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패권 경쟁의 화약고는 대만… 세계는 강대국의 눈으로 봐야" [서평]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김정섭 <세 개의 전쟁>
태평양·우크라이나·대만 전쟁
강대국의 눈으로 국제정치 분석
태평양·우크라이나·대만 전쟁
강대국의 눈으로 국제정치 분석
지난 13일 이란이 이스라엘에 미사일 수백발과 드론 공격을 퍼부어 중동지역에 전운이 맴돌았다. 10여일 전 이스라엘이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을 공습한 것에 따른 보복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벌어진 전쟁은 2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지구촌은 이제 동시다발적인 전쟁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부소장이 쓴 <세 개의 전쟁>은 국제정치의 본질을 전쟁이란 렌즈로 파헤친 책이다. 평소엔 모호하거나 은밀하게 감춰진 강대국 정치의 민낯이 전쟁이란 특수 상황에서 투명하게 드러난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책이 다루는 전쟁은 세 종류다. 20세기 미국과 일본의 태평양전쟁과 현재 진행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전쟁 그리고 긴장관계가 심화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 사이 가상의 대만전쟁이다.
이들 세 개의 전쟁은 싸움의 주체와 시기, 갈등 원인 등이 달라 얼핏 연관성이 없어보인다. 그러나 저자는 전쟁의 본질이 모두 같다고 주장한다. 강대국 간 세력권의 충돌이 갈등의 핵심이고, 국제 정치 무대에서 패권 국가로서 지위를 보전하기 위해 사수해야 하는 이익선(利益線)을 위한 다툼이라는 점에서다.
태평양전쟁은 아시아의 패권을 쥐기 위한 일본 제국주의가 시발이었다. 일본은 서구 세력의 침탈에 맞서 아시아 민족들의 독립을 지켜내기 위한 ‘대동아 전쟁’으로 포장했지만 본질은 지역 내에서 미국과 영국 등을 물러내고 패권을 빼앗으려는 것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소비에트 연방 붕괴 후 급속히 추락한 지정학적 위상을 회복하기 위한 시도라고 강조한다. 우크라이나는 풍부한 농업 기반과 함께 공업 생산력을 갖춘 인구 5000만명 이상의 국가다. 러시아의 흑해 접근을 보장하는 핵심 요충지기도 하다. 우크라이나를 차지하면 지역 패권을 강화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NATO를 앞세운 미국의 유라시아 패권 장악에 대한 러시아의 반격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이 전쟁을 단순히 우크라이나를 지키는 문제를 넘어 국제질서를 수호하는 전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미국 입장에선 우크라이나전쟁은 부담인 동시에 트럼프 시절 훼손된 미국의 대외 리더십과 대유럽 관계를 복원할 수 있는 전략적 기회기도 하다. 저자는 태평양전쟁의 원자폭탄 투하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의 무차별 폭격이 보여준 대로 현대전의 상수가 돼 버린 민간인 학살 우려도 내비친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으로 7만여명의 시민이 즉사했다. 발전소, 병원, 학교 등에 대한 러시아 폭격의 희생양도 전투와 관련이 없는 민간인이다. 미국 또한 열화우라늄탄이나 집속탄 등 대규모 민간인 살상을 초래할 수 있는 비윤리적 무기를 우크라이나 전장에 투입하고 있다.
저자는 민간인 대량 살상을 전쟁 수행의 불가결한 수단으로 간주하는 비윤리적인 사고가 산업혁명과 제1차 세계 대전을 거치며 강화했다고 주장한다. 전쟁이 국가 전체 산업과 인프라가 집결되는 총력전 양상을 띠면서 전투원과 비전투원의 구분이 흐려졌단 설명이다.
가상의 대만전쟁을 다루는 마지막 3부은 가장 흥미로운 부분 가운데 하나다. 저자는 미·중 패권 경쟁의 시험대로서 가장 위험한 화약고가 바로 대만해협이라고 강조한다. 대만의 위치로 인한 지정학적 함의 때문이다. 대만은 동중국해와 남중국해를 연결하는 위치에 있고 중국이 태평양으로 뻗어가는 전략적 요충지다. 반대로 미국 관점에선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막는 저지선이다. 저자는 미국과 중국의 견제의 균형이 무너져 대만전쟁이 벌어졌을 때 예상되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한다. 핵전쟁 위험도 경고한다.
책은 한국이 주요 행위자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지극히 한국을 위한 책이다. 강대국을 움직이는 동기는 예나 지금이나 기본적으로 같고, 전쟁 정당화 논리도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저자는 강대국의 눈으로 세상을 조망해보자고 제안한다. 제국처럼 행동할 순 없지만, 적어도 제국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추잔 것이다. 강대국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본질적인 의도가 무엇인지 등을 읽어낼 수 있다면 국제질서가 격변하는 시기를 맞아 우리의 외교안보적 판단이 더욱 정확해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김정섭 세종연구소 부소장이 쓴 <세 개의 전쟁>은 국제정치의 본질을 전쟁이란 렌즈로 파헤친 책이다. 평소엔 모호하거나 은밀하게 감춰진 강대국 정치의 민낯이 전쟁이란 특수 상황에서 투명하게 드러난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책이 다루는 전쟁은 세 종류다. 20세기 미국과 일본의 태평양전쟁과 현재 진행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전쟁 그리고 긴장관계가 심화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 사이 가상의 대만전쟁이다.
이들 세 개의 전쟁은 싸움의 주체와 시기, 갈등 원인 등이 달라 얼핏 연관성이 없어보인다. 그러나 저자는 전쟁의 본질이 모두 같다고 주장한다. 강대국 간 세력권의 충돌이 갈등의 핵심이고, 국제 정치 무대에서 패권 국가로서 지위를 보전하기 위해 사수해야 하는 이익선(利益線)을 위한 다툼이라는 점에서다.
태평양전쟁은 아시아의 패권을 쥐기 위한 일본 제국주의가 시발이었다. 일본은 서구 세력의 침탈에 맞서 아시아 민족들의 독립을 지켜내기 위한 ‘대동아 전쟁’으로 포장했지만 본질은 지역 내에서 미국과 영국 등을 물러내고 패권을 빼앗으려는 것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소비에트 연방 붕괴 후 급속히 추락한 지정학적 위상을 회복하기 위한 시도라고 강조한다. 우크라이나는 풍부한 농업 기반과 함께 공업 생산력을 갖춘 인구 5000만명 이상의 국가다. 러시아의 흑해 접근을 보장하는 핵심 요충지기도 하다. 우크라이나를 차지하면 지역 패권을 강화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NATO를 앞세운 미국의 유라시아 패권 장악에 대한 러시아의 반격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이 전쟁을 단순히 우크라이나를 지키는 문제를 넘어 국제질서를 수호하는 전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미국 입장에선 우크라이나전쟁은 부담인 동시에 트럼프 시절 훼손된 미국의 대외 리더십과 대유럽 관계를 복원할 수 있는 전략적 기회기도 하다. 저자는 태평양전쟁의 원자폭탄 투하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의 무차별 폭격이 보여준 대로 현대전의 상수가 돼 버린 민간인 학살 우려도 내비친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으로 7만여명의 시민이 즉사했다. 발전소, 병원, 학교 등에 대한 러시아 폭격의 희생양도 전투와 관련이 없는 민간인이다. 미국 또한 열화우라늄탄이나 집속탄 등 대규모 민간인 살상을 초래할 수 있는 비윤리적 무기를 우크라이나 전장에 투입하고 있다.
저자는 민간인 대량 살상을 전쟁 수행의 불가결한 수단으로 간주하는 비윤리적인 사고가 산업혁명과 제1차 세계 대전을 거치며 강화했다고 주장한다. 전쟁이 국가 전체 산업과 인프라가 집결되는 총력전 양상을 띠면서 전투원과 비전투원의 구분이 흐려졌단 설명이다.
가상의 대만전쟁을 다루는 마지막 3부은 가장 흥미로운 부분 가운데 하나다. 저자는 미·중 패권 경쟁의 시험대로서 가장 위험한 화약고가 바로 대만해협이라고 강조한다. 대만의 위치로 인한 지정학적 함의 때문이다. 대만은 동중국해와 남중국해를 연결하는 위치에 있고 중국이 태평양으로 뻗어가는 전략적 요충지다. 반대로 미국 관점에선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막는 저지선이다. 저자는 미국과 중국의 견제의 균형이 무너져 대만전쟁이 벌어졌을 때 예상되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한다. 핵전쟁 위험도 경고한다.
책은 한국이 주요 행위자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지극히 한국을 위한 책이다. 강대국을 움직이는 동기는 예나 지금이나 기본적으로 같고, 전쟁 정당화 논리도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저자는 강대국의 눈으로 세상을 조망해보자고 제안한다. 제국처럼 행동할 순 없지만, 적어도 제국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추잔 것이다. 강대국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본질적인 의도가 무엇인지 등을 읽어낼 수 있다면 국제질서가 격변하는 시기를 맞아 우리의 외교안보적 판단이 더욱 정확해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