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고의 기억의 힘] 개실마을에 스며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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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프이스트
‘중년 남자’의 위치는 집 안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고, 집 밖으로 며칠 나간다고 하면 조금 허전한 정도이다. 평생 집 밖에서 잘 해왔던 일들을, 집 안에서는 발휘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경북 고령으로 3박4일 팬슈머 여행을 간다"라고 하자, 아내가 "팬슈머가 무엇이야?"라고 물었다. 애절하게 설명하였지만, 아내의 한마디로 정리가 되었다.
"며칠간 잘~ 놀러 갔다 와"
종이와 흙, 나무로 지은 집
흔히 한옥은 천년을 견딘다고 한다. 한옥이 80여 채 모여있는 집성촌 마을이 있다. 경북 고령의 ‘개실마을’이다. 22촌 내의 ‘선산 김씨’가 모여 사는 마을, 타향 출신 외지인이 쉽게 정착하기 어려운 곳이다.
4월의 봄날 오후, 마을은 적막하였다. 거대한 영화 스튜디오처럼 한옥만 덩그러니 있고, 사람의 인적은 없는 공간처럼 보였다. 가끔 어르신들이 전동차를 타고서 스쳐 가고 있다.
경북 고령은 참으로 낯설다.
대구에 인접하여 쉽게 갈 수도 있지만, 쉽게 가지 않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서대구역에서 버스로 이동하여 경계를 넘어서면, 한적한 시골 소도시의 분위기가 난다. 고령 시내에 들어서면 몇 곳의 요양원들이 보이고, 병원도 있지만 소아과는 없다.
지역살이 프로그램인 ‘고령 팬슈머(패스파인더 주관)‘에 참가하게 되었을 때, ’생활 인구‘라는 새로운 의미의 이해가 낯설었다.
도시인들에게 귀농 귀촌은 여전히 큰 장벽이기에, 지역에서 며칠을 경험하고 살아보면서 지역을 이해하는 것이 먼저라고 한다. 고령은 주민들 대부분이 70~80대이고 1인 가구가 많아서, 공동체 마을을 위해서 활동할 수 있는 이들도 많지 않다.
’랑 스튜디오‘의 청년 남매를 만나다
지역살이의 어려움을 딛고서, 개실마을에 새롭게 정착한 '랑 스튜디오' 남매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지역 출신이지만, 공부나 직장으로 인하여 도시로 생활을 옮긴 젊은이가 다시 돌아오는 것은 여전히 부담스럽다. 귀촌 예술인 이숙랑 대표는 5대째 살아온 고택에서 15년째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공방에서는 커피를 내리고 도예와 목공 체험도 같이 하고 있다.
귀향하면서 가족이 살았던 본채와는 별도로, 사랑채와 공방을 새롭게 손을 보았다. 넉넉한 마당은 도자기를 굽거나, 사람들과 대화하는 공간이다. 사랑채의 툇마루에 앉아서, 차를 마시거나 빗소리를 들으면 좋다.
공방 한옥에서 이틀간의 '도예 체험'을 하게 되었다. 유약을 바른 도자기에 1,200도의 열을 가하면 도자기가 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다. 기다리는 동안 함께 한 이들과의 대화가 더욱 소중하였다. 중년 도시인의 고민, 귀촌 젊은이의 미래에 대한 고민. 우리 시대에 함께 살면서 겪어야 하는 어려움이 우리를 더욱 가깝게 한다. 쉽게 정리된 결과보다는, 오히려 공감하는 과정이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항상 따뜻한 차와 먹거리를 내어주는 주인장의 마음 씀이 너무나 좋다. 종갓집과 같이 손님을 맞이하는 ’봉제사 접빈객(奉祭祀 接賓客)‘의 마음이 쉽지는 않은데, 한결같은 따뜻함이 편안하다.
일상의 불편함을 이제는 익숙함으로 남겨두고, 작은 공방을 개실마을과 도시인을 연결하는 공간으로 변화시킨 이에게 존경을 표한다.
100년 고택, ’추우재‘에서의 하룻밤
한옥에서의 하룻밤은 설렘과 당혹스러움의 연속이다. 높낮이가 다른 한옥 본채와 사랑채의 이동도 쉽지 않고, 한지 바른 방문의 차가운 외풍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길게 느껴지는 칠흑 같은 밤과 새벽쯤의 쌀쌀한 기온을 참기 어렵다.
개실마을 언덕 위에는 100년의 세월을 견딘 ’추우재‘ 한옥이 있다. ’친구 따라가는 곳‘이라는 뜻인데, 이름도 참으로 정겹다. 툇마루에 앉아 배롱나무가 있는 마당을 멍하게 바라보아도 좋다. 하루 종일 핸드폰을 보다가 거북목이 되어버린 우리, 이제는 멀리 산과 꽃을 볼 수 있는 잠시의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다.
본채 옆으로는 '고상 마루'도 있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차경'도 색다른 경험이다. 아파트라는 공간에서는 경험할 수 없다. 조금 더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면, 한낮의 노곤함을 짧은 낮잠으로 바꾸는 것도 좋다.
한옥 주인장의 따뜻한 환대도 한옥을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지게 한다. 무엇을 물어봐도 항상 편안하게 말씀하시는, 한옥과 함께 힘든 세월을 견딘 어르신이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
한옥의 아름다움은 ’적당한 불편함‘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좋은 친구를 만나려면 내가 먼저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한다. 전통 한옥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우리는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다.
우리의 인생은 오래 겪어보아야 더욱 단단해지고 성숙해진다. 계절이 바뀌면, 다시 고령의 가을을 느끼고 싶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이동고 이모작생활연구소 대표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경북 고령으로 3박4일 팬슈머 여행을 간다"라고 하자, 아내가 "팬슈머가 무엇이야?"라고 물었다. 애절하게 설명하였지만, 아내의 한마디로 정리가 되었다.
"며칠간 잘~ 놀러 갔다 와"
종이와 흙, 나무로 지은 집
흔히 한옥은 천년을 견딘다고 한다. 한옥이 80여 채 모여있는 집성촌 마을이 있다. 경북 고령의 ‘개실마을’이다. 22촌 내의 ‘선산 김씨’가 모여 사는 마을, 타향 출신 외지인이 쉽게 정착하기 어려운 곳이다.
4월의 봄날 오후, 마을은 적막하였다. 거대한 영화 스튜디오처럼 한옥만 덩그러니 있고, 사람의 인적은 없는 공간처럼 보였다. 가끔 어르신들이 전동차를 타고서 스쳐 가고 있다.
경북 고령은 참으로 낯설다.
대구에 인접하여 쉽게 갈 수도 있지만, 쉽게 가지 않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서대구역에서 버스로 이동하여 경계를 넘어서면, 한적한 시골 소도시의 분위기가 난다. 고령 시내에 들어서면 몇 곳의 요양원들이 보이고, 병원도 있지만 소아과는 없다.
지역살이 프로그램인 ‘고령 팬슈머(패스파인더 주관)‘에 참가하게 되었을 때, ’생활 인구‘라는 새로운 의미의 이해가 낯설었다.
도시인들에게 귀농 귀촌은 여전히 큰 장벽이기에, 지역에서 며칠을 경험하고 살아보면서 지역을 이해하는 것이 먼저라고 한다. 고령은 주민들 대부분이 70~80대이고 1인 가구가 많아서, 공동체 마을을 위해서 활동할 수 있는 이들도 많지 않다.
’랑 스튜디오‘의 청년 남매를 만나다
지역살이의 어려움을 딛고서, 개실마을에 새롭게 정착한 '랑 스튜디오' 남매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지역 출신이지만, 공부나 직장으로 인하여 도시로 생활을 옮긴 젊은이가 다시 돌아오는 것은 여전히 부담스럽다. 귀촌 예술인 이숙랑 대표는 5대째 살아온 고택에서 15년째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공방에서는 커피를 내리고 도예와 목공 체험도 같이 하고 있다.
귀향하면서 가족이 살았던 본채와는 별도로, 사랑채와 공방을 새롭게 손을 보았다. 넉넉한 마당은 도자기를 굽거나, 사람들과 대화하는 공간이다. 사랑채의 툇마루에 앉아서, 차를 마시거나 빗소리를 들으면 좋다.
공방 한옥에서 이틀간의 '도예 체험'을 하게 되었다. 유약을 바른 도자기에 1,200도의 열을 가하면 도자기가 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다. 기다리는 동안 함께 한 이들과의 대화가 더욱 소중하였다. 중년 도시인의 고민, 귀촌 젊은이의 미래에 대한 고민. 우리 시대에 함께 살면서 겪어야 하는 어려움이 우리를 더욱 가깝게 한다. 쉽게 정리된 결과보다는, 오히려 공감하는 과정이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항상 따뜻한 차와 먹거리를 내어주는 주인장의 마음 씀이 너무나 좋다. 종갓집과 같이 손님을 맞이하는 ’봉제사 접빈객(奉祭祀 接賓客)‘의 마음이 쉽지는 않은데, 한결같은 따뜻함이 편안하다.
일상의 불편함을 이제는 익숙함으로 남겨두고, 작은 공방을 개실마을과 도시인을 연결하는 공간으로 변화시킨 이에게 존경을 표한다.
100년 고택, ’추우재‘에서의 하룻밤
한옥에서의 하룻밤은 설렘과 당혹스러움의 연속이다. 높낮이가 다른 한옥 본채와 사랑채의 이동도 쉽지 않고, 한지 바른 방문의 차가운 외풍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길게 느껴지는 칠흑 같은 밤과 새벽쯤의 쌀쌀한 기온을 참기 어렵다.
개실마을 언덕 위에는 100년의 세월을 견딘 ’추우재‘ 한옥이 있다. ’친구 따라가는 곳‘이라는 뜻인데, 이름도 참으로 정겹다. 툇마루에 앉아 배롱나무가 있는 마당을 멍하게 바라보아도 좋다. 하루 종일 핸드폰을 보다가 거북목이 되어버린 우리, 이제는 멀리 산과 꽃을 볼 수 있는 잠시의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다.
본채 옆으로는 '고상 마루'도 있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차경'도 색다른 경험이다. 아파트라는 공간에서는 경험할 수 없다. 조금 더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면, 한낮의 노곤함을 짧은 낮잠으로 바꾸는 것도 좋다.
한옥 주인장의 따뜻한 환대도 한옥을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지게 한다. 무엇을 물어봐도 항상 편안하게 말씀하시는, 한옥과 함께 힘든 세월을 견딘 어르신이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
한옥의 아름다움은 ’적당한 불편함‘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좋은 친구를 만나려면 내가 먼저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한다. 전통 한옥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우리는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다.
우리의 인생은 오래 겪어보아야 더욱 단단해지고 성숙해진다. 계절이 바뀌면, 다시 고령의 가을을 느끼고 싶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이동고 이모작생활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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