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리족 예술·호주 원주민 6만5000년의 기록…베네치아 휩쓴 오세아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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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현장 르포
오세아니아 미술올림픽 최대 영예 황금사자상
작가상은 뉴질랜드 마오리족 '마타아호 컬렉티브'
국가관은 원주민 역사 재조명한 호주관이 수상
'역대 최대 규모 출전' 한국은 수상 불발
비엔날레 주제와 무관한 연계 전시 남발 지적도
오세아니아 미술올림픽 최대 영예 황금사자상
작가상은 뉴질랜드 마오리족 '마타아호 컬렉티브'
국가관은 원주민 역사 재조명한 호주관이 수상
'역대 최대 규모 출전' 한국은 수상 불발
비엔날레 주제와 무관한 연계 전시 남발 지적도
세계 최대 미술 축제인 베네치아 비엔날레 129년 역사상 처음으로 최고상을 오세아니아가 휩쓸었다. 20일 낮 12시(현지 시각) 이탈리아 베네치아 비엔날레 재단은 제60회 미술전 공식 개막과 함께 올해 황금사자상 수상자로 뉴질랜드 마오리족 여성 작가 그룹 '마타아호 컬렉티브'를 호명했다. 참가국한테 주어지는 국가관 황금사자상은 호주관 작가이자 토착민 출신인 아치 무어(54)가 가져갔다. 뉴질랜드와 호주가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거머쥔 건 역사상 처음이다.
올해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라는 주제로 최초의 남미 출신 예술감독 아드리아노 페드로사가 지휘봉을 잡고, 그 동안 미술계에서 소외됐던 주제와 작가를 집중 조명한 만큼 수상자 명단에서 이변은 없었던 셈이다. 2년 전 사상 최초로 여성 흑인 작가(시몬 리)가 황금사자상을 받았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여성 작가 그룹은 에레나 베이커(테 아티아와 키 와카롱고타이, 응아티 토아 랑아티라), 사라 허드슨(응아티 아와, 응아 투호), 브리짓 레웨티(응아티 랑기누이, 응아티 테 랑기), 테리 타우(랑기타인 키 와이라라파) 등 네 명으로 구성돼 있다. 심사위원단은 이들에게 상을 수여하면서 '빛나는, 시적인, 눈부신'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작품에 대해 호평했다.
"마오리 마타호 콜렉티브는 갤러리 공간을 시적으로 가로지르는 빛나는 끈으로 엮은 구조를 만들었다. 자궁과 같은 요람을 가진 직물의 모계 전통을 참조한 이 설치물은 우주적인 쉼터다. 인상적인 스케일은 혼자가 아닌 집단이어서 가능한 힘과 동시에 창의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벽과 바닥에 드리워진 눈부신 그림자 패턴은 선조들의 기법과 제스처를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기법이 미래에도 지속 가능할 것임을 시사한다." 본 행사장인 자르디니의 호주 국가관에서 열린 아치 무어의 '키스와 친척(Kith and Kin)' (2024)은 검정색 칠판으로 뒤덮인 전시장에 6만5000년에 걸친 족보를 흰 분필로 빼곡히 그려 넣은 공간으로 주목 받았다. 수개월에 걸쳐 호주 원주민의 역사를 그려넣은 작가는 이 가계도가 이름 없는 통계가 아닌, 인류 누구나 모두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는 점에 주목했다. 중앙에는 물 위에 섬처럼 구조물을 띄우고 공권력에 희생 당한 호주 원주민의 부검 조서를 일부 수정한 500개의 문서 더미가 놓였다. 아치 무어는 "베네치아의 운하를 통해 흘러나간 물은 전 세계로 흘러 호주를 감싸고, 나아가 지구 모두를 연결한다"며 "원주민의 가계도에선 모든 생명이 거대한 관계망 속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원주민들이 단지 '도트 페인팅'을 한다는 건 단순한 오해일 뿐 호주 안엔 고유한 전통을 가진 250개의 나라가 있다"며 "원주민과 비원주민이 하나 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고 덧붙였다.
심사위원단은 "호주관은 수천 명의 잊힌 이름들을 기록해 강렬한 미학과 서정성, 가려진 과거에 대한 상실감을 동시에 선사했고, 마타아호 컬렉티브는 마오리 선조들의 눈부신 기법을 미래에 전승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평했다.
한국은 주제관인 본전시장에 김윤신, 이강승, 이쾌대, 장우성 등 4명을, 한국관에 구정아 작가를 내세웠지만 결국 수상은 불발됐다. 한국관 개관 30주년을 기념해 역대 최대 규모의 한국 작가 전시를 곳곳에서 열며 축제 분위기를 이어갔지만 역부족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식 개막 전 나흘에 걸친 사전 공개 기간 구정아 작가의 '오도라마 시티'를 전시한 한국관은 줄곧 썰렁했다. 텅 빈 전시관에 작가가 수집한 한국 태생 이주민들의 기억 속 향기를 형상화했지만, 막상 관람객들 사이에선 "한국이라는 나라의 정체성도,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와 어떤 연관성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반응이 다수였다.
국공립 기관이 기획하거나 후원한 전시의 수준은 보다 심각했다. 작가 한명의 작품 세계를 깊게 소개하거나 일관된 주제를 담는 전시가 아닌, 유명 작가의 작품을 몰아넣은 '백화점식 전시'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전 세계 80여개국이 참여해 시대의 고민을 공유하고, 국경을 넘어 작가의 작품 세계를 알리는 행사임에도 'K 미술 홍보'와 기관장들의 치적 쌓기에 급급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한 한국관 개관 30주년 특별전 '모든 섬은 산이다'엔 곽훈 서도호 정연두 최정화 등 역대 한국관에 출전한 36명(팀)의 작품을 내걸었지만, 모든 작품이 외딴섬처럼 따로 놀았다. 실제 한국관에 걸렸던 작품이 단 10점뿐인데다 주제와도 어울리지 않는 신작이 다수였다. 광주 비엔날레재단이 올해 30주년을 맞는 광주비엔날레 홍보를 위해 마련한 '마당-우리가 되는 곳'의 상황도 비슷했다. 각종 아카이브 자료와 영상 작업 3편을 제외하면 전시물은 백남준의 '고인돌'과 크초(Kcho)의 '잊어버리기 위하여' 등 두 점이 전부였다. 광주 시의원들과 현장을 찾은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은 "베네치아에 광주 정신, 민주화 정신, 그리고 광주의 맛과 멋을 널리 알리겠다"고 했지만, 미술계에선 "굳이 해외 비엔날레에서 본 주제와 관계없는 전시를 해야 했나"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차라리 백남준에 대한 집중적인 재조명을 했다면, 비엔날레를 찾은 전 세계 관람객들에게 더 깊게 다가갔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실제 현장에선 엽서 또는 A4 용지 크기의 저화질로 출력된 전시 작품과 유명 작가들의 이름만 나열하는 데 그쳐 아쉬움을 자아냈다. 광주비엔날레의 역대 한글 도록과 어지럽게 나열된 연대기표가 백화점식으로 엉성하게 진열돼 관람객들은 "도대체 뭘 보여주려고 한 것인 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많았다. 본 행사장인 자르디니 공원 입구 '인파라디소 아트갤러리'에서 열린 특별기획전 '한국 현대미술의 정수'도 실망스럽긴 마찬가지였다. 하인두, 박서보, 고영훈, 정혜련 등의 작품을 걸었지만 전시를 관통하는 메시지나 작가에 대한 탐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전시장이 레스토랑 카페와 연결된 탓에 박서보의 '묘법' 시리즈 사이로 종업원이 음식을 나르다 식기가 부딪치는 소리로 가득한, 그야말로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미술계 관계자는 "한국의 문화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상황인데도, 상업 갤러리나 민간 재단이 후원한 일부 개인전을 제외하면 공공 기관의 전시 기획 수준이 세계적인 행사에 나서기에 한참 부족하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한 셈"이라며 "차라리 공공기관과 민간 갤러리, 해외 박물관 등과 힘을 합쳐 세대별 한국 작가를 집중적으로 알리는 전시를 선보였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베네치아=안시욱/김보라 기자
오세아니아 원주민이 던진 메시지
마타아호 콜렉티브는 뉴질랜드 마오리족 여성 작가 그룹. 이날 황금사자상을 받은 4인은 옛 조선소 대형 건물을 개조한 아르세날레 전시장 입구 홀에 전시 공간을 가로지르는 대형 섬유 설치 작품을 선보였다. 이들은 "어머니에서 어머니로 이어지는 직물의 전통은 마치 자궁과 같은 인류의 피난처"라고 밝혔다.여성 작가 그룹은 에레나 베이커(테 아티아와 키 와카롱고타이, 응아티 토아 랑아티라), 사라 허드슨(응아티 아와, 응아 투호), 브리짓 레웨티(응아티 랑기누이, 응아티 테 랑기), 테리 타우(랑기타인 키 와이라라파) 등 네 명으로 구성돼 있다. 심사위원단은 이들에게 상을 수여하면서 '빛나는, 시적인, 눈부신'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작품에 대해 호평했다.
"마오리 마타호 콜렉티브는 갤러리 공간을 시적으로 가로지르는 빛나는 끈으로 엮은 구조를 만들었다. 자궁과 같은 요람을 가진 직물의 모계 전통을 참조한 이 설치물은 우주적인 쉼터다. 인상적인 스케일은 혼자가 아닌 집단이어서 가능한 힘과 동시에 창의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벽과 바닥에 드리워진 눈부신 그림자 패턴은 선조들의 기법과 제스처를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기법이 미래에도 지속 가능할 것임을 시사한다." 본 행사장인 자르디니의 호주 국가관에서 열린 아치 무어의 '키스와 친척(Kith and Kin)' (2024)은 검정색 칠판으로 뒤덮인 전시장에 6만5000년에 걸친 족보를 흰 분필로 빼곡히 그려 넣은 공간으로 주목 받았다. 수개월에 걸쳐 호주 원주민의 역사를 그려넣은 작가는 이 가계도가 이름 없는 통계가 아닌, 인류 누구나 모두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는 점에 주목했다. 중앙에는 물 위에 섬처럼 구조물을 띄우고 공권력에 희생 당한 호주 원주민의 부검 조서를 일부 수정한 500개의 문서 더미가 놓였다. 아치 무어는 "베네치아의 운하를 통해 흘러나간 물은 전 세계로 흘러 호주를 감싸고, 나아가 지구 모두를 연결한다"며 "원주민의 가계도에선 모든 생명이 거대한 관계망 속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원주민들이 단지 '도트 페인팅'을 한다는 건 단순한 오해일 뿐 호주 안엔 고유한 전통을 가진 250개의 나라가 있다"며 "원주민과 비원주민이 하나 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고 덧붙였다.
심사위원단은 "호주관은 수천 명의 잊힌 이름들을 기록해 강렬한 미학과 서정성, 가려진 과거에 대한 상실감을 동시에 선사했고, 마타아호 컬렉티브는 마오리 선조들의 눈부신 기법을 미래에 전승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평했다.
치열했던 황금사자상 경쟁
60주년을 맞은 올해 베네치아 비엔날레 미술전 수상 경쟁은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미국관은 체로키 인디언계 작가 제프리 깁슨을, 영국관은 가나 출신으로 30년 넘게 이주민과 소외된 사람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기록해온 존 아캄프라 등 유명 예술가를 내세웠다. 독일관 역시 터키계 이민 2세 작가와 유대인 작가의 논쟁적인 작품을 선보였다.한국은 주제관인 본전시장에 김윤신, 이강승, 이쾌대, 장우성 등 4명을, 한국관에 구정아 작가를 내세웠지만 결국 수상은 불발됐다. 한국관 개관 30주년을 기념해 역대 최대 규모의 한국 작가 전시를 곳곳에서 열며 축제 분위기를 이어갔지만 역부족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식 개막 전 나흘에 걸친 사전 공개 기간 구정아 작가의 '오도라마 시티'를 전시한 한국관은 줄곧 썰렁했다. 텅 빈 전시관에 작가가 수집한 한국 태생 이주민들의 기억 속 향기를 형상화했지만, 막상 관람객들 사이에선 "한국이라는 나라의 정체성도,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와 어떤 연관성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반응이 다수였다.
역대 최대 출전 한국, 숙제만 남겼다
한국은 올해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 개관 30주년을 맞아 역대 최대 규모로 출전했다. 본전시와 한국관 외에도 베네치아 전역에서 열리는 한국 관련 전시만 10개가 넘는다.국공립 기관이 기획하거나 후원한 전시의 수준은 보다 심각했다. 작가 한명의 작품 세계를 깊게 소개하거나 일관된 주제를 담는 전시가 아닌, 유명 작가의 작품을 몰아넣은 '백화점식 전시'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전 세계 80여개국이 참여해 시대의 고민을 공유하고, 국경을 넘어 작가의 작품 세계를 알리는 행사임에도 'K 미술 홍보'와 기관장들의 치적 쌓기에 급급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한 한국관 개관 30주년 특별전 '모든 섬은 산이다'엔 곽훈 서도호 정연두 최정화 등 역대 한국관에 출전한 36명(팀)의 작품을 내걸었지만, 모든 작품이 외딴섬처럼 따로 놀았다. 실제 한국관에 걸렸던 작품이 단 10점뿐인데다 주제와도 어울리지 않는 신작이 다수였다. 광주 비엔날레재단이 올해 30주년을 맞는 광주비엔날레 홍보를 위해 마련한 '마당-우리가 되는 곳'의 상황도 비슷했다. 각종 아카이브 자료와 영상 작업 3편을 제외하면 전시물은 백남준의 '고인돌'과 크초(Kcho)의 '잊어버리기 위하여' 등 두 점이 전부였다. 광주 시의원들과 현장을 찾은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은 "베네치아에 광주 정신, 민주화 정신, 그리고 광주의 맛과 멋을 널리 알리겠다"고 했지만, 미술계에선 "굳이 해외 비엔날레에서 본 주제와 관계없는 전시를 해야 했나"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차라리 백남준에 대한 집중적인 재조명을 했다면, 비엔날레를 찾은 전 세계 관람객들에게 더 깊게 다가갔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실제 현장에선 엽서 또는 A4 용지 크기의 저화질로 출력된 전시 작품과 유명 작가들의 이름만 나열하는 데 그쳐 아쉬움을 자아냈다. 광주비엔날레의 역대 한글 도록과 어지럽게 나열된 연대기표가 백화점식으로 엉성하게 진열돼 관람객들은 "도대체 뭘 보여주려고 한 것인 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많았다. 본 행사장인 자르디니 공원 입구 '인파라디소 아트갤러리'에서 열린 특별기획전 '한국 현대미술의 정수'도 실망스럽긴 마찬가지였다. 하인두, 박서보, 고영훈, 정혜련 등의 작품을 걸었지만 전시를 관통하는 메시지나 작가에 대한 탐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전시장이 레스토랑 카페와 연결된 탓에 박서보의 '묘법' 시리즈 사이로 종업원이 음식을 나르다 식기가 부딪치는 소리로 가득한, 그야말로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미술계 관계자는 "한국의 문화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상황인데도, 상업 갤러리나 민간 재단이 후원한 일부 개인전을 제외하면 공공 기관의 전시 기획 수준이 세계적인 행사에 나서기에 한참 부족하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한 셈"이라며 "차라리 공공기관과 민간 갤러리, 해외 박물관 등과 힘을 합쳐 세대별 한국 작가를 집중적으로 알리는 전시를 선보였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베네치아=안시욱/김보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