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지독한 사랑>에 우디네의 영화팬들도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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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네극동영화제 이명세 회고전, <지독한 사랑>
이탈리아 우디네에서 열리는 제26회 우디네극동영화제에서는 영화제 참가국 9개 중 가장 많은 편수인 총 18편의 한국영화가 상영되었다. 이제껏 열린 영화제 중 최대 (한국영화) 편수이기도 하다. 특히 작년의 장선우 감독에 이어 올해는 이명세 감독의 회고전이 열려 현지 관객과 평론가들의 관심을 모았다.
회고전에서 상영된 작품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와 <지독한 사랑> (1996)이다. <지독한 사랑>의 경우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흥행에 못 미쳤지만 개봉 당시 토론토국제영화제와 몬트리올국제영화제를 포함한 해외 영화제들에 초청되어 화제를 되기도 했다. 곧 개봉 30주년을 맞는 <지독한 사랑>은 올해 영화제를 위해 디지털 리마스터링되어 영화의 모던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들에 청명함을 더했다.
영화는 대학교수이자 유부남인 영민(김갑수)과 그와 사랑에 빠진 싱글 여성, 영희 (강수연)를 중심으로 한다. 대학교수이자 시인인 영민의 시평을 썼던 인연으로 만난 영희와 영민은 눈이 마주친 그 순간부터 금지된 사랑을 시작하게 된다. 영민은 아내의 눈을 피해, 작품 활동을 핑계로, 영희와 좀 더 오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집을 나온다. 그들은 세속의 눈을 피해 바닷가 앞 작고 초라한 판자집에서 평범하고 일상적인 사랑을 키워 간다. 백숙을 나누어 먹다가도 입을 맞추고, 막 차려진 밥상을 치우고 섹스를 할 정도로 서로를 간절히 원하지만 이 사랑이 영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인지하고 산다. 열렬히 사랑을 하면서도 늘 헤어질 시간을 준비하는 역설의 굴레는 그렇게 계속된다. 그럼에도 반복되는 불안함과 자괴감을 견디지 못한 영희는 영민에게 이별을 고하고, 이들은 그렇게 눈이 덮인 강원도로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그렇게 둘의 사랑도, 영화도 엔드 크레딧과 함께 끝이 난다.
<지독한 사랑>은 1990년대에 등장한 이른바 ‘코리안 뉴웨이브’를 대표하는 이명세 감독의 다섯번 째 작품이다. 영화는 90년대 한국영화의 빈번한 소재가 된 이른바 ‘불륜’ 커플을 중심 캐릭터로 두고 있다. 장선우 감독의 <우묵배미의 사랑>이 유부남, 유부녀, 즉 제도권 밖의 사랑을 통해 사회적 비주류인 노동 계급의 사랑과 일상을 재현했다면, 이명세 감독의 <지독한 사랑>은 사랑의 본질, 그 저항불가한 에너지와 욕망 자체에 초점을 둔다. 그러한 의미에서 영화의 오프닝에 등장하는 하드코어 액션 시퀜스는 이질적으로 보이지만 그럼에도 사랑의 역학을 추적하는 이 영화의 전제를 예고하는 서막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영화는 감독 이명세의 시그니쳐인 아이코닉한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유리창의 반사체로 보여지는 바닷가 풍경, 백숙을 뜯어 먹는 남녀의 초상, 나체로 서로를 기대고 앉아 신문을 같이 있는 모습, 흑백 영상으로 보여지는 여행 시퀜스 등 당시 한국영화에서 ‘멜로’를 구현하는 시각적 모드에서 현저하게 진일보한 이미지들로 영화는 사랑의 흥망성쇠를 그린다.
영화는 30여년 전 개봉 당시 해외 영화제들에서 그랬던 것처럼, 올해 우디네에서 역시 큰 호응을 얻었다. 상영 후 이어진 이명세 감독의 마스터 클래스까지 관객들은 떠나지 않고 자리를 지켰.
<지독한 사랑>과 이명세 감독 작품세계에 대한 전반적인 토크와 Q&A로 진행된 마스터 클래스에서 관객들은 많은 질문을 쏟아냈다. 인상적인 이미지가 두드러지는 작품이니만큼, 역시 시각적인 요소에 대한 질문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이명세 감독은 자신의 영화적 비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감독으로 프랑스 누벨바그의 기수인 자끄 타티를 언급했다. 비주얼을 우위에 두는 두 감독이 공유하는 영화적 정체성에도 물론 차이는 존재한다. 자끄 타티가 색채와 도식적인 이미지를 추구한다면 이명세의 작품들은 환타지와 모더니즘이 교차하는 일상의 이미지들이 주를 이룬다. 마치 자끄 타티의 영화들이 그러하듯, 이번 우디네에서 재상영된 <지독한 사랑>은 이미지의 힘, 그리고 고전의 무한한 생명력과 가치를 증명하는 작품이다. 동시에 영화는 우리 모두의 사랑의 회고이자, 영화 매체를 향한 불멸의 러브레터로 남을 것이 분명하다.
우디네=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
영화는 대학교수이자 유부남인 영민(김갑수)과 그와 사랑에 빠진 싱글 여성, 영희 (강수연)를 중심으로 한다. 대학교수이자 시인인 영민의 시평을 썼던 인연으로 만난 영희와 영민은 눈이 마주친 그 순간부터 금지된 사랑을 시작하게 된다. 영민은 아내의 눈을 피해, 작품 활동을 핑계로, 영희와 좀 더 오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집을 나온다. 그들은 세속의 눈을 피해 바닷가 앞 작고 초라한 판자집에서 평범하고 일상적인 사랑을 키워 간다. 백숙을 나누어 먹다가도 입을 맞추고, 막 차려진 밥상을 치우고 섹스를 할 정도로 서로를 간절히 원하지만 이 사랑이 영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인지하고 산다. 열렬히 사랑을 하면서도 늘 헤어질 시간을 준비하는 역설의 굴레는 그렇게 계속된다. 그럼에도 반복되는 불안함과 자괴감을 견디지 못한 영희는 영민에게 이별을 고하고, 이들은 그렇게 눈이 덮인 강원도로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그렇게 둘의 사랑도, 영화도 엔드 크레딧과 함께 끝이 난다.
<지독한 사랑>은 1990년대에 등장한 이른바 ‘코리안 뉴웨이브’를 대표하는 이명세 감독의 다섯번 째 작품이다. 영화는 90년대 한국영화의 빈번한 소재가 된 이른바 ‘불륜’ 커플을 중심 캐릭터로 두고 있다. 장선우 감독의 <우묵배미의 사랑>이 유부남, 유부녀, 즉 제도권 밖의 사랑을 통해 사회적 비주류인 노동 계급의 사랑과 일상을 재현했다면, 이명세 감독의 <지독한 사랑>은 사랑의 본질, 그 저항불가한 에너지와 욕망 자체에 초점을 둔다. 그러한 의미에서 영화의 오프닝에 등장하는 하드코어 액션 시퀜스는 이질적으로 보이지만 그럼에도 사랑의 역학을 추적하는 이 영화의 전제를 예고하는 서막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영화는 감독 이명세의 시그니쳐인 아이코닉한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유리창의 반사체로 보여지는 바닷가 풍경, 백숙을 뜯어 먹는 남녀의 초상, 나체로 서로를 기대고 앉아 신문을 같이 있는 모습, 흑백 영상으로 보여지는 여행 시퀜스 등 당시 한국영화에서 ‘멜로’를 구현하는 시각적 모드에서 현저하게 진일보한 이미지들로 영화는 사랑의 흥망성쇠를 그린다.
영화는 30여년 전 개봉 당시 해외 영화제들에서 그랬던 것처럼, 올해 우디네에서 역시 큰 호응을 얻었다. 상영 후 이어진 이명세 감독의 마스터 클래스까지 관객들은 떠나지 않고 자리를 지켰.
<지독한 사랑>과 이명세 감독 작품세계에 대한 전반적인 토크와 Q&A로 진행된 마스터 클래스에서 관객들은 많은 질문을 쏟아냈다. 인상적인 이미지가 두드러지는 작품이니만큼, 역시 시각적인 요소에 대한 질문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이명세 감독은 자신의 영화적 비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감독으로 프랑스 누벨바그의 기수인 자끄 타티를 언급했다. 비주얼을 우위에 두는 두 감독이 공유하는 영화적 정체성에도 물론 차이는 존재한다. 자끄 타티가 색채와 도식적인 이미지를 추구한다면 이명세의 작품들은 환타지와 모더니즘이 교차하는 일상의 이미지들이 주를 이룬다. 마치 자끄 타티의 영화들이 그러하듯, 이번 우디네에서 재상영된 <지독한 사랑>은 이미지의 힘, 그리고 고전의 무한한 생명력과 가치를 증명하는 작품이다. 동시에 영화는 우리 모두의 사랑의 회고이자, 영화 매체를 향한 불멸의 러브레터로 남을 것이 분명하다.
우디네=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