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민 칼럼] 민생지원금이라 쓰고, 기본소득이라 읽는다
자칭, 타칭 포퓰리스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트레이드마크 공약은 ‘기본소득’이다. 그에게 기본소득을 소개한 스승이 강남훈 한신대 명예교수다. 강 교수는 2022년 대선 이후 한 행사에서 “기본소득을 끝까지 띄웠다면 선거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대선에서 기본소득 공약을 막판까지 밀어붙였다면 기본소득을 잘못 이해해 자신이 받게 될 혜택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이 대표 지지로 돌아서 결과가 바뀌었을 거란 주장이다. 그는 다음 대선에서 기본소득 공약 후보를 반드시 당선시키기 위한 실천 과제들을 모색하자고도 했다.

요즘 이 대표의 행보는 강 교수의 논리를 충실히 따르는 모습이다. 그는 얼마 전 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장에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을 앉혔다. 성남시장 시절 무상 교복, 청년 배당, 산후조리원 정책 등 기본소득 설계자로, 대선캠프 정책본부장으로 있다가 부동산 과다 보유 논란으로 물러난 사람이다. 30년 지기 기본소득 동지에게 당 브레인을 맡기고선 연일 맹공세를 펼치고 있다. 이번 총선의 가장 자극적 공약이자, 윤석열 대통령과의 회동에서도 핵심 의제가 된 ‘1인당 25만원 전 국민 민생회복지원금’이다.

이 대표의 지원금은 문재인 정부가 2020년 4·15 총선을 앞두고 추진했던 1차 재난지원금과 일견 비슷해 보이나, 디테일에선 사뭇 다르다. 코로나 지원금이 가구당(1인 40만~4인 이상 100만원) 현금을 지급한 것이라면, 이 대표의 지원금은 국민 1인당 25만원씩, 그것도 그토록 집착하는 이른바 ‘지역화폐’라는 지역 상품권으로 주는 것이다. 소득·자산 규모나 취직·실직 여부와 상관없이 개인별로 무조건 똑같이 나눠 주는 것이다. 대선 공약인 기본소득과 같은 구조다. 또 하필 30만원도 아니고 25만원인가. 이 대표의 대선 기본소득 공약에서 과도기 첫해 지급액이 바로 전 국민 1인당 25만원씩이었다. 대선 패배로 현실화하지 못했던 공약을 의회 권력자로서나마 관철하겠다는 심산에 다름 아니다. 기본소득 형태의 지원금이 현실화하면 △기본소득에 대한 저항감 완화 △지역화폐에 대한 전국적 홍보 등을 통해 궁극적으로 민생 해결사로서의 이미지를 최대한 부각할 수 있다는 포석이 깔려 있을 것이다.

모든 포퓰리스트가 그렇듯 이 대표는 재원에 대해 명쾌하게 얘기한 적이 없다. 그의 기본소득 얼개는 첫해 1인당 연간 25만원에서 시작해 연간 100만원으로 올리고, 19~29세 청년들에겐 별도로 연 100만원씩 지급하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연간 600만원 구상도 밝힌 적이 있다. 100만원이면 월 8만원 정도인데, 이런 푼돈을 위해 50조원의 막대한 예산을 써야 한다. 600만원이면 300조원이 소요되는데, 지난해 세수 335조원의 거의 전부를 갖다 써야 할 판이다.

그는 TV 토론 프로 등에서 예산 조절을 잘하면 증세가 필요 없다고 했다가 증세를 하게 되면 탄소세를 활용하면 된다고 했는데, 기후변화 방지를 위한 탄소세가 왜 기본소득의 재원이 돼야 하는지 수긍하기 어렵다. 기본소득을 위해선 증세가 결국 불가피하며, 이 경우 국토보유세 신설이 거론됐다. 모든 개인이 가지고 있는 토지에 대해 매기는 세금인데, 이름부터가 불쾌하다. 개인 소유 토지인데, 국토보유세라니. 토지공개념이란 미명 아래 사유재산을 부정하는 발상이다. 국토보유세 신설 시 부동산 실효세율 목표치를 보면 보유세가 지금보다 5배가량 폭증할 것이란 추정도 있다.

강 교수는 앞서 언급한 행사에서 “한국이 세계 최초로 기본소득을 실현하는 나라가 될 기회를 놓쳐서 너무나 안타깝다”고 했다. 그렇다. 스위스, 핀란드 등 몇몇 나라에서 기본소득을 실험했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이를 시행하는 나라는 없다. 그렇게 좋은 정책이라면 왜 아무도 하지 않을까. 기본소득은 비현실성을 떠나 극도의 위험성을 띠고 있다. 강 교수는 2009년 한 행사에서 “진보정당이 사회주의를 당면 목표로 내세울 수 없는 상황에서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가능한 이행기적 강령을 내세워야 하며, 기본소득이 이행기 강령이 될 수 있다”고 했다고 한다. (포퓰리즘의 이해와 이재명 현상에 대한 시론적 논의, 채진원) 아르헨티나의 페로니즘은 매일 아침 공짜 빵과 우유 하나씩부터 시작했다. 선거를 빼면 왜 나왔는지 이해할 수 없는 그 25만원이 공짜 빵·우유 하나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