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대 경북대 충남대 등 6개 거점 국립대 총장들이 건의한 ‘내년에 한해 의대 증원분의 50~100% 범위 내 자율 선발’을 정부가 하루 만에 전격 수용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어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열고 6개 대학을 포함해 의대 정원이 늘어나는 32개 대학 모두에 이 같은 자율 조정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내년 의대 증원 규모는 정부가 계획한 2000명에서 1000명으로 최대 절반까지 줄어들 수 있다. 물론 대학 스스로 정할 일이라 500명 이상 줄어든 1500명 미만이 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증원 규모가 줄어드는 만큼 의대 교수들과 전공의 등이 주장하는 부실 교육 우려도 상당 부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의대 교수들이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 효력 발생과 의대생들의 집단 유급이 이젠 정말 코앞에 닥쳤다. 다음주를 넘기면 더는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라 국립대 총장들이 어렵게 중재안을 낸 것이다. 정부도 2000명 증원 고수에서 물러나 화답했으니 이젠 의사들이 ‘원점 재검토’ 주장을 내려놓을 때다. “의학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할 거라는 걸 총장들도 인정한 것”이라는 의사협회 등의 반응은 “총선 참패는 의대 증원을 멈추라는 국민 심판”이라던 아전인수식 해석과 다름없다. 합리적 단일안을 내달라는 정부의 요청에도 오로지 ‘증원 백지화’만 외치는 강경 일변도와 중재안이 나와도 내부에서 타협의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의사 사회의 폐쇄성은 많은 국민의 할 말을 잊게 만든다.

지난 16일엔 경남 함안에서 사고로 크게 다친 오토바이 운전자가 48개 병원의 거부 끝에 6시간이 지나서야 경기 수원에서 응급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의료 공백이 없었다면 살 수 있었을 환자들의 죽음도 이어지고 있다. 그 가족들의 황망함과 억울함을 조금이라도 헤아려 보길 바란다. 본인들이 힘들게 쌓아 올린 대한민국 의료가 밑바닥에서부터 무너지기 전에 의사들 내부에서도 합리적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 당장 다음주 출범하는 의료개혁특위에 참가해 대화의 실마리를 풀어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