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값된 구리, 광산 쟁탈전에 엘리엇과 중국도 '분탕' [원자재 이슈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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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BHP의 남아공 앵글로아메리칸 인수 시도
사모펀드 엘리엇, 중국 정부 달려들어 방해 움직임
글로벌 구리 쟁탈전 '점입가경'
친환경 전환의 핵심 소재인 구리와 구리광산 쟁탈전이 점입가경이다. 지난주 초 호주 광산기업 BHP가 구리광산을 노리고 영국에 본사를 둔 광산기업 앵글로아메리칸에 390억달러(약 53조원)의 인수 제안을 했지만, 며칠 만에 거절당했다. 앵글로아메리칸은 런던에 상장됐으나 1917년 독일 출신 창업주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설립한 기업이다. BHP가 추가 제안을 고민하는 사이 미국 사모펀드 엘리엇이 지난 26일 앵글로아메리칸 지분 2.5%를 확보했다는 공시자료를 발표하면서 금융투자업계도 떠들썩해졌다.
인수전이 관심을 끄는 것은 앵글로아메리칸이 유명한 다이아몬드 기업 드비어스를 거느리고 있으며, 세계 최대 백금 생산 기업이기 때문이 아니다. BHP의 관심사는 앵글로아메리칸이 보유한 칠레와 페루의 구리 광산이며 나머지는 부수 협상 대상일 뿐이다.
이런 가운데 구리 시장 '큰손' 중국 정부는 자국 독과점 금지 조항을 들며 인수를 저지할 물밑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 로펌 안지브로드의 독과점규제 전문가인 송잉 파트너 변호사는 지난 26일 블룸버그통신에 "구리의 경우 중국이 글로벌 공급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에 이 사건은 이른바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면밀히 조사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과거에도 BHP의 1500억달러 규모 리오틴토 인수를 무산시킨 전례가 있다.
청동기를 만들던 시절과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하고 구리 선을 깔기 시작하던 시절에도 구리는 귀한 금속이었다. 이후 채굴 공법과 제련 기술의 발달로 전선과 모터뿐만 아니라 동전, 군함, 전자제품 등 폭발적으로 늘어난 수요를 맞췄다. 세계 곳곳에서 구리 광산 개발이 이뤄지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구리 생산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세계 최대 생산국 칠레의 추키카마타 광산은 19세기 조업을 시작할 무렵 동광석의 구리 함량이 10~15%에 달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2% 이하로 내려갔고, 현재 채취하는 동광석의 함량은 0.6% 정도에 불과하다. 철광석의 철 함량이 60%에 달하는 것과 비교하면 형편없다. 구리 6㎏을 얻으려면 1t에 가까운 광석을 채취하고 폐기해야 한다는 얘기다. 광산 기업들은 고순도 구리 광산을 찾지 못하고 있고, 결국 낮은 품질의 구리 광맥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대량의 암석을 캐내기 위해 넓은 땅을 폭파하고, 초대형 장비를 동원한다. 엄청난 폐석 등 폐기물이 나온다. 게다가 전기 관련 제품의 재료로 사용하는 고순도 구리를 만들기 위해선 대량의 화학약품을 사용해야 한다. 한국 광해공단이 투자한 파나마의 구리광산 주변 주민들이 채굴 사업에 반대하며, 정부가 광산을 폐쇄하기에 이른 배경이다.
구릿값 과열 여부는 관계없이 장기적으로 가격이 우상향할 것이란 전망은 지배적이다. 그동안 꾸준히 올랐고 최근 중국 등 글로벌 경기가 좋지 않음에도 가격이 오르고 있다. 현재 칠레와 파나마의 생산 차질에 이어 콩고민주공화국(DRC)과 잠비아 등 아프리카 구리 생산국들도 가뭄으로 타격을 입은 탓이다.
각국의 구리 생산이 정상화되더라도 생산 증가분이 구리 수요 증가를 못 따라갈 가능성도 있다. 전세계 연간 구리 수요는 30년 사이 두 배로 늘어났고, S&P글로벌의 지난해 예측에 따르면 2035년 연간 수요량이 지금보다 20%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환경 관련 규제가 날이 갈수록 엄격해지고 있어 생산량을 늘리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아프리카 같은 곳으로 가려고 해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확산으로 환경오염과 인권침해 등에 대한 감시를 피하기 쉽지 않다.
전문가들인 광산 기업들 가운데 다수도 구리가 유망하다고 여긴다. 철광석과 석탄 등을 버리고 구리를 비롯한 친환경 산업에 쓰이는 금속으로 갈아타고 있는 BHP가 대표적이다. BHP는 지난해 오즈미네랄즈(OZ미네랄즈) 인수 당시 주가의 49%를 웃돈으로 더 주고 66억달러를 지급했다. 금광 기업 바릭골드(배릭골드) 역시 구리 광산을 보유한 캐나다 광산 기업 퍼스트퀀텀미네랄스(FQM) 인수를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참고문헌>
Material world. Ed conway. 2023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사모펀드 엘리엇, 중국 정부 달려들어 방해 움직임
글로벌 구리 쟁탈전 '점입가경'
친환경 전환의 핵심 소재인 구리와 구리광산 쟁탈전이 점입가경이다. 지난주 초 호주 광산기업 BHP가 구리광산을 노리고 영국에 본사를 둔 광산기업 앵글로아메리칸에 390억달러(약 53조원)의 인수 제안을 했지만, 며칠 만에 거절당했다. 앵글로아메리칸은 런던에 상장됐으나 1917년 독일 출신 창업주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설립한 기업이다. BHP가 추가 제안을 고민하는 사이 미국 사모펀드 엘리엇이 지난 26일 앵글로아메리칸 지분 2.5%를 확보했다는 공시자료를 발표하면서 금융투자업계도 떠들썩해졌다.
인수전이 관심을 끄는 것은 앵글로아메리칸이 유명한 다이아몬드 기업 드비어스를 거느리고 있으며, 세계 최대 백금 생산 기업이기 때문이 아니다. BHP의 관심사는 앵글로아메리칸이 보유한 칠레와 페루의 구리 광산이며 나머지는 부수 협상 대상일 뿐이다.
이런 가운데 구리 시장 '큰손' 중국 정부는 자국 독과점 금지 조항을 들며 인수를 저지할 물밑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 로펌 안지브로드의 독과점규제 전문가인 송잉 파트너 변호사는 지난 26일 블룸버그통신에 "구리의 경우 중국이 글로벌 공급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에 이 사건은 이른바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면밀히 조사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과거에도 BHP의 1500억달러 규모 리오틴토 인수를 무산시킨 전례가 있다.
구리 6㎏ 얻으려면 광석 1톤 캐내야
구리 광산 쟁탈전이 벌어진 것은 신규 광산 개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조업중인 광산에 매장된 구리는 점점 고갈되는 가운데 수요는 늘어나고 있다. 태양광 패널, 전기차와 차 충전을 위한 전력망 구축을 위한 전선 등 탈탄소 전기화 등 구리가 필요한 곳이 많다. 구리 구하기가 어려워지면서 중국인들이 한국 고물상을 돌며 구리 스크랩을 휩쓸어가고 있을 정도다.(한경 3월22일 A10면 <"중국 싹쓸이에 당했다"…70억 날린 사장님 '눈물의 호소'> 참조)청동기를 만들던 시절과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하고 구리 선을 깔기 시작하던 시절에도 구리는 귀한 금속이었다. 이후 채굴 공법과 제련 기술의 발달로 전선과 모터뿐만 아니라 동전, 군함, 전자제품 등 폭발적으로 늘어난 수요를 맞췄다. 세계 곳곳에서 구리 광산 개발이 이뤄지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구리 생산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세계 최대 생산국 칠레의 추키카마타 광산은 19세기 조업을 시작할 무렵 동광석의 구리 함량이 10~15%에 달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2% 이하로 내려갔고, 현재 채취하는 동광석의 함량은 0.6% 정도에 불과하다. 철광석의 철 함량이 60%에 달하는 것과 비교하면 형편없다. 구리 6㎏을 얻으려면 1t에 가까운 광석을 채취하고 폐기해야 한다는 얘기다. 광산 기업들은 고순도 구리 광산을 찾지 못하고 있고, 결국 낮은 품질의 구리 광맥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대량의 암석을 캐내기 위해 넓은 땅을 폭파하고, 초대형 장비를 동원한다. 엄청난 폐석 등 폐기물이 나온다. 게다가 전기 관련 제품의 재료로 사용하는 고순도 구리를 만들기 위해선 대량의 화학약품을 사용해야 한다. 한국 광해공단이 투자한 파나마의 구리광산 주변 주민들이 채굴 사업에 반대하며, 정부가 광산을 폐쇄하기에 이른 배경이다.
너도나도 구리 투자...가격 거품?
구리가 돈이 된다는 게 널리 알려지며 국내 은행 프라이빗뱅킹(PB)센터에서도 고객들에게 투자를 권유할 정도가 됐다. 이 때문에 구릿값이 지난주 t당 1만달러를 넘긴 것은 투기성 수요가 몰린 탓이란 지적도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구리 현물 가격과 선물 가격 격차는 1994년 이후 최대 수준으로 벌어진 상태다. 골드만삭스는 지난달 "구리 가격이 연말까지 t당 1만달러에 도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전망이 나온 후 불과 한 달 만에 1만달러를 돌파했다.구릿값 과열 여부는 관계없이 장기적으로 가격이 우상향할 것이란 전망은 지배적이다. 그동안 꾸준히 올랐고 최근 중국 등 글로벌 경기가 좋지 않음에도 가격이 오르고 있다. 현재 칠레와 파나마의 생산 차질에 이어 콩고민주공화국(DRC)과 잠비아 등 아프리카 구리 생산국들도 가뭄으로 타격을 입은 탓이다.
각국의 구리 생산이 정상화되더라도 생산 증가분이 구리 수요 증가를 못 따라갈 가능성도 있다. 전세계 연간 구리 수요는 30년 사이 두 배로 늘어났고, S&P글로벌의 지난해 예측에 따르면 2035년 연간 수요량이 지금보다 20%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환경 관련 규제가 날이 갈수록 엄격해지고 있어 생산량을 늘리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아프리카 같은 곳으로 가려고 해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확산으로 환경오염과 인권침해 등에 대한 감시를 피하기 쉽지 않다.
전문가들인 광산 기업들 가운데 다수도 구리가 유망하다고 여긴다. 철광석과 석탄 등을 버리고 구리를 비롯한 친환경 산업에 쓰이는 금속으로 갈아타고 있는 BHP가 대표적이다. BHP는 지난해 오즈미네랄즈(OZ미네랄즈) 인수 당시 주가의 49%를 웃돈으로 더 주고 66억달러를 지급했다. 금광 기업 바릭골드(배릭골드) 역시 구리 광산을 보유한 캐나다 광산 기업 퍼스트퀀텀미네랄스(FQM) 인수를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참고문헌>
Material world. Ed conway. 2023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