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사는 '악덕기업'인가요? [슬기로운 금융생활]
"고금리 이자에 소상공인 죽이는 수수료 장사까지…"



국내 카드사를 바라보는 대다수의 시선입니다. 연 20%에 달하는 고금리로 카드론을 내주질 않나, 카드 결제할 때 마다 수수료를 가져가질 않나. 카드소비자에게도, 그리고 소상공인들에게도 항상 카드사는 아군보다는 적군에 가까운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서도 늘상 '미운오리새끼'로 전락해 규제 개혁이라곤 먼나라 이야기일 수밖에 없는 산업이 됐습니다. 카드사는 정말 서민들의 등골만 빼먹는 악덕기업에 불과할까요?

◆ '고금리' 카드사에 대한 날선 시선

카드사들에 대한 날선 시선에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2000년대 초반 발생했던 일명 '카드대란 사태'입니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이 큰 경제침체에 빠지자, 정부는 내수진작과 세수확충을 위해 신용카드 관련 규제를 대거 완화했습니다. 대대적인 신용카드 장려정책으로 카드사의 신용판매 취급 비중 규제가 폐지되고,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이용한도도 사라집니다.

자유로워진 운동장에서 회원유치를 위한 과당경쟁이 벌여졌고, 결국 이는 무분별한 신용카드 발급으로 이어져 연체율 상승에 신용불량자를 대거 양성하는 부작용을 낳게 됩니다. 2003년 카드대란 당시 카드 연체율은 15%를 넘어섰습니다. 이 과정에서 카드대금 상환을 독촉하는 채권추심 역시 카드사들에 대한 '악덕기업' 이미지에 한 몫 하게 됩니다.

카드사들의 무분별한 경영도 물론 영향을 줬지만,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채 막무가내로 정책을 펼쳤던 정부의 책임도 컸습니다. 하지만 이 사태를 계기로 카드사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산업의 성장세를 따라오지 못 하게 됩니다.

높은 수수료율 역시 카드사에 대한 이 같은 인식에 영향을 줬습니다. 올해 2월말 기준 현재 카드사들의 카드론 금리는 평균 14~15% 수준으로 대다수의 금융소비자들의 이용하는 은행 대출금리와는 크게 차이가 납니다. 일부 카드대금을 이월해 나눠 갚을 수 있도록 하는 리볼빙 서비스 역시 수수료율이 상당해 '고금리 이자장자'라는 악명에 힘을 싣습니다.

◆ 카드론, 제도권 금융 '마지막 보루' 역할



하지만 시중은행과 카드사가 돈을 빌려주는 대출 구조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카드론은 주로 시중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없는 중·저신용자들을 대상으로 이뤄집니다. 두 금융기관이 취급하는 대상자들의 신용도에도 차이가 있는데다, 수신기능이 있어 예대마진(대출로 받은 이자에서 예금에 지불한 이자를 뺀 수입부분)이 영향을 주는 은행과 달리 카드사들은 채권을 통해 자금조달을 해옵니다. 주요 자금조달 수단인 여신전문채권 금리가 치솟을 경우 카드사 입장에서는 자금조달 비용이 크게 늘어나는 구조인 겁니다.

고금리 카드론을 잘 못 쓰면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겠지만, 반대로 은행 문턱을 넘지 못 하는 중·저신용자들의 '급전마련 창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마지막 보루인 카드사에서 돈을 빌리지 못 하면 금융소비자들은 대부업, 사채시장 등 사실상 사금융으로 내몰릴 위기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연체가 장기화될 경우에는 또다른 대비책 마련이 필요하겠죠)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올 2월말 기준 국내 카드사의 카드론 잔액은 36조5,288억 원으로 매년 급증하고 있습니다. 비싼 이자를 내며 돈을 빌리는 사람이 늘어 부실이 우려된다는 점에선 대안책 마련이 불가피하지만, 반대로 은행 문턱을 넘지 못 한 사람들이 사금융으로 내몰리기 전 제도권 금융 내에서 소화할 수 있는, 카드산업의 기초체력이 튼튼해졌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 경제성장 함께 한 카드산업



부정적인 인식 속에서도, 한국은 분명한 신용카드 선진국입니다. 한국만큼 빠르고 편리한 지급결제시장을 찾기 어렵고, 카드에 담긴 소비자를 위한 부가서비스 혜택 수준 역시 타국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수개월동안 이자를 받지 않고 결제를 나눠서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무이자 할부 서비스 역시 한국 카드산업의 대표 서비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소비자에게 별도의 수수료를 더 부담하도록 '써차지' 제도를 운영하는 호주 등 국가와도 크게 상반됩니다.

카드는 민간소비지출의 3분의 2를 넘게 차지하면서 한국경제를 견인하는 대표적인 산업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카드대란이라는 아픈 역사가 있었지만,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침체됐던 내수경기 회복의 돌파구를 제공했던 것이 신용카드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소비회복으로 생산과 판매가 증대되고, 이는 다시 소득증대를 낳는 '경제의 선순환'으로 이어지는 데 대표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카드 사용은 정부 예산 확대에도 기여했습니다. 실제 카드 사용자가 늘어나고 경제 활동의 투명성이 제고되면서 이는 세수 증대 효과로 이어졌습니다. 그간 정부가 신용카드 사용 확대로 얻게 된 직·간접적 조세수입 규모만 해도 상당합니다. 여기에 신용카드 사용분에 대해 소득공제 혜택까지 더해주니, 소비자 입장에서도 카드는 대표적인 지급결제수단으로 자리잡을 수밖에 없습니다.

◆ 지급결제시장 성장 퇴보 막아야

이처럼 한국 경제 성장에 큰 기여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신용카드산업은 여전히 대표적인 규제 산업으로 꼽힙니다. 카드사의 주 수익원이었던 가맹점 수수료는 소상공인 표심을 얻기 위한 정치권의 '포퓰리즘' 정책으로 자리잡은지 오래고, 이로 인해 비용 절감에 주력했던 카드사들은 혜택을 줄여 소비자들의 원망을 산데다, 급변하는 결제시장 환경에서 간편결제 주도권까지 빼앗길 위기에까지 처했습니다.

앱카드를 시작으로 비접촉 결제, 모바일 지갑 등 국내 카드사들이 디지털 분야에서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아이템은 충분히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 어떤 산업군보다 방대한 결제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이를 활용해 창출해낼 수 있는 결과물들은 상상 그 이상입니다. 카드산업을 가로막고 있는 규제가 아쉬운 대목입니다.

물론 '카드대란 사태'의 주범이었던 카드사와 이제 막 신기술을 달고 금융권으로 날아드는 기업을 바라보는 정부의 시선이 같을 수만은 없었을 겁니다. 카드사의 디지털 기반 서비스가 모호해진데다 빅테크사의 신종 후불결제서비스까지 등장해 '공정경쟁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섭니다.

오랜 기간 금융혁신의 선두 자리를 지키며 한국 경제성장의 동반자 역할을 해온 카드산업. 이제는 보유한 기술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글로벌'로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독보적인 지급결제시장을 구축해온 성장의 역사가 퇴보하지 않도록 인식의 변화도 필요해 보입니다.
카드사는 '악덕기업'인가요? [슬기로운 금융생활]
장슬기기자 jsk9831@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