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러 회사의 핵심 반도체 증착 장비 제작 기술 수만 건을 중국으로 빼돌린 일당이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중앙지검 정보기술범죄수사부는 25일 국내 반도체 증착 장비 기술과 엔지니어들을 중국으로 빼돌려 장비 제작에 사용한 혐의(산업기술보호법·부정경쟁방지법 위반)로 중국법인 엑스(X)사의 김 모(56) 부사장과 방 모(49) 장비설계팀장, 김 모(44) 장비설계팀원, 신 모(51) 전기팀장, 유 모(45) 장비설계팀원 등 5명과 X법인을 기소했다고 밝혔다.

중국에 체류하며 소환에 불응한 중국인 대표 종 모(43) 씨와 경영 파트 부사장 등 3명은 기소 중지 처분했다.

김 부사장 등은 2022년 2∼9월 각자 재직 중이던 A·B·C 회사로부터 반도체 증착 장비 설계 기술 자료를 외부 서버로 유출하고 지난해 3∼6월 X사의 반도체 증착 장비 제작에 사용한 혐의를 받는다.

김 부사장은 2015년까지 삼성전자 부장으로 재직하다 2016년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MXT)로 자리를 옮겼고 2021∼2022년에는 A사에서 원자층증착장비(ALD) 공정 개발팀장으로 일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1월 김 부사장 등 3명을 일부 혐의로 구속기소를 한 뒤 범행 전모를 규명해 이날 추가 기소하고 다른 관련자들도 함께 재판에 넘겼다.

검찰에 따르면 김 부사장은 중국에는 반도체 D램 제조 핵심 설비인 ALD 개발에 성공한 회사가 없는 점을 이용해 중국 태양광 회사의 투자를 받아 중국에 반도체 장비 회사 X사를 신설했다.

또 지인을 통해 여러 반도체 증착장비 회사의 분야별 전문가를 섭외한 뒤 기존의 2배 이상인 수억원대의 연봉과 X사 주식 배분을 약속하며 기술 유출과 이직을 설득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이 각자 재직하던 회사에서 빼돌린 기술자료는 그 규모가 수만건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수집한 자료는 공항에서 걸리지 않도록 국내에 별도 서버를 구축해 저장한 뒤 중국에서 가상사설망(VPN)을 이용해 내려받았고, 중국 내 위장 회사와 고용계약을 맺어 영문 가명으로 활동했다. 김 부사장 등은 중국에서 불과 4개월 만에 ALD 장비 설계 도면을 작성해 제작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A·B·C사는 총 736억원을 들여 관련 기술을 개발했는데 이번 기술 유출로 연간 524억원의 손해가 우려된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또한 생산 경쟁력 약화에 따른 반도체 산업 전반의 피해는 수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검찰은 일단 김 부사장 일당이 국내 협력 업체를 통해 제작한 장비 모듈을 압수해 범행을 차단했다. 그러나 기술자료가 이미 유출된 만큼 현지에 남아있는 중국인 대표 등이 추후 이를 활용할 우려는 남아있다.

검찰 관계자는 "(복잡한 공정 때문에) 중국 내에서만 장비를 제작하기는 불가능한 상황이지만 (다른 업체 등을 통해 장비를 제작하려 할 수 있어) 계속 지켜봐야 한다"며 "중국인 대표 등이 국내에 입국하면 곧바로 수사할 수 있도록 조처해놨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번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김 부사장이 삼성전자의 기술자료를 대량 유출해 별도 서버에 보관 중인 사실도 확인해 수사 중이다.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