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몸이 아팠다. 몸이 음식을 받아주지 않았다. 두통도 왔고, 몸이 추운 것인지 봄이 추운 것인지 헷갈렸다. 작년엔 봄나물을 많이 먹었는데 올해는 봄나물을 먹지 못했다.

한의원에 가 침을 맞고 약을 지어왔다. 한약을 먹는 동안, 먹지 말아야 하는 음식이 얼마나 많은지 어제는 동네 책방 지구불시착 사장님과 함께 저녁 메뉴를 고르다가 “한약이 몸에 안 좋은 거 아니야?”라는 말까지 들었다. 그래도 겨우겨우 찾아낸 길 건너 보리밥집의 비빔밥은 얼마나 맛있던지. 그러다 생각났다. 피해야 할 음식에 무가 있었는데, 보리밥에 넣어 비벼 먹으려던 무생채가 무라는 것을. 한참 비빔밥 안에서 무생채 가닥을 골라내는데 사장님이 말했다. “한약은 정말 나쁜 것 같아.”

얼마 전엔 군산 하재마을 팽팽 문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미아 해변 낭독 유랑단과 함께 군산에 다녀왔다. 약속 시간에 맞춰 서울역에 도착했는데, 역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들이 한 명도 없었다. 단체 카카오톡을 보니, 출발지가 용산역이란다. 이럴 땐 뭐든 거듭 확인하는 김은지 시인의 부재가 아쉽다.

“서울역인데 왜 서울이라고 되어 있어? 용산도 서울이잖아?” “대구역을 봐. 여기도 대구라고 되어 있잖아? 익산역도 익산. 구례구역도 구례구. 맞지?”

은지 시인은 나의 맞춤 설명에 만족한 듯 그제야 서울이 서울역인 것을 받아들였었다. 살다 보면,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는 삶의 진가를 알게 되는 날이 오고 그날이 오늘이다. 기차 출발 18분을 남겨 두고 허겁지겁 지하철 1호선을 향해 뛰었다. 용산역까지는 두 정거장이니까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시간이다.

“출발지가 용산역이야?” “표 누가 끊었는데?” “나….”

아무 핑계라도 대고 싶은데 표까지 내가 끊었다니! 겨우 도착해서 기차에 올라탔는데 나 같은 친구가 또 있었다. 기차가 출발하고 5분쯤 지나서 나타난 이는 전욱진 시인이었다. 인간은 참 이상하다. 실수도 같이하면 기쁘다. 나와 같은 착각을 한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는 사실이 ‘누구나 그럴 수 있다’는 말처럼 위로가 된다. 늦은 사람은 더 늦은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나도 늦었어.” 그러면 어떤 감정이든 둘이 나눌 수 있다.

미군 기지 가까운 곳에 하제마을 팽나무가 있다. 600년 동안이나 한자리에 뿌리내린 팽나무를 지켜내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나눌 수 있을까? 낭독회라고 해서 시 읽을 생각만 하고 왔는데, 낭독 전에 감자 심기를 해야 한단다. 엄마는 감자는 두렁에 놓는다고 했다. 씨감자를 반으로 잘라서 놓으면, 씨감자가 싹을 틔우고 줄기를 밀어 꽃을 피우는 동안, 땅속에선 감자가 주렁주렁 달린다고 했다.

고영민의 시 ‘수필’에서 “씨감자는 반을 잘라서 묻지/자른 곳에 검은 재를 발라서 묻지”라고 노래한다. 그런데 왜 반을 잘라 묻을까? 시인의 해석이 놀랍다. “잘려 나간 반을 흙 속에서 생각”하기 위해서란다. ‘씨감자’처럼 잘려 나간 반을 생각하느라 내 몸이 이렇게나 아픈 건가. 풍경을 잘라 땅속에 묻고 그 풍경이 다시 자라기를 기다려본다.

이날 함께 간 싱어송라이터 허정혁님은 팽나무를 생각하며 지었다는 신곡을 발표했다. 팽나무 앞에서 신곡 발표라니! 첫 구절을 듣는데 소름이 돋았다. 진심이 담긴다는 게 이런 걸까? 흔들리는 촛불 이미지가 선명한 가사들이 그의 목소리를 타고 땅과 하늘로 번졌다. 흔들리는 촛불이 주위를 밝히듯이 내 마음 한구석이 몰래 환해졌다. 신곡의 제목을 두고 고민한다고 했는데, 씨감자가 땅속에서 온전히 하나가 되듯이 꼭 맞는 제목을 가졌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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