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라는 생명, 하콘의 마스코트…"고마웠어, 나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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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강선애의 스무살 하콘 기획자 노트
여느 때와 같은 날이었다. 기분 좋은 미팅을 마치고, 언젠가 공연해 보면 좋음직한 공간을 둘러보며 미래의 어느 날을 도모하던 어느 볕 좋은 봄날. 오랜만의 이른 퇴근까지 더해져 한결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에 도착했지만, 공기의 온도와 무게가 평소와 다름을 직감했다. 문 여는 소리를 들으면 버선발로 뛰쳐나오던 녀석이 보이지 않았다. 어지러이 흩어진 흔적들은 하루 동안의 일들을 말해주고 있었다.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가 귓가에서 들리는 듯했다. 녀석은 평소에 잘 가지 않던 공간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힘없는 표정으로 지긋이 나를 바라보았다.
“어이 집사, 이제 왔어…?”
“나무, 아미 볼 수 있나요?”
*편집자 주- 필자가 글을 보내오고 얼마 뒤인 4월 25일 7시 55분. 나선생은 소중했던 19년의 시간을 뒤로 하고, 무지개 다리를 건넜습니다. 아르떼에 쓴 10번째 칼럼이 나선생의 부고 글이 될 줄 저희도 몰랐습니다. 하콘의 음악 여정을 함께 해줘서 고맙다고, 부디 하늘나라에서도 하콘을 계속 지켜봐 달라는 말을 대신 전합니다. R.I.P.
“어이 집사, 이제 왔어…?”
처음부터 모두의 고양이
고양이 ‘나선생’은 2005년, 당시 하콘에서 공연 사진을 촬영하던 스태프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다. 회색빛 털에 낙엽을 주렁주렁 단 녀석이 산책길을 따라 끈질기게 쫓아왔다고 했다. 주인이라도 찾아줄 요량으로 집으로 데리고 와 씻기고 나니 고운 하얀색 털을 가진 고양이였다는 이야기는 듣기만 해도 웃음이 났다. 이윽고 작은 바구니에서 날아갈 듯한 자세로 자거나, 소파에 희한하게 엎드리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천진난만한 모습들이 나를 비롯한 하콘 구성원에게 속속들이 전해졌다. 지금과 달리 당시 아직 고양이라는 생명에는 익숙하지 않았던 우리에게 나선생이 보여주는 모습은 곧 새로운 우주였다. 회색 고양이인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흰 고양이였던 나선생은 이윽고 나에게로 와 19년의 시간을 함께 보냈다. 대학생이던 시절부터 첫 직장에 취직을 하고, 하콘으로 옮겨와 자리 잡기까지의 그 모든 과정 속에 녀석이 있었다. 하콘 사무실이 이사할 때마다 가까운 곳으로 함께 이사를 가곤 했던 숱한 환경의 변화도 인내해 주었다. 사무실 바로 위층이 집이었을 때는 오랫동안 혼자 두는 것이 미안해 종종 함께 출근하기도 했는데, 하콘과의 인연을 증명이라도 하듯 편안하게 활보하며 책상 위를 점령해버리는 이 흰 고양이를 사무실 구성원들은 기꺼이 식구로 받아주었다.하콘의 마스코트 나무 & 아미
예전 하콘의 마스코트는 ‘래트’였다. 연희동 시절이니 그것도 벌써 20년 전 이야기지만, 켜켜이 쌓인 그 시간의 두께가 무색하게 아직도 가끔 그 강아지들은 잘 있냐는 질문을 받는다. 대문을 들어서면 사람 좋아하는 골든 레트리버가 꼬리를 세차게 흔들고, TV가 설치되어 있는 래트의 집과 그 사이에서 앙증맞게 점프를 하는 작은 강아지 ‘코카’와 ‘쉬츠’의 조합은 역시 쉽게 잊힐 장면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고양이 ‘나무’와 ‘아미’가 그 자리를 꿰찼다. 그 보드랍고 유연한 몸으로, 뭐 그게 별일이냐는 듯 한없이 느긋하고 태연한 태도로 기쁨을 주는 고양이의 존재는 숨 가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우리를 둘러싼 일들에 때론 지칠 때 큰 위로가 되어 주고 있다. 게다가 무척 무대 체질이다. 사무실에서 진행하는 유튜브 콘텐츠에 종종 출연하는 녀석들은 라이브 방송 중 책상 위로 가볍게 점프해 게스트 옆에 위풍당당하게 자리 잡기도 하고,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기도, 끊임없이 요구사항을 반영해달라 야옹거리기도 하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업무 중인 책상으로 올라와 키보드를 지르밟고 모니터 앞에 우뚝 서기도, 놀아달라 시위를 하기도, 사무실을 어슬렁거리며 영감 노릇을 하기도 하는 모습은 종종 하콘의 소셜미디어로도 공개되며 랜선 관객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고양이들이 있는 공간은 과천 사무실이지만, 이따금 관객이 대학로 공연장에서 녀석들을 찾는다.“나무, 아미 볼 수 있나요?”
나선생의 나비효과
나선생이 없었다면 나무와 아미가 있었을까? 하콘 스태프를 따라오던 어느 길 잃은 고양이의 발걸음이 나를, 그리고 우리를 고양이라는 생명에 이토록 빠져들게 한 것을 보면 조각에 불과한 어느 작은 일들이 큰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말을 수긍하게 된다. 나조차도 하콘에서 신발 정리를 하다 대표가 되었으니 정말 앞일은 예측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니, 나에게도 하콘에도 나선생의 존재는 ‘장수 고양이’ 그 이상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모두에게 첫 고양이가 되어 주었으니. 나선생의 시간은 그리 오래 남은 것 같진 않아 보인다. 한없이 슬프기만 하던 나도 이제 조금은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 같다. 처음 발견했던 때부터 지금까지 하콘과 인연이 된 작은 친구에게, 오늘은 마음으로 말하련다. 지난 19년 동안 언제나 바쁜 우리 마음속에 느긋함 한 스푼 떨어트려 주어 고맙다고. 덕분에 많이 행복했다고. /강선애 더하우스콘서트 대표*편집자 주- 필자가 글을 보내오고 얼마 뒤인 4월 25일 7시 55분. 나선생은 소중했던 19년의 시간을 뒤로 하고, 무지개 다리를 건넜습니다. 아르떼에 쓴 10번째 칼럼이 나선생의 부고 글이 될 줄 저희도 몰랐습니다. 하콘의 음악 여정을 함께 해줘서 고맙다고, 부디 하늘나라에서도 하콘을 계속 지켜봐 달라는 말을 대신 전합니다. R.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