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엔·달러 환율이 34년 만에 160엔대를 돌파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9일 엔·달러 환율이 34년 만에 160엔대를 돌파했다. 사진=연합뉴스
일본 엔화 가치가 34년 만에 최저치까지 떨어지면서 엔화로 된 자산에 투자한 '일학개미'들의 근심이 커지고 있다.

30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 들어 전날까지 국내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사들인 해외 상장지수펀드(ETF)는 일본 증시에 상장된 미국 장기채 투자상품 '아이셰어즈 20년 이상 미국채 엔화 헤지 ETF(iShares 20+ Year US Treasury Bond JPY Hedged ETF)'로 이 기간 3억5415만달러(약 4886억2075만원)를 순매수했다.

일학개미들은 최근 일주일 사이에만 이 상품을 추가로 1220만8470달러(약 170억원)어치 더 사들여 지속적으로 '엔화 가치 상승, 미 금리인하'에 베팅했다.

이 상품은 미국채 20년물 이상 장기채로 구성된 지수를 추종하면서 엔·달러 환율 변동을 헤지(hedge)한 상품이다. 엔화로 만기 20년 이상의 미국 초장기채에 투자할 수 있어 향후 미국의 금리가 내려가면 채권 가격 상승과 더불어 환차익까지 노릴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투자자들이 대거 몰렸다.

두 번째로 많이 사들인 ETF는 엔화로 7~10년 미 국채에 투자하는 '아이셰어즈 코어 7-10년 미국채 엔화 헤지 ETF'(iShares Core 7-10 Year US Treasury Bond JPY Hedged ETF)로 올 들어 전날까지 2887만달러(398억2905만원)의 자금이 몰렸다.

그러나 역대급 엔화 가치 하락에 일학개미들의 평가손실이 커지고 있다. 엔·달러 환율은 이미 지난 24일부터 심리적 마지노선인 155엔을 넘어섰고 전날에는 일본 금융당국의 개입 구간으로 알려진 160엔대까지 치솟았다. 달러당 엔화가 160엔을 넘어선 것은 1990년 4월 이후 34년 만에 처음이다.

실제 '아이셰어즈 20년 이상 미국채 엔화 헤지' ETF는 이 기간 가격이 8.05% 떨어졌다. 가격 하락에 환차손까지 포함하면 원화 기준 손실은 더 늘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BOJ) 총재가 지난 26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현재의 엔저(低) 현상이 물가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통화정책 역시 환율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고 언급한 점이 엔·달러 환율의 급등 원인으로 꼽힌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연내 세 차례 인하가 가능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지만 현재 시장에선 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정책에 민감하게 연동하는 2년물 국채금리는 지난 26일 다시 5%를 돌파했다.

일학개미들의 시선은 다음달 1일 열릴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제롬 파월 미 Fed 의장이 어떤 발언을 내놓을지에 가 있다.

미 블룸버그통신은 "FOMC 위원들이 평균적으로 올해 금리인하를 '더 적게' 예상한다고 파월 의장이 밝힐 가능성이 높다"며 "좀 더 매파적 방향에서는 인하가 없을 가능성을 암시하거나 현재 기본적 시나리오는 아니지만 인상이 논의 테이블에 있을 가능성을 시사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엔화 약세 현상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날이 일본 공휴일로 거래량이 적었음에도 엔화 가치가 급격히 변동한 것을 보면 시장이 흔들리기 쉬운 상태가 된 것으로 보인다"며 "시장이 계속 달러화 투자에 나서면서 달러 가치에 대한 상승 압력은 높아지는 반면 엔화에 대한 매수 동력은 떨어진 상태"라고 진단했다.

문남중 대신증권 연구원은 "당초 일본이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해제하면 엔화가 강세로 틀 수 있을 거라 시장에서 기대했다"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을 보면 결국 미 Fed의 금리인하 시점이 변곡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