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결코 혼자 걷게 하지 않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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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김정민의 세상을 뒤집는 예술읽기
다큐멘터리 영화 <힐스보로우 (Hillsborough)> (2014)
다큐멘터리 영화 <힐스보로우 (Hillsborough)> (2014)
4월이 가기 전에 오래된 노래를 듣습니다. 저는 이 노래가 그렇게 오래된 노래인 걸 몰랐습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에 우연히 본 영상에서, 격리된 의료진을 위해 격리병동 밖 의료진들이 응원의 노래를 합창하며 서로 연대의 힘을 나누는 모습에 감동하여 찾아보게 되었어요. 전 세계가 격리되고 단절되었던 그때, 서로의 응원과 격려가 절실했습니다.
폭풍 속을 홀로 걸을 때에는 고개를 높이 드세요 그리고 어둠을 두려워 마세요
그 폭풍 끝에는 황금빛 구름과 종달새의 달콤한 은빛 노래가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바람을 헤치고 걸어요 빗속을 뚫고 걸어요
비록 당신의 꿈이 상처받고 흔들려도
걷고 또 걸어요 마음속에 희망을 품고
당신은 결코 혼자 걷지 않을 거예요
당신은 결코 혼자 걷지 않을 거예요
이 노래는 1945년 뮤지컬 <Carousel (회전목마)>에 삽입된 곡이었는데, 뮤지컬 말미에서 주인공의 졸업하는 딸을 격려하는 노래로 불리면서 미국에서는 졸업식 노래로 불리었고 제리 앤 페이스메이커스, 엘비스 프레슬리, 핑크 플로이드 등 여러 뮤지션에 의해 리메이크되었습니다. 그런데 졸업식의 노래였던 이 곡 ‘You’ll Never Walk Alone (당신은 혼자 걷지 않을 거예요)’은 1989년 ‘어떤’ 사건을 계기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EPL) 리버풀 FC의 응원가가 되어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축구경기장에 울려 퍼지게 됩니다.
[제리 앤 페이스메이커스 - You’ll Never Walk Alone]
일명 ‘힐스버러 대참사’로 알려진 이 사건은 1989년 4월 15일 영국 잉글랜드 셰필드에 있는 힐스버러 스타디움에서 있었던 리버풀 FC와 노팅엄 포레스트의 FA컵 준결승전이 있던 날, 경찰의 과실로 (2016년 4월 26일 판결) 과다인원을 한꺼번에 입장시켜 대형 압사 사고가 발생하여 총 97명이 사망 (당시 사망 94명 부상 766명 추가 3명 사망)한 참사입니다.
몇 달 전 tvN 채널의 <벌거벗은 세계사>라는 프로그램에서도 소개되었는데요. 이 사건 ‘힐스버러 대참사’ (다큐멘터리 영화 <힐스보로우 (Hillsborough)>)는 다양한 관점에서 조망될 수 있는 사건입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건 축구를 보러 간 무고한 시민이 어이없이 죽고 다친 대형 참사이며, 축구를 매개로 리버풀이란 지역과 희생자 가족이 함께 27년을 싸운 끝에 참사의 원인은 경찰의 과실임이 판결되었고, 사건 발생 34년만인 2023년 1월이 되어서야 영국 경찰이 힐스버러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노래 ‘You’ll Never Walk Alone’은 리버풀의 응원가가 되어 34년 동안이나 축구경기장에 울려 퍼지게 되었고, 리버풀 FC의 유니폼에 새겨진 희생자 숫자 ‘96’ (97번째 희생자가 2021년 사망하면서 22/23시즌부터 97로 바뀜)은 모두가 함께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했습니다.
34년. 너무나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고 경찰의 과실이 판명 나던 그날, 리버풀 시민들과 희생자와 유가족을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이 법원 앞으로 달려가 이 노래를 함께 떼창했던 유튜브 영상은 정말 보는 이의 마음을 먹먹하게 합니다.
[리버풀 시민과 유가족 지지자가 함께 부르는 You’ll Never Walk Alone]
4월이면 우리에게도 잊지 말아야 할 노래가 있습니다. 올해 10주기를 맞은 ‘4.16 세월호의 노래’입니다.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은 아직도 폭풍 속을 헤치고 빗속을 뚫으며 걷고 있는 중입니다. 그 길 끝에 황금빛 구름과 종달새의 은빛 노래가 기다리고 있을 거란 희망을 품고 말이지요.
지금은 첨단기술의 발달로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입니다. 점차 AI가 인간의 일을 대신하고 그래서 많은 것들이 자동화되고 있습니다. 안전을 예방하는 일도 안전을 지키는 일도, 또 안전사고 과실을 판단하는 일도 점점 기계가 대신하고, 그 와중에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기억마저도 외주화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한 인간의 정체성이 그렇듯, 한 사회의 정체성도 기억 없이는 세워질 수 없습니다. 독일에서는 홀로코스트를, 캄보디아에서는 킬링필드를, 미국에서는 9·11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리버풀의 시민들이 이 노래, ‘You’ll Never Walk Alone’을 함께 부른 끝에 희망(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하였듯, 우리도 세월호나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이 폭풍 속을 혼자 걷도록 하지 않아야 희망을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세월호 10주기를 기념하는 책 <왜 우리는 쉽게 잊고 비슷한 일은 반복될까요?>의 저자인 사회학자 노명우는 말합니다. ‘참사’로 불리는 충격적인 재난으로부터 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을 권리가 있지만, 우리의 현실 세계는 생각보다 안전하지 않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재난을 외면한 자리에는 더 참담한 ‘재난의 반복’이 들어서고 있다는 것은 이미 확인할 수 있다는 거죠. 다만, 우리 세대가 ‘기억의 연대’로 타인의 고통을 향해 함께 걸어간다면 미래 세대에게 반복될지 모르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요.
김정민 나은미래플랫폼 주식회사 ESG경영연구소 소장
[제리 앤 페이스메이커스 - You’ll Never Walk Alone]
일명 ‘힐스버러 대참사’로 알려진 이 사건은 1989년 4월 15일 영국 잉글랜드 셰필드에 있는 힐스버러 스타디움에서 있었던 리버풀 FC와 노팅엄 포레스트의 FA컵 준결승전이 있던 날, 경찰의 과실로 (2016년 4월 26일 판결) 과다인원을 한꺼번에 입장시켜 대형 압사 사고가 발생하여 총 97명이 사망 (당시 사망 94명 부상 766명 추가 3명 사망)한 참사입니다.
몇 달 전 tvN 채널의 <벌거벗은 세계사>라는 프로그램에서도 소개되었는데요. 이 사건 ‘힐스버러 대참사’ (다큐멘터리 영화 <힐스보로우 (Hillsborough)>)는 다양한 관점에서 조망될 수 있는 사건입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건 축구를 보러 간 무고한 시민이 어이없이 죽고 다친 대형 참사이며, 축구를 매개로 리버풀이란 지역과 희생자 가족이 함께 27년을 싸운 끝에 참사의 원인은 경찰의 과실임이 판결되었고, 사건 발생 34년만인 2023년 1월이 되어서야 영국 경찰이 힐스버러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노래 ‘You’ll Never Walk Alone’은 리버풀의 응원가가 되어 34년 동안이나 축구경기장에 울려 퍼지게 되었고, 리버풀 FC의 유니폼에 새겨진 희생자 숫자 ‘96’ (97번째 희생자가 2021년 사망하면서 22/23시즌부터 97로 바뀜)은 모두가 함께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했습니다.
34년. 너무나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고 경찰의 과실이 판명 나던 그날, 리버풀 시민들과 희생자와 유가족을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이 법원 앞으로 달려가 이 노래를 함께 떼창했던 유튜브 영상은 정말 보는 이의 마음을 먹먹하게 합니다.
[리버풀 시민과 유가족 지지자가 함께 부르는 You’ll Never Walk Alone]
4월이면 우리에게도 잊지 말아야 할 노래가 있습니다. 올해 10주기를 맞은 ‘4.16 세월호의 노래’입니다.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은 아직도 폭풍 속을 헤치고 빗속을 뚫으며 걷고 있는 중입니다. 그 길 끝에 황금빛 구름과 종달새의 은빛 노래가 기다리고 있을 거란 희망을 품고 말이지요.
지금은 첨단기술의 발달로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입니다. 점차 AI가 인간의 일을 대신하고 그래서 많은 것들이 자동화되고 있습니다. 안전을 예방하는 일도 안전을 지키는 일도, 또 안전사고 과실을 판단하는 일도 점점 기계가 대신하고, 그 와중에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기억마저도 외주화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한 인간의 정체성이 그렇듯, 한 사회의 정체성도 기억 없이는 세워질 수 없습니다. 독일에서는 홀로코스트를, 캄보디아에서는 킬링필드를, 미국에서는 9·11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리버풀의 시민들이 이 노래, ‘You’ll Never Walk Alone’을 함께 부른 끝에 희망(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하였듯, 우리도 세월호나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이 폭풍 속을 혼자 걷도록 하지 않아야 희망을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세월호 10주기를 기념하는 책 <왜 우리는 쉽게 잊고 비슷한 일은 반복될까요?>의 저자인 사회학자 노명우는 말합니다. ‘참사’로 불리는 충격적인 재난으로부터 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을 권리가 있지만, 우리의 현실 세계는 생각보다 안전하지 않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재난을 외면한 자리에는 더 참담한 ‘재난의 반복’이 들어서고 있다는 것은 이미 확인할 수 있다는 거죠. 다만, 우리 세대가 ‘기억의 연대’로 타인의 고통을 향해 함께 걸어간다면 미래 세대에게 반복될지 모르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요.
김정민 나은미래플랫폼 주식회사 ESG경영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