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모두를 불행하게 하는 양곡법·농안법 개정안
4·10 총선 1주일쯤 뒤인 지난달 18일 국회에서 ‘양곡관리법 일부개정 법률안’의 본회의 부의 요구가 야당 국회의원들만 참석한 상임위원회에서 의결됐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처음 국회에서 논의된 2022년 9월부터 지금까지 1년 반 동안 대다수 농정 관련 연구자가 반대한 법을 이렇게 지속적으로 재탕, 삼탕하면서까지 제정하려고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농정에 대한 무지인지, 정치적 의도인지 말이다.

이번 양곡관리법 개정안에서는 ‘법의 목적’으로 기존에 없던 ‘생산자의 이익을 보호하며 양곡의 적정한 가격을 유지함으로써 식량안보와 식량자급률을 제고한다’는 표현이 추가됐다. 농정 연구자로서 필자가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은 쌀 가격을 정부 개입으로 유지해서 생산자 이익을 보호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오히려 다양한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쌀 가격을 유지해서 쌀 생산자가 이익을 보면 다른 품목 생산자도 비슷한 요구를 할 것이다. 농산물에는 배추 무 마늘 양파처럼 가격 변동 폭이 큰 품목이 있다. 이런 품목 생산자의 정부 지원 요구를 어떤 논리로 거부할 수 있을까. 그래서 야당은 모든 품목에 대해 시장가격이 기준가격 이하로 떨어졌을 때 그 가격 차를 보장하자는 농안법 개정안도 발의했는지 모르겠다.

이들 품목을 수매하고 소득을 보장하는 예산이 막대하겠지만, 과연 여기서 끝일까. 이제 다른 비농산물 분야에서도 비슷한 요구를 하지 않을까. 양곡관리법·농안법 개정안의 ‘나비효과’가 전 산업 분야로 확산하는 것이다. 결국 모두가 불행해지는 상황이 전개된다.

정부의 가격 통제가 허용되는 조건은 오직 하나뿐이다. 조금 극단적인 이야기일 수 있지만 해당 품목 생산량을 증가시키려고 할 때다. 이외의 다른 목적은 모두 실패한다고 보면 된다. 예컨대 유럽 국가들은 2차 세계대전 중에 겪은 극도의 식량 부족 경험을 바탕으로 농산물 가격을 높은 수준에서 유지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그 결과 식량 부족 문제는 해소했지만, 세계적으로 농산물 공급 과잉이 나타났고 농가소득 보장과 농산물 수매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게 되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래서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이 시작됐고, 모든 선진국이 농산물 과잉 생산을 초래하는 정책을 폐지하자고 합의했다. 그러면서 반성했다. 농업인이 국가 정책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장 변화에 자율적으로 반응하며 성장할 수 있는 주체가 돼야 농업이 제대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왜 자꾸 농정을 30년 전으로 돌리려고 하나. 세상이 변했다는 것을, 농업도 변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외환시장과 금융시장에 정부가 매우 조심스럽게 개입하는 방식을 농산물시장에도 적용해야 한다. 22대 국회에서는 좀 더 선진적으로 농정을 추진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