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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로펌업계가 역대급 매출을 올리고 있지만 주변 상황은 녹록지 않다. 미국 금리 인하, 중동 갈등 고조 등 글로벌 대외변수로 불확실성이 커졌으며, 대기업은 투자 활동 무대를 국내보다는 해외로 확장하고 있다. 각 로펌은 외연 확장을 통한 성장 전략을 꾀하면서도 비용을 줄이기 위한 경영효율화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업계 1위인 김앤장과의 격차가 벌어지는 가운데 ‘확실한 2등’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로펌 간 경쟁도 한층 치열해졌다. 여기에 인공지능(AI)을 등에 업은 리걸테크(법률 기술) 플랫폼이 법률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불확실성 속 성장 낙관하는 로펌업계

23일 한국경제신문이 10대 로펌의 올해 매출 목표액을 전수조사한 결과 3조7700억원으로 지난해의 3조3503억원(국세청 부가가치세 신고액) 대비 두 자릿수(약 12.5%) 매출 증가율을 내다봤다. 최근 매출 증가율이 7.2%(2022년)에서 4.9%(2023년)로 2년 연속 둔화한 것을 감안하면, 외연 확장을 통해 경영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목표로 해석된다. 또 하반기 미국 금리 인하 기대로 인수합병(M&A) 등 기업의 투자활동이 회복될 것이란 기대도 깔려 있다.
컴플라이언스·규제 분야 자문 등 강화…로펌, 종합컨설팅으로 성장 드라이브 건다
김앤장은 올해 매출로 지난해 수준(1조3000억원)을 예상하고 있다. 정계성 김앤장 대표변호사는 “기업은 물론 로펌 대응에도 큰 도전의 한 해가 될 것”이라며 “외연 확장만큼이나 경영 효율화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지난해 5대 로펌이 일제히 연 매출 3000억원을 넘기며 경쟁은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법무법인 태평양과 광장이 2018년 ‘3000억 클럽’에 가입했으며, 2022년 율촌에 이어 지난해 세종까지 3000억원 선을 돌파했다.

광장은 지난해 매출 3723억원을 올리며 2위 자리를 지켰지만, M&A 시장 침체로 역성장을 기록하면서 경영 효율화를 위한 ‘타이트 매니지먼트’에 신경 쓰고 있다. 김상곤 광장 대표변호사는 “하반기 금리 인하로 M&A 시장이 회복세로 접어들면 올해 사상 처음으로 매출 4000억원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태평양은 지난해 특허·해외법인을 포함해 4005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4000억원 고지를 밟았다. 국내 매출만 따지면 3714억원으로 광장에 9억원가량 뒤처진다. 이준기 태평양 대표변호사는 “고객 중심으로 조직을 혁신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며 올해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란 자신감을 내비쳤다.

율촌의 지난해 매출은 3285억원으로 전년 대비 8% 증가하며, 5대 로펌 가운데 가장 높은 매출 증가율을 기록했다. 자문에 강점이 있는 율촌은 송무 부문을 강화해 2·3위권 매출 수준인 ‘3700억원 고지’를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3195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3000억 클럽’에 가입한 세종 역시 올해 3700억원 매출 목표를 세웠다. 오종한 세종 대표변호사는 “기업들의 투자는 다소 줄어들 수 있지만 기업의 신사업 진출, 컴플라이언스 및 규제 대응, 구조조정은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규제 자문 시장은 머지않아 모든 로펌의 중요한 수익원이 될 것”이라며 “로펌의 기능이 종합컨설팅 영역으로 확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로펌 순위 바뀔까

컴플라이언스·규제 분야 자문 등 강화…로펌, 종합컨설팅으로 성장 드라이브 건다
지난해 5대 로펌이 2~3위권 태평양과 광장의 성장이 멈춰 있는 동안 4~5위권 율촌과 세종이 치고 올라와 격차를 좁혔다면, 10대 로펌은 순위를 뒤바꿀 만큼 치열한 경쟁 구도를 보였다.

화우는 지난해 2082억원의 매출로 견조한 실적을 거두었다. 경영권 분쟁에서 잇따라 승소했으며 금융규제대응, 지식재산권 소송 등에서 결과가 좋았다. 이명수 화우 대표변호사는 “올해는 두 자릿수 매출 증가율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158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지평은 올해 10% 안팎의 매출 증가를 예상하고 있다. 윤성원 지평 대표변호사는 “가사·세무·도산 분야 전문로펌과의 M&A를 통해 2~3년 내 매출 2000억원 허들을 단숨에 뛰어넘을 것”이라고 밝혔다.

바른은 지난해 매출 1058억원을 올리며 창립 25년 만에 ‘1000억 클럽’에 가입했다. 박재필 바른 대표변호사는 “금융·인사노무 등 자문 분야에서 얼마나 침투하느냐가 관건”이라며 “올해는 한 자릿수 성장률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대륙아주는 지난해 법무법인 매출 931억원을 기록했다. 2022년 설립한 세무법인을 비롯해 특허·세무·관세법인까지 합산한 매출은 1085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803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업계 10위에 올라선 와이케이(YK)의 강경훈 대표변호사는 “올해 매출 1500억원을 넘겨 100% 성장률을 달성할 것”이라며 업계 7위 자리를 노렸다. 전국 27곳의 분사무소를 기반으로 온라인에서 고객 유치활동을 벌이고 있는 이 회사는 올해 10개 분사무소를 추가 설치하고, 4월 기준 250명인 변호사 수를 500명까지 늘릴 방침이다. 로펌업계 판을 흔드는 ‘메기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제로섬’ 게임 피하려면

이처럼 로펌업계 대형화 추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성장세 둔화’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최근 국가 경제성장률이 둔화하면서 로펌업계도 성장성 한계에 봉착했다는 지적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4월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을 2.3%로 유지했지만, 미국 경제성장률은 2.1%에서 3개월 만에 2.7%로 상향 조정했다.

실제 2021년 이전 매년 10%대를 나타냈던 5대 로펌의 매출 증가율은 지난해 3.5%로 급감했다. 강석훈 율촌 대표변호사는 “변호사 1인당 매출 캐파가 한계에 다다르며 로펌업계가 과거처럼 높은 성장세를 보이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양적인 성장보다는 질적인 성장을 이뤄내는 곳이 더 많은 ‘파이’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율촌이 업계 최초로 AI에 기반한 자체 정보기술 시스템을 구축한 이유다.

로펌의 해외 진출도 남은 숙제다. 삼성, SK 등 국내 대기업들이 잇따라 미국에 현지 공장 건설을 발표하는 등 기업의 활동 무대가 나라 밖으로 옮겨가고 있다. 정계성 김앤장 대표변호사는 “지금까지는 대기업의 해외 진출 시 국내 로펌에 실익이 없는 ‘제로섬’ 게임이었지만, 앞으로 역량을 길러 해외에 나가 있는 국내 기업들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기 태평양 대표변호사는 “글로벌 무대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이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내놓는 속도를 규제 당국이 따라가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로펌이 기업과 규제 당국의 현실적인 간극을 메꿔주는 중간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