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방향) 그룹 세븐틴, 뉴진스, 지코X제니 /사진=각 소속사 제공
(시계방향) 그룹 세븐틴, 뉴진스, 지코X제니 /사진=각 소속사 제공
하이브(352820)가 내홍을 겪는 와중에도 차질 없이 '정상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예정대로 소속 아티스트들의 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레이블마다 호성적을 내며 좋은 흐름을 보이고 있다.

특히 프로듀싱 영역에서 완전한 독립을 보장받고 있는 세 레이블 어도어, KOZ엔터테인먼트,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가 활약하고 있다.

지코가 이끌고 있는 KOZ엔터테인먼트의 분위기 반전이 유독 눈에 띈다. KOZ엔터테인먼트는 지난해 하이브 산하 국내 레이블 가운데 가장 낮은 매출(194억)과 영업익(90억)을 기록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르세라핌, 뉴진스, 투어스 등을 성공시킨 타 레이블과 비교당하며 '본사의 눈치를 봐야 하는' 아픈 손가락이었다.

하지만 신인 보이그룹 보이넥스트도어에 지코까지 소속 라인업이 풀가동 중인 현재 기대치가 단숨에 올라갔다. 블랙핑크 제니와 손잡고 약 2년 만에 컴백한 지코는 국내 음원차트 1위를 석권했고, 해외 차트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보이넥스트도어는 미국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에 전작보다 69계단이나 뛴 93위로 진입했다. '실력파'로 입소문이 나면서 국내에서도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다.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는 대표 그룹 세븐틴에 이어 올 초 투어스까지 인기를 끌며 '남돌 명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세븐틴은 지난달 29일 베스트 앨범을 발매해 하루에만 226만906장을 팔아치웠다. 신곡 '마에스트로'는 국내 음원차트에서도 상위권에 올라 '롱런 인기'를 기대케 한다.

하이브 내홍 사태의 중심에 있는 어도어 소속 뉴진스도 굳건한 인기를 과시하고 있다. 신곡 '버블 검' 뮤직비디오는 조회수 1000만회를 빠른 속도로 넘기고 2000만회를 향해가고 있다. 뉴진스만의 감성으로 가득 찬 영상으로 오는 24일 발매되는 새 더블 싱글 '하우 스위트(How Sweet)'에 대한 기대감을 제대로 높였다는 평가다.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회사 분위기와는 별개로 각 레이블 직원들은 큰 동요 없이 예정된 아티스트 일정에 집중하고 있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역시 이번 주 서울 콘서트를 시작으로 월드투어에 돌입한다. '멀티 레이블 체제' 아래 이미 모든 시스템이 아티스트별로 철저하게 구분돼 있었기 때문에 업무적으로는 전혀 타격이 없는 분위기다. 문제는 어도어인데 이 역시 뉴진스의 활동을 우선시하자는 것에는 의견이 일치해 일정대로 콘텐츠가 공개됐다. 당일 하이브, 어도어 명의의 보도자료도 배포됐다.
사진=하이브
사진=하이브
이번 사태로 하이브는 몇 가지 숙제를 떠안게 됐다. 우선 장단점이 극명하게 드러난 '멀티 레이블 체제'에 대한 점검이다. 민희진 어도어 대표는 뉴진스에 대한 차별과 부당 대우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이브는 이를 부인했지만, 멀티 레이블 체제가 과도한 경쟁을 유발할 수 있는 구조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점까지 외면하긴 어렵다. 한 지붕 아래 모인 가족들이지만 독립성을 무기로 지나친 경쟁 환경에 놓였고, 상대적으로 실적이 좋지 않은 레이블이 마음고생했다는 사실은 업계 관계자들이라면 익히 알고 있다.

이번에도 지코의 신곡 발매일과 뉴진스의 '버블 검' 뮤직비디오 공개 일자가 단 하루 차이였다. 이달 뉴진스와 방탄소년단 RM도 같은 날 컴백해 논란이 됐다.

다만 멀티 레이블 체제가 엔터 사업에 완전히 맞지 않는 시스템이냐고 묻는다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지금처럼 본사가 갈등에 처한 상황에서도 각 레이블이 문제없이 움직일 수 있다는 건 강력한 장점이기도 하다. 1인에 기대는 구조였다면 불가능했을 이야기다.

결과적으로 각 레이블 간 패밀리십과 소통이 강조된다. 사실 하이브는 멀티 레이블 체제를 강조하면서도 방시혁 의장이 빅히트뮤직, 쏘스뮤직, 빌리프랩 아티스트의 프로듀싱을 맡아 제왕적 구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민 대표는 이를 '군대 축구'에 비유하기도 했다. 상명하복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었다.

하이브는 여론을 한방에 뒤집은 민 대표의 호소를 계기 삼아 엔터가 대기업 규모가 됐지만 마냥 공장처럼 돌아갈 수 없는 감성 영역이라는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토대로 시스템을 유연하게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방시혁 민희진 / 사진=하이브
방시혁 민희진 / 사진=하이브
그에 앞서 민 대표와의 매듭을 명확히 짓는 게 급선무다. 레이블 간 불협, 아티스트 베끼기 등의 문제와는 별개로 양측의 갈등 이면에는 '돈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이브와 민 대표는 지난달까지 주주 간 재계약 협상을 진행해 왔다. 그 과정에서 이견이 생겨 협상은 교착 상태에 빠졌고, 이후 민 대표는 '뉴진스 베끼기' 등 의혹을 제기하며 내부고발에 나섰다.

하이브는 어도어 설립 당시인 2021년 민 대표에게 총발행주식의 10%에 해당하는 스톡옵션과 13배 배수가 적용된 풋백옵션을 제공했다. 여기에 더해 총발행주식의 5%만큼의 현금 특별상여도 약속했다. 지분율로는 총 15%였다. 이후 뉴진스가 성공하며 민 대표는 추가 지분 5%까지 받아 총 20%(측근 지분 2% 포함)의 지분을 확보했다.

풋백옵션은 15% 지분에만 걸려 있었는데, 민 대표 측은 추가된 지분 5%에 대해서도 풋백옵션을 적용해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주 간 계약서상 명시된 '경업금지 조항' 때문에 하이브 동의 없이는 해당 5% 지분을 팔 수도 없고, 하이브 외에 엔터업에 종사할 수도 없다며 '노예 계약'이라 주장했다. 아울러 풋백옵션 상 배수를 30배로 올려달라고도 했다.

하이브는 5%에 대한 풋백옵션 적용은 수용했지만, 민 대표가 요구한 30배 배수를 적용하면 풋백옵션 행사가가 기존 1000억원에서 '2400억원+α'로 뛰기 때문에 과도하다며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5%에 대한 풋백옵션을 수용하면서 8년 근속 시 행사할 수 있도록 추가 조건을 달아 민 대표와 이견이 생겼다.

지분 15%는 5년 근속 후인 2026년에 행사할 수 있지만, 5%는 8년 근속 시점인 2029년으로 너무 길다는 게 민 대표 측의 주장이고, 5% 풋백옵션 추가 적용에 따른 자연스러운 조건이라는 게 하이브의 입장이다.

양측은 날을 세우고 있다. 하이브는 이번 갈등으로 시총이 1조원 이상 빠진 가운데, 리스크를 감수하면서도 민 대표를 해임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민 대표 측이 이사회 소집 요구를 거부하자 법원에 임시주주총회 소집 허가 신청을 냈다. 법원의 판단이 나오면 임시주총을 거쳐 기존 어도어 경영진들을 해임하고 신규 이사를 선임하겠다는 계획이다.

'뉴진스 품기'에도 총력을 다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멤버들과 부모들이 민 대표와 강한 유대감을 갖고 있어 이들의 향방에 관심이 쏠린다. 하이브는 아티스트 보호를 이유로 민 대표에게도 뉴진스에 대한 언급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아울러 뉴진스 외에 타 아티스트를 향한 사재기 의혹, 사이비 종교 의혹 등 장외전이 펼쳐지자 "도 넘은 음해"라며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