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는 깨졌지만, 석유는 흐른다"…긴장 걷히며 3주만 최저[오늘의 유가]
3% 이상 급락…브렌트유 다시 80달러대로
중동긴장 해소, 美 원유재고 4주째 증가 영향
中 수요 여전히 약세…베네수 제재는 변수


이란의 이스라엘 본토 공격으로 촉발된 중동 긴장이 해소되면서 국제유가가 3거래일째 하락세다. 미국의 원유 재고가 4주 연속 늘어났다는 소식이 더해지면서 낙폭은 3%대로 커졌다. 다만 미국이 베네수엘라산 원유에 대한 제재를 되살리면서 유가가 다시 반등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17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5월물은 전 거래일 대비 3.1%(2.67달러) 급락한 배럴당 82.69달러에 마감했다. 지난달 27일(배럴당 81.35달러) 이후 약 3주 만에 최저치다. 낙폭은 지난달 20일 이후 가장 컸다.

ICE 선물거래소에서 거래되는 브렌트유 선물도 전날보다 3.0%(2.73달러) 떨어진 배럴당 87.29달러에 장을 닫았다. 역시 3월 27일(배럴당 86.09달러) 이후 3주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국제유가 벤치마크로 기능하는 브렌트유는 지난 11일 이후 4거래일 만에 배럴당 80달러대로 내려갔다.
"평화는 깨졌지만, 석유는 흐른다"…긴장 걷히며 3주만 최저[오늘의 유가]
유가 약세는 중동발 지정학 리스크가 완전히 걷힌 영향이 컸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스라엘 전시 내각이 수일째 별다른 행동 없이 대응 방안을 고심 중인 가운데 미국, 유럽연합(EU) 등 서방국들이 일제히 대(對)이란 제재 카드를 꺼내 들며 확전 가능성을 차단하고 나섰다. 마이크 존슨 미 하원의장이 우크라이나·이스라엘·대만을 지원하고 러시아·중국·이란에 대응하기 위한 안보 예산안 4건 처리 방침을 밝힌 것이 유가 낙폭을 키웠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석유 전문가인 존 킬더프 어게인캐피털 파트너는 “중동 갈등이 진정되는 조짐을 보이면서 시장은 이미 매도 시점을 저울질하고 있었다”며 “이스라엘의 대응이 3일째 지연되고 있는 데다 미 의회에서 (장기간 계류돼 있던) 법안이 진전되면서 유가를 끌어내렸다”고 분석했다. 벨란데라에너지파트너스의 매니시 라지 매니징디렉터는 “평화는 끝났을지 몰라도 석유는 계속해서 흐르고 있다”고 했다.

데이터 제공업체 DTN의 트로이 빈센트 수석 애널리스트 역시 “이란과 이스라엘 간 갈등은 결국 원유 공급에 아무런 차질을 빚지 못했다”며 “분쟁이 걸프 지역 다른 국가의 원유 인프라에 대한 공격으로 확대되거나 미국이 이란산 원유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원유 공급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작다”고 말했다.
"평화는 깨졌지만, 석유는 흐른다"…긴장 걷히며 3주만 최저[오늘의 유가]
원유 공급은 탄탄하게 유지되고 있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은 주간 단위로 집계되는 상업용 원유 재고가 이달 8~12일 기준 전주 대비 270만배럴 늘어났다고 이날 발표했다. 4주 연속 증가세다. 증가 폭은 로이터가 조사한 전문가 예상치(140만배럴 증가)의 두 배 수준이었다. 다만 S&P글로벌코모디티인사이츠가 집계한 시장 전망치 평균은 290만배럴로 큰 차이가 있었다. 같은 기간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하루 1310만배럴로 전주 대비 변동이 없었다.

컨설팅업체리터부시앤어소시에이츠의 짐 리터부시 대표는 “미 달러의 강세와 더불어 멕시코산 원유 수입 감소와 전략비축유(SPR) 증가에도 불구하고 늘어난 원유 재고가 유가 약세를 촉발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주요국 금리의 향방이 불확실해지면서 수요 우려가 확대됐다.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이 고금리 장기화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차입비용 감소를 기대하던 투자자들의 희망이 꺾였다. 이날 발표된 영국의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도 3.2%로, 시장 전망치(3.1%)를 웃돌면서 영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 시점도 늦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여기에 중국의 3월 산업생산이 예상보다 낮은 4.5% 증가율을 나타내며 수요 둔화가 재부각됐다.
"평화는 깨졌지만, 석유는 흐른다"…긴장 걷히며 3주만 최저[오늘의 유가]
한편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정부가 오는 7월 예정된 대선을 공정하게 치르겠다는 약속이 “미흡하다”며 베네수엘라산 원유에 대한 제재를 부활시켰다. 유화책의 일환으로 제재를 완화한 지 6개월 만의 조치다. 미 국무부는 한시적으로 발급을 허용했던 베네수엘라 석유 판매 라이선스 기한을 18일 0시를 기점으로 종료시킬 방침이다.

미즈호증권의 로버트 요거 에너지 선물 담당 디렉터는 “바이든 대통령은 유가 상승의 위험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논평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