点은 세상을 보는 렌즈…역사를 보는 다른 시선의 시작점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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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원주민의 '뿌리' 간직한
점묘 작가 대니얼 보이드
홍콩 대형 쇼핑몰을 예술무대로
천장·창문 메우고 바닥엔 점박이 거울
내 작품은 관객과의 상호작용으로 존재감
원주민의 정체성 녹여내
역사를 바라보는 방식은 일방적이어선 안돼
단순한 표현 기법으로 다양한 해석 이끌어냈듯
외면 당한 '약자의 시선'을 작품 통해 복원
점묘 작가 대니얼 보이드
홍콩 대형 쇼핑몰을 예술무대로
천장·창문 메우고 바닥엔 점박이 거울
내 작품은 관객과의 상호작용으로 존재감
원주민의 정체성 녹여내
역사를 바라보는 방식은 일방적이어선 안돼
단순한 표현 기법으로 다양한 해석 이끌어냈듯
외면 당한 '약자의 시선'을 작품 통해 복원
‘오스트레일리아를 발견한 영국의 위대한 탐험가.’
제임스 쿡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을 검색하면 나오는 설명이다. 쿡은 호주와 뉴질랜드를 처음 발견한 인물로 영국 해군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탐험가로 꼽힌다. 호주에는 그의 이름을 그대로 딴 대학교까지 존재할 정도다. 모두가 쿡의 새 영토 발견에 주목할 때 그 뒤에 숨은 다른 얼굴들에 눈길을 준 작가가 있다. 호주 시드니에 작업실을 둔 작가 대니얼 보이드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쿡의 업적 대신 영국의 침략을 받고 터전을 뺏긴 호주 원주민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보이드 자신이 호주 원주민이라는 뿌리를 가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미 한국에서 세 번의 개인전을 연 보이드는 바탕에 다양한 형태의 점을 찍는 그만의 점묘 기법으로 관람객들에게 잘 알려졌다. 점 하나하나를 ‘세상을 보는 렌즈’라고 칭하며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봐 달라고 그림을 통해 호소한다. 지배자와 강자의 일방적 시선으로 기록된 역사를 점을 찍으며 재해석함으로써 잊힌 기록에 숨을 불어넣는다. 그는 지난달 21일부터 홍콩 금융가 한복판에 ‘렌즈’를 삽입했다. 그는 지난달 말 열린 아트바젤 홍콩의 인카운터스 섹션에 참가해 홍콩 랜드마크 쇼핑몰 중 하나인 퍼시픽플레이스에서 자신의 작품을 선보였다. 인카운터스는 아트바젤 홍콩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작가를 선정해 그들의 대형 설치작을 선보이는 프로그램. 보이드는 창문 철판 설치작뿐만 아니라 건물 천장과 바닥에도 모두 작품을 배치해 쇼핑몰을 자신의 예술 무대로 탈바꿈했다. 퍼시픽플레이스 2층 창문은 홍콩 아트위크 내내 그의 구멍 뚫린 철판 작품으로 가려져 있었다. 쇼핑몰을 찾은 사람들은 오직 이 구멍 사이로만 창문 밖을 내다볼 수 있었다.
보이드는 올해 선정된 작가 중 유일하게 컨벤션센터 내부가 아니라 도심에서 작품을 선보인 작가가 됐다. 그의 작품이 설치돼 있던 지난달 말 홍콩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자신의 작품처럼 고요하고 또 신중하게 답했다.
“전시장을 벗어나 대형 쇼핑몰에서 작품을 선보이는 게 즐거워요. 공개된 장소에서의 무작위적 만남은 여전히 설레는 일입니다. 내 작업은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존재감을 만드는데, 전시회에 오지 않을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어 흥분되는 일이지요.”
그는 이번 작품을 만들며 바닥에도 ‘점박이 거울’을 깔았다. 지나가는 관람객들에게 작품을 밟고 점 속 거울에 비친 스스로를 올려다볼 수 있게 했다. 실제로 수많은 관람객이 “여기를 밟아도 되냐”고 질문하며 작품 위로 올라섰다. “바닥에 보이는 거울 무대 같은 경우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으로 완성되는 작품입니다. 호주 브리즈번, 독일 베를린에 전시했던 작업이지만 어떤 관람객이 밟고 스스로를 비춰보느냐에 따라 아예 다른 작품이 되죠.”
이번 홍콩 전시에서 2층 창문을 가려놓은 의미에 관해 물었다. 그는 “관람객들로 하여금 한눈에 바깥을 보는 게 아니라 당연히 보던 풍경을 다각도로 볼 수 있도록 했다”며 “작품을 통해 어떻게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가에 집중하는 작업물”이라고 말했다.
국내 관람객에게 보이드는 ‘까만 바탕에 수많은 점을 찍는 작가’로 친숙하다. 이번 홍콩에 나온 작품도 수많은 점으로 이뤄졌다. 그는 이전부터 ‘수많은 점은 세상을 보는 렌즈’라는 표현을 썼다. 보이드가 이 점 찍기 작업을 시작한 계기는 뭘까. 그는 “나는 나의 작업이 그냥 벽에 걸려 있기를 원치 않는다”며 “관람객들이 내 작품에 참여하며 작업을 활성화해주길 원한다”고 했다.
점을 렌즈로 활용한 이유에는 그가 가진 아픈 식민지 역사라는 배경이 있다. 보이드는 “식민지 역사를 품고 살아가는 호주 원주민인 나는 서양적 관점에 의해 너무 많은 역사가 단순화되는 과정을 봐 왔다”며 “사실 역사는 절대 단순한 게 아니지 않나”라고 되물었다. 말을 멈추고 한참 고민하던 그는 “세상 그 어떤 것도 단순하게 정의 내려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서 점이라는 렌즈를 찍기 시작했다”며 “특정한 경험이 일률적으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마다 내 작품을 보고 다양한 생각을 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보이드는 ‘호주 원주민’이라는 뿌리에 기반한 작업물을 계속 내놓고 있다. 이번 홍콩에 나온 작품 ‘도안’은 그 제목부터 호주 원주민의 언어를 차용해 지었다. 그는 “나의 민족은 영국 식민화 과정을 통해 모든 문화가 규정당한 역사가 있다”며 “그래서 더욱 이번 작품은 세계에 내 역사를 드러내기 위해 ‘내 언어’로 제목을 지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한 명의 작가가 수년간 동일한 주제, 비슷한 기법을 고집하는 것은 드문 일. 보이드가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그는 이 작업을 놓지 못하는 이유를 한마디로 설명했다. ‘단순함을 통한 복합성.’ 그는 “점을 찍는 표현 기법은 얼핏 단순해 보일 수 있지만 그 의미는 그렇지 않다”며 “내 작품은 한 편의 시처럼 단순한 기법 뒤에 다양한 의미가 있다. 마치 3분의 짧은 노래가 듣는 사람마다 다양한 느낌을 주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보이드는 자신의 작품이 특정한 의미로 해석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고 했다. 그는 “내 작품을 한 가지 의미로 해석해달라는 것은 서양적 관점으로 재편된 역사와 다를 것이 없다”며 “의미라는 건 정해진 것이 아니며 모든 사람에게 내 작품의 의미를 해석할 자유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만들어내는 ‘식민지 역사의 아픔’을 담은 작품은 2024년 현재 홍콩이 겪고 있는 사회적 상황과 닮아 있기도 하다. 보이드는 “우선 내 작업은 인간의 경험을 담은 작업이기 때문에 설치된 국가 상황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며 “내 작업이 홍콩의 상황과 직접 연결됐다고는 할 수 없지만 결국엔 거울로 된 무대를 밟으며 관람객들이 이 나라의 상황, 내 상황을 돌아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 아트위크 이후 행보에 대해 그는 “공개할 수 없는 재미있는 일을 하고 있다”며 “스튜디오에서 실험하며 나를 데려다주는 곳으로 갈 것”이라고 웃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일어난 그는 들고 온 가방을 고쳐 맸다. 굵은 실이 얼기설기 엮인 크로스백. 탐내는 눈빛을 읽기라도 한 듯 그는 “이 가방도 호주 원주민 전통 방식으로 만든 가방”이라고 했다. 그에게 ‘뿌리’는 작업의 원동력이자 삶에서 뗄 수 없는 거대한 축이었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
제임스 쿡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을 검색하면 나오는 설명이다. 쿡은 호주와 뉴질랜드를 처음 발견한 인물로 영국 해군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탐험가로 꼽힌다. 호주에는 그의 이름을 그대로 딴 대학교까지 존재할 정도다. 모두가 쿡의 새 영토 발견에 주목할 때 그 뒤에 숨은 다른 얼굴들에 눈길을 준 작가가 있다. 호주 시드니에 작업실을 둔 작가 대니얼 보이드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쿡의 업적 대신 영국의 침략을 받고 터전을 뺏긴 호주 원주민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보이드 자신이 호주 원주민이라는 뿌리를 가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미 한국에서 세 번의 개인전을 연 보이드는 바탕에 다양한 형태의 점을 찍는 그만의 점묘 기법으로 관람객들에게 잘 알려졌다. 점 하나하나를 ‘세상을 보는 렌즈’라고 칭하며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봐 달라고 그림을 통해 호소한다. 지배자와 강자의 일방적 시선으로 기록된 역사를 점을 찍으며 재해석함으로써 잊힌 기록에 숨을 불어넣는다. 그는 지난달 21일부터 홍콩 금융가 한복판에 ‘렌즈’를 삽입했다. 그는 지난달 말 열린 아트바젤 홍콩의 인카운터스 섹션에 참가해 홍콩 랜드마크 쇼핑몰 중 하나인 퍼시픽플레이스에서 자신의 작품을 선보였다. 인카운터스는 아트바젤 홍콩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작가를 선정해 그들의 대형 설치작을 선보이는 프로그램. 보이드는 창문 철판 설치작뿐만 아니라 건물 천장과 바닥에도 모두 작품을 배치해 쇼핑몰을 자신의 예술 무대로 탈바꿈했다. 퍼시픽플레이스 2층 창문은 홍콩 아트위크 내내 그의 구멍 뚫린 철판 작품으로 가려져 있었다. 쇼핑몰을 찾은 사람들은 오직 이 구멍 사이로만 창문 밖을 내다볼 수 있었다.
보이드는 올해 선정된 작가 중 유일하게 컨벤션센터 내부가 아니라 도심에서 작품을 선보인 작가가 됐다. 그의 작품이 설치돼 있던 지난달 말 홍콩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자신의 작품처럼 고요하고 또 신중하게 답했다.
“전시장을 벗어나 대형 쇼핑몰에서 작품을 선보이는 게 즐거워요. 공개된 장소에서의 무작위적 만남은 여전히 설레는 일입니다. 내 작업은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존재감을 만드는데, 전시회에 오지 않을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어 흥분되는 일이지요.”
그는 이번 작품을 만들며 바닥에도 ‘점박이 거울’을 깔았다. 지나가는 관람객들에게 작품을 밟고 점 속 거울에 비친 스스로를 올려다볼 수 있게 했다. 실제로 수많은 관람객이 “여기를 밟아도 되냐”고 질문하며 작품 위로 올라섰다. “바닥에 보이는 거울 무대 같은 경우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으로 완성되는 작품입니다. 호주 브리즈번, 독일 베를린에 전시했던 작업이지만 어떤 관람객이 밟고 스스로를 비춰보느냐에 따라 아예 다른 작품이 되죠.”
이번 홍콩 전시에서 2층 창문을 가려놓은 의미에 관해 물었다. 그는 “관람객들로 하여금 한눈에 바깥을 보는 게 아니라 당연히 보던 풍경을 다각도로 볼 수 있도록 했다”며 “작품을 통해 어떻게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가에 집중하는 작업물”이라고 말했다.
국내 관람객에게 보이드는 ‘까만 바탕에 수많은 점을 찍는 작가’로 친숙하다. 이번 홍콩에 나온 작품도 수많은 점으로 이뤄졌다. 그는 이전부터 ‘수많은 점은 세상을 보는 렌즈’라는 표현을 썼다. 보이드가 이 점 찍기 작업을 시작한 계기는 뭘까. 그는 “나는 나의 작업이 그냥 벽에 걸려 있기를 원치 않는다”며 “관람객들이 내 작품에 참여하며 작업을 활성화해주길 원한다”고 했다.
점을 렌즈로 활용한 이유에는 그가 가진 아픈 식민지 역사라는 배경이 있다. 보이드는 “식민지 역사를 품고 살아가는 호주 원주민인 나는 서양적 관점에 의해 너무 많은 역사가 단순화되는 과정을 봐 왔다”며 “사실 역사는 절대 단순한 게 아니지 않나”라고 되물었다. 말을 멈추고 한참 고민하던 그는 “세상 그 어떤 것도 단순하게 정의 내려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서 점이라는 렌즈를 찍기 시작했다”며 “특정한 경험이 일률적으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마다 내 작품을 보고 다양한 생각을 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보이드는 ‘호주 원주민’이라는 뿌리에 기반한 작업물을 계속 내놓고 있다. 이번 홍콩에 나온 작품 ‘도안’은 그 제목부터 호주 원주민의 언어를 차용해 지었다. 그는 “나의 민족은 영국 식민화 과정을 통해 모든 문화가 규정당한 역사가 있다”며 “그래서 더욱 이번 작품은 세계에 내 역사를 드러내기 위해 ‘내 언어’로 제목을 지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한 명의 작가가 수년간 동일한 주제, 비슷한 기법을 고집하는 것은 드문 일. 보이드가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그는 이 작업을 놓지 못하는 이유를 한마디로 설명했다. ‘단순함을 통한 복합성.’ 그는 “점을 찍는 표현 기법은 얼핏 단순해 보일 수 있지만 그 의미는 그렇지 않다”며 “내 작품은 한 편의 시처럼 단순한 기법 뒤에 다양한 의미가 있다. 마치 3분의 짧은 노래가 듣는 사람마다 다양한 느낌을 주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보이드는 자신의 작품이 특정한 의미로 해석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고 했다. 그는 “내 작품을 한 가지 의미로 해석해달라는 것은 서양적 관점으로 재편된 역사와 다를 것이 없다”며 “의미라는 건 정해진 것이 아니며 모든 사람에게 내 작품의 의미를 해석할 자유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만들어내는 ‘식민지 역사의 아픔’을 담은 작품은 2024년 현재 홍콩이 겪고 있는 사회적 상황과 닮아 있기도 하다. 보이드는 “우선 내 작업은 인간의 경험을 담은 작업이기 때문에 설치된 국가 상황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며 “내 작업이 홍콩의 상황과 직접 연결됐다고는 할 수 없지만 결국엔 거울로 된 무대를 밟으며 관람객들이 이 나라의 상황, 내 상황을 돌아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 아트위크 이후 행보에 대해 그는 “공개할 수 없는 재미있는 일을 하고 있다”며 “스튜디오에서 실험하며 나를 데려다주는 곳으로 갈 것”이라고 웃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일어난 그는 들고 온 가방을 고쳐 맸다. 굵은 실이 얼기설기 엮인 크로스백. 탐내는 눈빛을 읽기라도 한 듯 그는 “이 가방도 호주 원주민 전통 방식으로 만든 가방”이라고 했다. 그에게 ‘뿌리’는 작업의 원동력이자 삶에서 뗄 수 없는 거대한 축이었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