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기 법무법인 태평양 대표변호사. 임대철 기자
이준기 법무법인 태평양 대표변호사. 임대철 기자
“로펌 업계도 고객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수요자를 중심에 둔 조직 쇄신 없인 지속적인 성장도 어렵습니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이준기 대표변호사(사법연수원 22기·사진)는 올해 경영 방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28년 넘게 태평양에서 근무한 이 대표변호사는 작년 10월 임기 3년의 신임 업무집행대표변호사로 선출됐다. 이 대표변호사는 취임 초기부터 로펌 경영에서 고객 중심 가치를 강화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그는 “로펌 차원에서 고객 중심으로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고 조직을 혁신하는 방안을 구성원들과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 로펌 업계에서 보기 드문 ‘매트릭스 조직’ 체계를 도입한 것도 그의 취임 이후 생긴 변화다. 매트릭스 조직은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에 대해 상하 관계의 감독자가 아닌 수평적 관계에 있는 전문가의 지시를 받아 업무를 수행하는 입체적 조직을 말한다. 일반적인 로펌은 실무 분야별로 책임자와 조직을 묶어 운영하는 가운데 기업 사건 등 사안이 복잡할 경우 조직 간 협업을 한다. 태평양은 1980년 설립 초기부터 다른 로펌과 달리 ‘파트너’ 변호사와 이를 돕는 ‘어쏘시에이트’로 구분하지 않고, 시니어와 주니어 변호사로 분류할 정도로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 대표변호사는 “기존 금융, 기업 인수합병(M&A), 송무 등 조직에 고객 관계, 기획 등 ‘기능’을 부여하는 조직 체계를 도입했다”며 “분야별 전문가 간의 수평적 협업 효과를 극대화해 고객 만족도를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 대표변호사는 “로펌의 사회적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글로벌 무대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이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내놓는 속도를 규제 당국이 따라가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법뿐만 아니라 절차적 규제라든지 정보를 제공하게 하는 ‘소프트 레귤레이션’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로펌은 기업과 규제 당국의 현실적인 간극을 메꿔주는 중간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변호사는 특히 국내 기업들이 해외시장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다양한 규제 이슈들을 함께 해결해 나가자고 제안했다. 실제로 태평양은 지난해 성 김 전 주한 미국대사를 글로벌 미래전략센터장으로 영입하는 등 글로벌 대응 역량 강화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이 대표변호사는 “지정학적 불확실성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며 “로펌에선 투자 판단뿐만 아니라 인적 네트워크 지원 같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태평양은 국세청 부가가치세 신고 기준 매출 3713억원을 기록했다. 특허 및 해외사업 포함 시 매출은 4005억원으로 사상 첫 4000억원대를 돌파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 대표변호사는 대내외적 불확실성이 완전히 걷히지 않은 올해도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자신했다. 그는 “기준 금리 인하 등으로 올 하반기부터 경기 침체가 풀릴 것으로 예상한다”며 “기업 활동이 많아지는 만큼 로펌의 일감도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민경진/사진=임대철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