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골목마다 韓 작가 열풍…꼭 봐야 할 전시는? [2024 베네치아 비엔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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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을 묶고, 지구를 들고 다닌 이승택
'조형과 비조형 사이 예술의 본질은 어디쯤 있을까.'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같은 고민을 안았던 두 명의 작가가 한 자리에 만났다. '한국 전위미술의 선구자' 이승택(92)과 미국 개념미술가 제임스 리 바이어스(92)의 2인전이 이탈리아 베네치아 팔라초 로레단(Palazzo Loredan)에서 열리고 있다.
1932년 함경북도 고원에서 태어난 이승택은 다양한 예술 실험을 통해 기성 문단에 도전했다. 1970년대 전후로 바람과 불, 연기 등 비물질적인 요소를 작품화하고, 사물을 끈으로 묶는 '묶기' 작업으로 대상의 의미와 가치를 새로운 관점에서 탐구했다.
이번 전시에선 이승택의 1960~1970년대 '묶기' 연작을 만나볼 수 있다. 여성의 신체나 책을 노끈으로 묶으며 수축과 팽창의 질감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였다. 그의 작품들은 대상이 상징하는 성역할과 문명, 지식에 대한 저항과 해방의 서사를 암시하기도 한다. 전시는 8월 25일까지.
캔버스를 찢고 묶은 신성희
"나의 작품은 찢어지기 위해 그려진다."유럽을 기반으로 한국 초현실주의 화풍을 이끌어온 신성희(1948~2009)의 개인전이 이탈리아 베네치아 팔라초 카보토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박음 회화'(1993~1997) '엮음 회화'(1997~2009) 등 대표 연작을 조명한다.
1980년대 파리로 거처를 옮긴 신성희는 30여년간 한국 미술계 인사들의 '파리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두 나라의 주요 흐름이었던 단색화와 쉬포르쉬르파스(1970년대 프랑스 전위미술)를 두루 경험하며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형성했다.
작가한테 캔버스는 단순한 도화지 그 이상이다. 화려한 색채로 칠한 캔버스를 정교하게 자르고, 이를 씨줄 날줄 엮듯 재봉했다. '평면 회화'의 물리적 한계에서 벗어난 그의 작품은 현실과 허상 사이 미묘한 인상을 풍긴다. 전시는 7월 7일까지.
18세기 건물에 '점' 찍은 이우환
18세기 베네치아 건축물 팔라초 디에도(Palazzo Diedo) 천장에 이우환(87)의 벽화가 새겨졌다. 이우환과 모리 마리코, 짐 쇼 등 예술가 12명이 참여한 그룹전 '야누스(Janus)'에서 기획한 건축물 리모델링 프로젝트에서다.이우환은 일본 모노하 예술운동의 이론적 토대를 정립한 인물이다. 1970년대부터 점과 선을 활용한 연작으로 감정의 표출을 절제하고 규칙적인 패턴을 반복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조각 작품 '관계항' 시리즈를 통해 돌과 철, 유리 등 전혀 다른 성질을 지닌 소재들이 만나며 발생하는 의미에 주목했다. 캔버스에 점 한두 개를 찍은 '조응' 연작으로 잘 알려졌다.
팔라초 디에도 천장과 벽면에 걸린 '조응' 연작은 주변 프레스코 벽화와 한 몸처럼 어우러진다. 돌을 활용한 조각 작품 신작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전시는 11월 24일까지.
1세대 여성 추상화가 이성자
'한국 1세대 여성 추상화가' 이성자(1918~2009)의 60년 화업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가 열렸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아르테노바(ArteNova)서 열린 개인전 '지구 저편으로'에서다. 작가가 작고한 이후 한국, 그리고 작가의 '제2의 고향' 프랑스 바깥에서 처음 열리는 전시다.이성자는 김환기, 유영국과 함께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평가되는 유일한 여성 작가다.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동양의 음양오행이다. 1951년 프랑스로 이주한 이성자는 근대미술 형식을 빠르게 흡수했다. 서양 현대미술의 형식에 동양적 정신을 결합한 그는 회화와 목판화, 조각, 세라믹, 모자이크 등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했다.
이번 전시는 그의 1959년 초기작부터 2008년 후기작까지 대표작 20여 점을 선보인다. 당대의 시대성을 담거나 파격적인 미적 실험이 돋보이는 작품들 위주로 구성됐다. 전시는 11월 24일까지. 베네치아=안시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