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파견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법원이 정해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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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CHO Insight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불법파견의 경우 파견근로자를 직접 고용하여야 한다. 파견법은 사용사업주가 파견근로자를 직접 고용하는 경우의 파견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규정하고 있다.
1. 사용사업주의 근로자 중 해당 파견근로자와 같은 종류의 업무 또는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가 있는 경우: 해당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취업규칙 등에서 정하는 근로조건에 따를 것
2. 사용사업주의 근로자 중 해당 파견근로자와 같은 종류의 업무 또는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가 없는 경우: 해당 파견근로자의 기존 근로조건의 수준보다 낮아져서 아니될 것
위 규정에 따라 사용사업주의 근로자 중 해당 파견근로자와 같은 종류의 업무 또는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가 있는 경우에는 파견근로자의 근로조건이 법에 의해 정해져 있다. 그러나 사용사업주의 근로자 중 해당 파견근로자와 같은 종류의 업무 또는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가 없는 경우에는 사용사업주와 파견근로자가 새로운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것을 전제로 해당 파견근로자의 기존 근로조건의 수준 이상에서 근로조건을 설정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을 뿐이다.
이와 관련하여 파견근로자의 경우에는 사용사업자가 사용하고 있는 근로자들에게 적용되는 근로조건 중 최저수준의 것을 적용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으나, 신규채용 근로자에 대해서는 기존 근로조건보다 더 낮은 기준으로 채용하거나 별도의 직군을 만들어 더 낮은 기준을 적용할 수 있으므로 기존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견해는 법적 근거가 희박하다.
따라서 기존에는 사용사업주의 근로자 중 해당 파견근로자와 같은 종류의 업무 또는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가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양 당사자 사이의 특별한 합의가 없는 이상 기존 근로조건대로 근로계약이 체결되었다고 판단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에서 “사용사업주가 근로자파견관계를 부인하는 등으로 인하여 자치적으로 근로조건을 형성하지 못한 경우에는 법원은 개별적인 사안에서 근로의 내용과 가치, 사용사업주의 근로조건 체계(고용형태나 직군에 따른 임금체계 등), 파견법의 입법 목적, 공평의 관념, 사용사업주가 직접 고용한 다른 파견근로자가 있다면 그 근로자에게 적용한 근로조건의 내용 등을 종합하여 사용사업주와 파견근로자가 합리적으로 정하였을 근로조건을 적용할 수 있다”고 판결하였다{대법원 2024. 3. 12. 선고 2019다223303, 2019다223310(병합) 판결}.
대법원은 “개정 파견법에 따라 사용사업주에게 직접고용의무가 발생하였는데 사용사업주의 근로자 중 동종·유사 업무 근로자가 없는 경우에는 기존 근로조건을 하회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사용사업주와 파견근로자가 자치적으로 근로조건을 형성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판시하면서도 고용간주를 규정하면서 고용간주된 근로조건에 대해서는 명확히 규정하고 있지 아니한 제정 파견법 당시 고용간주된 근로조건의 내용은 구체적인 사안에서 법원이 합리적으로 정할 수 있다는 대법원의 결정을 선례로 들면서, 개정 파견법에서도 동일하게 법원이 직접 고용된 파견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정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대법원의 판결의 논거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우선 개정 파견법은 제정 파견법과 달리 고용간주가 아니라 고용의무로 법을 개정하였다. 고용간주의 경우에는 양 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파견근로기간 중 근로관계가 법에 의해 시작된 것이므로 양 당사자 사이의 근로조건 역시 소급하여 법에 의해 정해질 필요가 있었으나, 이에 대해 법률에서 아무런 규정이 없었으므로 법원의 해석이 필요한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파견법을 개정하면서 입법자는 사용사업주에 직접 고용의무를 부과하여 고용되기 전까지는 근로자파견관계로 보고 고용된 이후에야 비로소 사용사업주와 근로관계가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개정 파견법에서는 양 당사자 사이의 근로조건은 양 당사자의 사적 자치의 영역에 해당하고, 설사 사용사업주가 불법파견이 아님을 다투고 있다고 하더라도 법원은 소송과정에서 사용사업주의 의사를 파악하여 직접 고용의 근로조건을 결정하여야 하지, 법원이 사용사업주의 의사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근로조건을 정할 수 없다.
물론 계약의 영역에도 양 당사자의 법률행위에 흠결이 있는 경우에는 당사자의 가정적 의사를 탐구하여 그 법률행위를 해석하는 이른바 ‘보충적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사용사업주가 해당 파견근로자가 불법파견이 아니라고 주장한다고 하여 해당 사용사업주의 가정적 의사가 당연히 해당 파견근로자의 현재 근로조건 이상으로 직접 고용하겠다는 것이라고 볼 수 없으며, 오히려 사용사업주가 동종·유사 근로자가 없다고 예비적으로 다투었다면, 불법파견으로 인정되었을 경우 해당 파견근로자의 현재 근로조건으로 직접 고용을 하겠다는 것이 사용사업주의 가정적 의사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용사업주의 가정적 의사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 적어도 법원은 사용사업주에게 직접 고용 시 근로조건에 관한 석명을 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적 자치는 헌법상 행복추구권에 근거한 것으로 관련 법률의 규정 없이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 파견법은 직접 고용의무만을 규정함으로써 계약 체결의 자유를 제한하였지만, 근로조건에 대해서는 사적 자치를 인정하였다. 따라서 법원은 파견법에서 제한하지 않은 영역을 넘어서서 사적 자치를 제한하여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은 점을 고려하여 대법원은 “이와 같이 파견근로자에게 적용될 근로조건을 정하는 것은 본래 사용사업주와 파견근로자가 자치적으로 형성했어야 하는 근로조건을 법원이 정하는 것이므로 한쪽 당사자가 의도하지 아니하는 근로조건을 불합리하게 강요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하고는 있으나, 그와 같은 판시만으로 법원이 임의로 사적 자치를 제한한 것이 정당화될 수 없다.
이와 같은 점에 비추어 볼 때,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헌법상 부여된 대법원의 법률해석 권한을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와 같은 판결로 인해 하급심 법원으로서는 단순히 동종·유사 업무 근로자의 존부만을 심리하는 것을 넘어 동종·유사 업무 근로자가 없는 경우에 적용되어야 할 합리적인 근로조건까지 심리해야 하는 부담을 갖게 되었다. 본질적으로 불법파견 소송은 법원에 재량이 부여되는 민사비송사건이 아니라 양 당사자의 주장의 당부에 대해 법원이 판단하는 민사소송이라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위와 같은 심리가 적절한 것인지 의문일 뿐만 아니라, 양 당사자 역시 법원이 정한 근로조건에 승복하기 어려워 분쟁이 더욱 복잡해 질 것으로 예상된다.
근로관계는 본질적으로 사법적인 관계이고 강행법규에서 제한되지 않는 이상 양 당사자의 사적 자치에 의해 규율된다. 따라서 법원이나 국가기관의 후견적인 개입은 법에 의해 허용된 범위 내에서 제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법원은 근로관계에 대해 양 당사자의 합의를 무시한 채 공정이라는 잣대로 무분별한 개입을 하는 것이 하는가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위 대법원 판결도 그와 같은 경향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대법원에서는 이와 같은 법원의 기조가 과연 타당한 것인지 심사숙고하였으면 좋겠다.
김종수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1. 사용사업주의 근로자 중 해당 파견근로자와 같은 종류의 업무 또는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가 있는 경우: 해당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취업규칙 등에서 정하는 근로조건에 따를 것
2. 사용사업주의 근로자 중 해당 파견근로자와 같은 종류의 업무 또는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가 없는 경우: 해당 파견근로자의 기존 근로조건의 수준보다 낮아져서 아니될 것
위 규정에 따라 사용사업주의 근로자 중 해당 파견근로자와 같은 종류의 업무 또는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가 있는 경우에는 파견근로자의 근로조건이 법에 의해 정해져 있다. 그러나 사용사업주의 근로자 중 해당 파견근로자와 같은 종류의 업무 또는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가 없는 경우에는 사용사업주와 파견근로자가 새로운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것을 전제로 해당 파견근로자의 기존 근로조건의 수준 이상에서 근로조건을 설정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을 뿐이다.
이와 관련하여 파견근로자의 경우에는 사용사업자가 사용하고 있는 근로자들에게 적용되는 근로조건 중 최저수준의 것을 적용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으나, 신규채용 근로자에 대해서는 기존 근로조건보다 더 낮은 기준으로 채용하거나 별도의 직군을 만들어 더 낮은 기준을 적용할 수 있으므로 기존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견해는 법적 근거가 희박하다.
따라서 기존에는 사용사업주의 근로자 중 해당 파견근로자와 같은 종류의 업무 또는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가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양 당사자 사이의 특별한 합의가 없는 이상 기존 근로조건대로 근로계약이 체결되었다고 판단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에서 “사용사업주가 근로자파견관계를 부인하는 등으로 인하여 자치적으로 근로조건을 형성하지 못한 경우에는 법원은 개별적인 사안에서 근로의 내용과 가치, 사용사업주의 근로조건 체계(고용형태나 직군에 따른 임금체계 등), 파견법의 입법 목적, 공평의 관념, 사용사업주가 직접 고용한 다른 파견근로자가 있다면 그 근로자에게 적용한 근로조건의 내용 등을 종합하여 사용사업주와 파견근로자가 합리적으로 정하였을 근로조건을 적용할 수 있다”고 판결하였다{대법원 2024. 3. 12. 선고 2019다223303, 2019다223310(병합) 판결}.
대법원은 “개정 파견법에 따라 사용사업주에게 직접고용의무가 발생하였는데 사용사업주의 근로자 중 동종·유사 업무 근로자가 없는 경우에는 기존 근로조건을 하회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사용사업주와 파견근로자가 자치적으로 근로조건을 형성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판시하면서도 고용간주를 규정하면서 고용간주된 근로조건에 대해서는 명확히 규정하고 있지 아니한 제정 파견법 당시 고용간주된 근로조건의 내용은 구체적인 사안에서 법원이 합리적으로 정할 수 있다는 대법원의 결정을 선례로 들면서, 개정 파견법에서도 동일하게 법원이 직접 고용된 파견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정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대법원의 판결의 논거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우선 개정 파견법은 제정 파견법과 달리 고용간주가 아니라 고용의무로 법을 개정하였다. 고용간주의 경우에는 양 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파견근로기간 중 근로관계가 법에 의해 시작된 것이므로 양 당사자 사이의 근로조건 역시 소급하여 법에 의해 정해질 필요가 있었으나, 이에 대해 법률에서 아무런 규정이 없었으므로 법원의 해석이 필요한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파견법을 개정하면서 입법자는 사용사업주에 직접 고용의무를 부과하여 고용되기 전까지는 근로자파견관계로 보고 고용된 이후에야 비로소 사용사업주와 근로관계가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개정 파견법에서는 양 당사자 사이의 근로조건은 양 당사자의 사적 자치의 영역에 해당하고, 설사 사용사업주가 불법파견이 아님을 다투고 있다고 하더라도 법원은 소송과정에서 사용사업주의 의사를 파악하여 직접 고용의 근로조건을 결정하여야 하지, 법원이 사용사업주의 의사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근로조건을 정할 수 없다.
물론 계약의 영역에도 양 당사자의 법률행위에 흠결이 있는 경우에는 당사자의 가정적 의사를 탐구하여 그 법률행위를 해석하는 이른바 ‘보충적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사용사업주가 해당 파견근로자가 불법파견이 아니라고 주장한다고 하여 해당 사용사업주의 가정적 의사가 당연히 해당 파견근로자의 현재 근로조건 이상으로 직접 고용하겠다는 것이라고 볼 수 없으며, 오히려 사용사업주가 동종·유사 근로자가 없다고 예비적으로 다투었다면, 불법파견으로 인정되었을 경우 해당 파견근로자의 현재 근로조건으로 직접 고용을 하겠다는 것이 사용사업주의 가정적 의사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용사업주의 가정적 의사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 적어도 법원은 사용사업주에게 직접 고용 시 근로조건에 관한 석명을 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적 자치는 헌법상 행복추구권에 근거한 것으로 관련 법률의 규정 없이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 파견법은 직접 고용의무만을 규정함으로써 계약 체결의 자유를 제한하였지만, 근로조건에 대해서는 사적 자치를 인정하였다. 따라서 법원은 파견법에서 제한하지 않은 영역을 넘어서서 사적 자치를 제한하여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은 점을 고려하여 대법원은 “이와 같이 파견근로자에게 적용될 근로조건을 정하는 것은 본래 사용사업주와 파견근로자가 자치적으로 형성했어야 하는 근로조건을 법원이 정하는 것이므로 한쪽 당사자가 의도하지 아니하는 근로조건을 불합리하게 강요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하고는 있으나, 그와 같은 판시만으로 법원이 임의로 사적 자치를 제한한 것이 정당화될 수 없다.
이와 같은 점에 비추어 볼 때,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헌법상 부여된 대법원의 법률해석 권한을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와 같은 판결로 인해 하급심 법원으로서는 단순히 동종·유사 업무 근로자의 존부만을 심리하는 것을 넘어 동종·유사 업무 근로자가 없는 경우에 적용되어야 할 합리적인 근로조건까지 심리해야 하는 부담을 갖게 되었다. 본질적으로 불법파견 소송은 법원에 재량이 부여되는 민사비송사건이 아니라 양 당사자의 주장의 당부에 대해 법원이 판단하는 민사소송이라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위와 같은 심리가 적절한 것인지 의문일 뿐만 아니라, 양 당사자 역시 법원이 정한 근로조건에 승복하기 어려워 분쟁이 더욱 복잡해 질 것으로 예상된다.
근로관계는 본질적으로 사법적인 관계이고 강행법규에서 제한되지 않는 이상 양 당사자의 사적 자치에 의해 규율된다. 따라서 법원이나 국가기관의 후견적인 개입은 법에 의해 허용된 범위 내에서 제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법원은 근로관계에 대해 양 당사자의 합의를 무시한 채 공정이라는 잣대로 무분별한 개입을 하는 것이 하는가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위 대법원 판결도 그와 같은 경향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대법원에서는 이와 같은 법원의 기조가 과연 타당한 것인지 심사숙고하였으면 좋겠다.
김종수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