 2024년 작 <공포의 보수>는 ‘분노의 질주’와는 반대로 ‘조심스러운 질주’로 일관해도 언제 어디서 니트로글리세린이 터질지 모른다는 스릴과 화끈한 폭발신이 난무하는 까닭에 킬링타임용 액션물로 만족스러울 수 있겠다. 하지만 앙리 조르주 클루조의 <공포의 보수>와 윌리엄 프리드킨의 <소서러>를 본 이들에게 최신의 <공포의 보수>는 원작과 그에 버금가는 첫 번째 리메이크작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완성도로 실망을 안기는 작품이다. 1952년 작 <공포의 보수>는 니트로글리세린을 실은 트럭이 바퀴를 헛디딜 때 조성되는 긴장감이 이를 운전하는 주인공(전설의 배우 이브 몽탕이 연기했다!)의 거액의 돈을 향한 헛된 욕망과 결합하며 인간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하는 질문으로 걸작의 지위에 올랐다.
<소서러>는 또 어떤가. 썩은 나무로 만든 것 같은 흔들다리 위를 휘청거리며 트럭이 지나가는 장면은 모든 걸 CG로 쉽게 처리하려는 지금의 편의주의적 연출이 절대 표현할 수 없는 공포의 경지를 선사한다. <독전>(2018)의 이해영 감독이 특히 애정하는 거로 알려졌는데 “극장에서 봐야 하는 이유를 알려주는 영화”라며 주변에 많이 추천한다고 전해진다.
<소서러>를 지금 극장에서 관람하는 건 어려운 일이 되었지만, 2차 매체를 통한다면 보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 두 번째로 리메이크된 <공포의 보수>를 보고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면 <소서러>와 동명의 원작 영화로 부족한 기분을 채우는 것도 나쁘지 않다. 넷플릭스로 공개된 <공포의 보수>의 가장 큰 미덕이라면 앞선 두 작품의 뛰어난 존재를 다시금 떠올리게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허남웅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