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너무 쉬운 한국 투자자들
“추가 진전이 부족하다. 새로운 불확실성이 도입됐다.”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지난 16일 석 달 연속 뜨겁게 나온 소비자물가지수(CPI)에 대해 한 말이다. 1, 2월 CPI가 높게 나왔을 때만 해도 “일시적 장애물(bumps in the road)일 수 있다”고 했던 그가 돌아선 것. 월가는 이제 기준금리가 오는 9월에나 인하될 것으로 예상한다. 11월 치러지는 미국 대선을 감안하면 그 뒤로 미뤄질 것이란 관측도 힘을 얻고 있다.

고금리 장기화…CRE 손실 비상

고금리가 장기화(higher for longer)되면 높은 금리로 어려움을 겪어온 부문에선 고통이 심화될 수 있다. 대표적인 게 부동산 시장이다. 반등 조짐을 보이던 미국 주택 시장엔 다시 냉기가 돌고 있다. 연 6%대로 하락했던 모기지 금리가 연 7%대로 반등하자 3월 기존주택 매매 건수는 한 달 전보다 4.3% 줄었다. 2022년 11월 이후 가장 큰 하락 폭이다.

위기를 겪어온 상업용 부동산(CRE)에선 투자자 손실이 커지고 있다. 신용평가사 S&P 글로벌 레이팅스는 최근 “CRE 시장의 스트레스로 인해 자산 품질과 성과가 저하될 수 있다”며 미국 5개 은행에 대한 신용등급 전망을 낮췄다. PNC은행은 지난주 실적 발표에서 “일부 사무실 빌딩 가치가 30, 40%나 그 이상 떨어졌다”고 밝혔다.

2010년 이후 미국 상업용 부동산에 많은 돈을 집어넣은 한국 투자자들의 손실도 커지고 있다. 이미 뉴욕에서만 ‘20 타임스스퀘어’, ‘1551 브로드웨이’ 등 수십여 개 빌딩 투자에서 피해가 발생했다. 중순위로 불리는 메자닌 위주로 투자한 게 상처를 더 깊게 만든다. 2010년대 중반 저금리 국면에서 수익률을 높이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빌딩 가치가 하락하거나 임대료가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선순위 투자에 앞서 상각될 수 있다.

메자닌 투자자는 위기 때 지분으로 바꾸고 선순위 대출자를 설득해 기존 빌딩주(차주)를 몰아냄으로써 빌딩을 차지할 수 있다. 하지만 현지를 잘 모르는 한국 투자자들은 직접 부동산을 관리해 빌딩 가치를 높일 능력이 없다. 리노베이션 등을 위한 추가 출자도 필요하지만, 신규 자금을 넣을 만한 매력이 있는지 판단 능력도 떨어진다. 뉴욕의 업계 관계자는 “여러 부동산에 투자한 투자자는 어떤 빌딩을 포기하고 어느 건물은 추가 출자해서 살릴지 결정해야 하는데, 대부분 그런 판단조차 못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 돈은 눈먼 돈

이는 많은 투자가 펀드 위주로 이뤄진 탓도 있다. 손실이 큰 상황에서 추가 투자를 받기 어려워서다. 운용사 경영진이나 펀드매니저가 바뀌어 무관심 속에 방치되기도 한다. 조금씩 가치를 상각하다 결국 감정평가 시점이 돌아와 가치가 0이 되는 시점만 기다린다는 말까지 들린다.

뉴욕 부동산업계는 한국 투자자를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있다. 차주와 선순위 대출자가 합의해 감정평가를 통해 건물 가치를 낮춤으로써 한국 투자자의 메자닌 채권을 강제 상각시키려는 일도 있다. 뉴욕의 부동산 개발자가 어떤 사람인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떠올리면 된다. 관리 능력이나 의지가 없는 한국의 투자 자금은 그들에게는 ‘눈먼 돈’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