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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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 한국 총선이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지만, 일본의 우려와 달리 ‘반일(反日) 감정’이 고조되지 않는 점에 일본 언론이 주목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때 학습 효과, 선진국으로서의 자신감 등이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29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한국 총선에서 집권 여당의 대패에도 일본에 대한 여론은 조용하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민주당은 이번 선거전에서 한때 한·일 관계를 위협하는 슬로건을 내걸었다”며 “친일파로 간주되는 보수 후보의 낙선이나 도쿄전력의 후쿠시마 제1 원전 처리수 해양 방출을 용인한 윤석열 정부에 대한 항의를 촉구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일본’은 이번 선거에서 쟁점이 되지 않았다며 처리수 방류 항의 집회도 소규모에 그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닛케이는 한국 외교가 관계자를 인용, ‘고요함’의 배경엔 문재인 정부가 있다고 보도했다. 문재인 정부와 아베 신조 정권은 사안마다 대립하며 한·일 관계를 어렵게 만들었지만, 당시 학습 효과가 역설적으로 한·일 관계를 진정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신문은 “(한국이) ‘일본은 괘씸하다’며 주먹을 휘두르면 한·일 관계가 또다시 틀어지고, 결국 한국에도 득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한국인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문재인 정부와 아베 신조 정권의 ‘의외의 유산’이라는 시각이다.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면서 생긴 자신감도 이유 중 하나라는 분석이다. 닛케이는 “글로벌 기업을 다수 보유한 한국에 일본은 더 이상 특별한 나라가 아니다”며 “총선에서 ‘일본 패싱’이 일어난 것도 이런 심리가 깔려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반일 감정이 남아있긴 하지만, 일본이 선거의 쟁점이 되지는 않는 것이 한국 사회의 변화라고 덧붙였다.

한·일 산업 협력도 재개되고 있다. 지난 22일 일본 도쿄에선 한·일 산업장관 회담과 일본 기업의 대(對)한국 투자신고식이 열렸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사이토 겐(齋藤健) 일본 경제산업상은 양국 경제계 간 협력을 촉진하기로 했다. 2018년 이후 6년 만에 열린 회담이다.

양국 기업들도 다시 뛰고 있다. 삼성전자는 400억엔(약 3500억원)을 투입, 일본 요코하마에 첨단 반도체 연구·개발(R&D) 거점을 세우기로 했다. 일본 도레이와 반도체 핵심 소재 기업 A사는 이번 양국 산업장관 회담 중 한국에 총 1억2000만달러(약 1600억원) 규모의 투자신고서를 제출했다.

격변하는 글로벌 통상 환경에서 한·일 산업 협력은 중요한 생존 전략이다. 특히 에너지 분야는 양국 모두 대외 의존도가 높다는 점에서 손을 잡았을 때 윈·윈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이번 회담에서 탈탄소·신에너지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배경이다.

닛케이는 나아가 “미·일 동맹에는 ‘아미티지-나이 보고서’ 같은 초당적 전문가 제안이 있다”며 “한·일도 외교-국방장관회담(2+2) 창설이 시대적 요청”이라고 제언했다. “양국이 현안에서는 대립하지만, 민주주의와 자유시장 가치, 글로벌 경제에서의 전략적 이익은 일치한다”며 협력을 주문했다.

도쿄=김일규 특파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