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물리학상 수상자 9명에 물었다, 당신의 뇌는 다르냐고 [서평]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물리학자는 두뇌를 믿지 않는다>
브라이언 키팅 지음
이한음 옮김 / 다산초당
272쪽|1만8500원
브라이언 키팅 지음
이한음 옮김 / 다산초당
272쪽|1만8500원
1955년 4월 18일.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이 대동맥 파열로 76세에 사망했다. 그는 자기 몸을 화장해달라고 유언했지만, 뇌만큼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부검을 맡았던 병리학자 토마스 하비 박사가 아인슈타인의 뇌를 훔쳐 달아났기 때문이다. 무엇이 아인슈타인을 그토록 똑똑하게 만들었는지 밝히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20여년간 아인슈타인의 뇌 조직을 뜯어본 하비는 어떤 특별한 점도 발견하지 못했다. 특수 상대성 이론, 일반 상대성 이론, 질량·에너지 등가 원리….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천재성은 재능의 결과였을까, 순전히 운의 영역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비결이 있었을까.
최근 출간된 <물리학자는 두뇌를 믿지 않는다>는 이런 질문에서 출발한다. 보통 과학자라고 하면 사회성은 다소 부족하고, 자기 세계에 푹 빠진 천재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들도 결국 평범한 사람이다. 책은 호기심과 끈기, 그리고 '쓸모없는' 것들을 한 번 더 돌아보는 삶의 태도가 천재를 만들어낸 핵심 동력이었다고 주장한다. 책을 쓴 브라이언 키팅 캘리포니아주립대 물리학 교수는 우주배경복사의 관측 장치인 BICEP를 개발한 인물. '노벨상을 탈 뻔한 작가'로 본인을 소개한 전작 <노벨상을 놓치다>로 유명해진 과학자이자 작가다.
70여년 전에 죽은 아인슈타인한테 비결을 직접 물어볼 수는 없는 일이다. 대신 저자는 현재 살아있는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9명을 인터뷰했다. 전자기력과 약한 핵력이 초기 우주에서 같은 힘이었다는 걸 보여준 셀런 글래쇼, 가설로만 존재하던 제4의 물질을 발견한 칼 위먼 등 하나같이 '천재'로 불릴만한 사람들이다.
꽤 겸손한 답변을 내놓은 사람도 있었다. 2011년 수상자 애덤 리스는 "노벨상은 대체로 딱 맞는 시간에 딱 맞는 장소에 있었기에 그 발견에 기여한 운 좋은 사람이 받는 상"이라고 말했다. 2017년 노벨상을 받은 배리 배리시는 시상대에 오른 순간 과연 자신이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의구심이 들었다고 했다.
이들도 불확실성과 불안, 자기 의심 속에서 어려운 판단을 내려야 했다. 천재적인 영감은 번개처럼 번뜩이기보단, 밤낮없이 노력한 끝에 자신도 모르게 싹텄다. 칼 위먼의 답변은 곱씹을 만하다. "성공의 순간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잘 드러나지 않아요. 그 모든 막막한 고민이 올바를 방향으로 가도록 뇌를 준비시키고 있었다는 것을요."
자칫 쓸모없어 보이는 일들을 집요하게 파헤친 결과다. 배리시 박사가 인류 최초로 중력파 검출기를 개발하기까지는 40여년의 세월이 들었다. 레이저와 진공 기술 등 극도로 섬세한 기술 결합이 필요했다. 아인슈타인도 이를 절대 검출할 수 없을 것이라며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꾸준히 연구비를 따내고, 인식을 제고해온 연구진의 과정은 노벨상 수상만큼이나 값지다.
책의 표지부터 챕터마다 등장하는 삽화는 영국 초현실주의 거장 마크 에드워즈의 그림이다. 애드워즈는 중절모를 쓴 익명의 남자를 주로 그렸다. 그의 화폭에서 인물은 개성이나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돋보이는 천재가 아닌,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평범한 사람들의 표상이다.
물리학자의 이야기를 담았지만, 책에는 어떤 방정식도 연습문제도 없다. 물리학자들의 인내심과 끈기의 사례가 주를 이룬다. 불확실성 속 무력감을 견뎌온 물리학자들의 고민은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삶과도 통하는 지점이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우리의 허영, 자기애는 천재 예찬을 부추긴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기적은 아니다"라고 적었듯 말이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하지만 20여년간 아인슈타인의 뇌 조직을 뜯어본 하비는 어떤 특별한 점도 발견하지 못했다. 특수 상대성 이론, 일반 상대성 이론, 질량·에너지 등가 원리….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천재성은 재능의 결과였을까, 순전히 운의 영역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비결이 있었을까.
최근 출간된 <물리학자는 두뇌를 믿지 않는다>는 이런 질문에서 출발한다. 보통 과학자라고 하면 사회성은 다소 부족하고, 자기 세계에 푹 빠진 천재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들도 결국 평범한 사람이다. 책은 호기심과 끈기, 그리고 '쓸모없는' 것들을 한 번 더 돌아보는 삶의 태도가 천재를 만들어낸 핵심 동력이었다고 주장한다. 책을 쓴 브라이언 키팅 캘리포니아주립대 물리학 교수는 우주배경복사의 관측 장치인 BICEP를 개발한 인물. '노벨상을 탈 뻔한 작가'로 본인을 소개한 전작 <노벨상을 놓치다>로 유명해진 과학자이자 작가다.
70여년 전에 죽은 아인슈타인한테 비결을 직접 물어볼 수는 없는 일이다. 대신 저자는 현재 살아있는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9명을 인터뷰했다. 전자기력과 약한 핵력이 초기 우주에서 같은 힘이었다는 걸 보여준 셀런 글래쇼, 가설로만 존재하던 제4의 물질을 발견한 칼 위먼 등 하나같이 '천재'로 불릴만한 사람들이다.
꽤 겸손한 답변을 내놓은 사람도 있었다. 2011년 수상자 애덤 리스는 "노벨상은 대체로 딱 맞는 시간에 딱 맞는 장소에 있었기에 그 발견에 기여한 운 좋은 사람이 받는 상"이라고 말했다. 2017년 노벨상을 받은 배리 배리시는 시상대에 오른 순간 과연 자신이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의구심이 들었다고 했다.
이들도 불확실성과 불안, 자기 의심 속에서 어려운 판단을 내려야 했다. 천재적인 영감은 번개처럼 번뜩이기보단, 밤낮없이 노력한 끝에 자신도 모르게 싹텄다. 칼 위먼의 답변은 곱씹을 만하다. "성공의 순간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잘 드러나지 않아요. 그 모든 막막한 고민이 올바를 방향으로 가도록 뇌를 준비시키고 있었다는 것을요."
자칫 쓸모없어 보이는 일들을 집요하게 파헤친 결과다. 배리시 박사가 인류 최초로 중력파 검출기를 개발하기까지는 40여년의 세월이 들었다. 레이저와 진공 기술 등 극도로 섬세한 기술 결합이 필요했다. 아인슈타인도 이를 절대 검출할 수 없을 것이라며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꾸준히 연구비를 따내고, 인식을 제고해온 연구진의 과정은 노벨상 수상만큼이나 값지다.
책의 표지부터 챕터마다 등장하는 삽화는 영국 초현실주의 거장 마크 에드워즈의 그림이다. 애드워즈는 중절모를 쓴 익명의 남자를 주로 그렸다. 그의 화폭에서 인물은 개성이나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돋보이는 천재가 아닌,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평범한 사람들의 표상이다.
물리학자의 이야기를 담았지만, 책에는 어떤 방정식도 연습문제도 없다. 물리학자들의 인내심과 끈기의 사례가 주를 이룬다. 불확실성 속 무력감을 견뎌온 물리학자들의 고민은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삶과도 통하는 지점이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우리의 허영, 자기애는 천재 예찬을 부추긴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기적은 아니다"라고 적었듯 말이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