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물보다 부드럽고 여린 것이 없다. 하지만 굳고 강한 것을 공격하는 데는 물을 이길 수 있는 것이 없다."

중국의 사상가 노자(老子)가 남긴 말이다. 개별 존재로서의 힘은 미미하지만, 수만개의 물방울이 두들기면 제아무리 단단한 돌이라도 뚫리기 마련. 마음 어딘가에 역사적 앙금이 단단히 자리 잡은 한·중·일 3국의 관계에서도 통할 말이다.
제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일본관 전시 전경 /베네치아=안시욱 기자
제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일본관 전시 전경 /베네치아=안시욱 기자
올해 베네치아 비엔날레 일본관 전시는 이렇듯 수많은 물방울을 통해 단절의 극복, 나아가 동아시아의 화해를 노래한다. 이방인들이 머리를 맞댄 결과다. 일본관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예술감독 이숙경 영국 휘트워스 미술관장(55)과 일본 작가 모리 유코(43)가 중국의 노자 사상을 바탕으로 마련한 전시다. 제목은 '함께 구성한다'는 뜻의 '컴포즈(Compose)'.

모리는 일상의 평범한 사물을 활용해 만든 기계 장치 작품으로 잘 알려진 작가다. 지난해 이숙경 관장이 총감독을 맡은 광주비엔날레에 선보인 'I/O'(2011~2023)도 마찬가지. 천장에서 바닥까지 긴 종이를 걸고,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선풍기를 작동시켜 이를 흩날리게 한 독특한 작품으로 눈도장을 찍었다. 이로써 모리와 이 관장은 광주와 베네치아에서 2년 연속 인연을 맺게 됐다.
제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일본관에 설치된 모리 유코의 '누수' 연작 /베네치아=안시욱 기자
제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일본관에 설치된 모리 유코의 '누수' 연작 /베네치아=안시욱 기자
일본관은 모리의 대표작인 '누수(Moré Moré)'와 '부패(Decomposition)' 연작을 걸었다. '누수'는 양동이에서 투명한 관으로 끌어올린 물이 주전자와 우산, 페트병 등 잡동사니를 통과해 다시 양동이로 흘러 들어가게끔 설계된 장치다. 일본 도쿄 지하철역 곳곳의 누수를 막기 위해 설치됐지만, 결국 물줄기를 완벽히 막지 못하는 각종 장치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일본관의 독특한 건축 형태가 전시에 의미를 더했다. 건물 가운데 뚫린 구멍을 통해 물을 담은 호스가 전시장 안팎을 오가고, 빗물이 새로 흘러들어오는 등 물의 무한한 순환을 표현하면서다. 작가는 "물은 때로 사람들 사이의 왕래를 가로막지만, 역설적으로 모든 사람을 연결한다"고 했다.
제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일본관에 설치된 모리 유코의 '부패' 연작 /베네치아 비엔날레 제공
제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일본관에 설치된 모리 유코의 '부패' 연작 /베네치아 비엔날레 제공
'부패' 연작은 과일과 채소가 썩어 문드러지는 시간 자체를 담는다. 사과와 바나나, 수박 등에 연결된 전선이 전등 빛을 밝히고 배경음악이 흘러나오는 스피커를 작동시킨다. 작품에 사용된 과일엔 곰팡이가 슬고 진물이 나오는 모양새다. 과일이 완전히 부패하면 다시 베네치아의 다른 생명을 위한 비료로 돌아간다.

전시는 "현지화와 세계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며 호평받았다. 일본 특유의 아기자기한 설치미술의 멋을 뽐내면서, 동시에 베네치아에서 공수한 소재들로 현지 맞춤형 전시를 기획한 결과다. '누수'에 사용된 각종 잡동사니는 현지 철물점에서, '부패'에 등장하는 과일은 지역 청과점에서 구했다.
제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일본관 전시 전경 /베네치아 비엔날레 제공
제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일본관 전시 전경 /베네치아 비엔날레 제공
일본관 전시에서 누수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다. 열매가 시들고 썩는 과정도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섭리다. 하지만 이러한 불가항력에서도 모리의 작품은 모두를 연결하는 물의 '순환 가능성'에 주목한다. 이 관장은 "모리의 노력은 얼핏 보면 헛되이 느껴지지만, 그의 작품으로부터 우리의 소박한 창의성이 가져올 수 있는 희망을 엿볼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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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안시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