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 OK금융 회장 "한·일 관계 후퇴 안돼…기업이 버팀목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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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 OK금융그룹 회장
한일경제협회 부회장 선임
한일경제협회 부회장 선임
최윤 OK금융그룹 회장은 자신을 ‘경계인(境界人)’이라고 부른다. 일본 나고야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은 재일동포 3세다. 최 회장은 한국과 일본에 뿌리 깊게 연결돼 있으면서도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삶을 살았다. 일본 내 ‘자이니치(在日)’에 대한 멸시를 피해 한국으로 왔지만, 국내에서 반일(反日) 정서가 고조될 때마다 ‘친일 기업인’으로 불리는 수모를 견뎌야 했다.
최 회장은 1999년 고국에 온 지 25년 만에 OK금융그룹을 총자산 23조원인 금융회사로 키웠다. 그사이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1만달러대에서 3만3745달러(2023년 기준)로 눈부시게 성장했다. 이제는 일본(3만4064달러)을 위협할 정도다. 최근 한일경제협회 부회장에 선임된 최 회장은 “한국은 일본과 견줄 만한 어엿한 선진국이 됐다”며 “한·일 양국이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데 재일동포 출신 기업가로서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일경제협회 부회장에 오르셨습니다.
“최근 한·일 관계가 회복되고 있지만 한 때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일경제협회 회장인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께서 봉사할 기회를 마련해주셨습니다. 제가 가진 일본 내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양국 경제계를 이어주는 가교가 되겠습니다.”
■한·일 관계가 부침을 거듭해왔습니다.
“안타까웠습니다. 과거의 불행이 경제는 물론 국민의 삶까지 옥좨서는 안 됩니다. 정치가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한·일 관계가 정치에 다시는 이용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갑니다.”
■여전히 반일 정서가 남아 있습니다.
“개인이 가진 한(恨)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외교는 각국의 이익을 위해 서로 입장을 이야기하면서 타협점을 찾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한국은 단순히 피해국의 위치가 아니라 일본과 정정당당하고 대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한 나라입니다. 이제 일본은 한국을 대등한 나라를 넘어 진정한 라이벌로 인식합니다. 우리 국민이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고 봅니다.”
■노 재팬(NO JAPAN) 운동이 한창일 때 ‘친일 기업’으로 매도됐는데요.
“재일교포 3세인 제가 한국 국적을 포기한 적도 없고, OK 역시 ‘진짜 한국인(Original Korean)’이란 뜻입니다. 감정적인 대응은 한·일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제는 친일파의 개념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을 잘 알고 전략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사람들이란 의미로 말입니다.”
■한·일 관계의 정상화가 경제계에 특히 중요한 이유는 뭔가요.
“일본이 가진 원천기술은 한국 기업에 꼭 필요합니다. 2019년 일본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수출 규제로 한국 기업은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당시 정부는 소부장 국산화를 추진했지만, 일본산은 제3국을 통해 들어올 정도로 수요가 줄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미·중 갈등 속에서 중국의 압도적인 생산 능력과 막강한 힘은 한국에도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세계 경제 흐름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왜곡된 한·일 관계를 정상화해야 합니다.”
■일본 국민이 한국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어떠합니까.
“일본이 패전한 지 80년이 지났습니다.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과거 식민 지배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운 세대가 등장한 것입니다. 일본 청년 세대는 한국 사람을 부러워하고, 심지어 한국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 합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일본의 새로운 세대는 한국의 무조건적인 ‘가해자 취급’을 더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한국 국적은 왜 포기하지 않으셨나요.
“부모님 영향이 컸습니다. ‘나는 한국인’이라는 생각이 뿌리 깊게 자리했습니다. 한국 국적을 지키는 게 효(孝)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유독 재일동포에 대해서 색안경이 심합니다. 국적을 포기해도 한국인으로서 성과를 낸 재미교포는 자랑스러워합니다. 반면 재일동포에게는 ‘일본인이 됐다’고 손가락질합니다.”
■최초의 재외 한국학교인 오사카 금강학교의 이사장을 맡고 계십니다.
“재외동포로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 정서를 이해할 수 있는 ‘민족 교육’과 ‘한국어 습득’이 중요하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재일동포 학생들이 한국인이라는 뿌리를 잊지 않고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이사장직을 수락했습니다. 적극적인 후원과 개혁으로 인터내셔널스쿨로 변모한 금강학교는 재학생 수가 2018년 197명에서 제가 부임한 뒤인 지난해 312명으로 늘었습니다.”
■어려운 점은 없습니까.
“일본에 있는 다른 한국학교와 달리 금강학교는 교육부의 재외공무원 파견제도로 파견 교장을 받아야 합니다. 이 때문에 지속적인 개혁과 발전이 어렵습니다. 80년 전 해방 직후 재일교포들이 잃어버린 우리말을 자식들에게 교육하기 위해 십시일반으로 만든 금강학교는 1970년대 이후 중동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국가의 번영을 위해 싸워온 한국 기업 주재원 자녀들에게 한국교육을 할 목적으로 정부가 만든 한국학교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지금 일본에서 나고 자란 4~6세 재일교포 자녀들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고 일본 사회에서도 인정받는 리더가 되도록 육성하는 교육이 중요합니다. 이런 교육을 해본 경험이 없는 파견교장을 받아야 하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습니다. 파견 교장제의 유연한 적용이 필요합니다.”
■내년이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입니다.
“한국과 일본이 과거사 문제로 어려운 시기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한·일 관계가 완전히 끊어지지 않은 건 기업의 역할이 작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양국 기업이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끊임없는 지지와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기업인으로서 저도 한·일 민간 교류 증진 및 경제 관계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조미현/서형교 기자 mwise@hankyung.com
최 회장은 1999년 고국에 온 지 25년 만에 OK금융그룹을 총자산 23조원인 금융회사로 키웠다. 그사이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1만달러대에서 3만3745달러(2023년 기준)로 눈부시게 성장했다. 이제는 일본(3만4064달러)을 위협할 정도다. 최근 한일경제협회 부회장에 선임된 최 회장은 “한국은 일본과 견줄 만한 어엿한 선진국이 됐다”며 “한·일 양국이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데 재일동포 출신 기업가로서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일경제협회 부회장에 오르셨습니다.
“최근 한·일 관계가 회복되고 있지만 한 때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일경제협회 회장인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께서 봉사할 기회를 마련해주셨습니다. 제가 가진 일본 내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양국 경제계를 이어주는 가교가 되겠습니다.”
■한·일 관계가 부침을 거듭해왔습니다.
“안타까웠습니다. 과거의 불행이 경제는 물론 국민의 삶까지 옥좨서는 안 됩니다. 정치가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한·일 관계가 정치에 다시는 이용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갑니다.”
■여전히 반일 정서가 남아 있습니다.
“개인이 가진 한(恨)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외교는 각국의 이익을 위해 서로 입장을 이야기하면서 타협점을 찾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한국은 단순히 피해국의 위치가 아니라 일본과 정정당당하고 대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한 나라입니다. 이제 일본은 한국을 대등한 나라를 넘어 진정한 라이벌로 인식합니다. 우리 국민이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고 봅니다.”
■노 재팬(NO JAPAN) 운동이 한창일 때 ‘친일 기업’으로 매도됐는데요.
“재일교포 3세인 제가 한국 국적을 포기한 적도 없고, OK 역시 ‘진짜 한국인(Original Korean)’이란 뜻입니다. 감정적인 대응은 한·일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제는 친일파의 개념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을 잘 알고 전략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사람들이란 의미로 말입니다.”
■한·일 관계의 정상화가 경제계에 특히 중요한 이유는 뭔가요.
“일본이 가진 원천기술은 한국 기업에 꼭 필요합니다. 2019년 일본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수출 규제로 한국 기업은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당시 정부는 소부장 국산화를 추진했지만, 일본산은 제3국을 통해 들어올 정도로 수요가 줄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미·중 갈등 속에서 중국의 압도적인 생산 능력과 막강한 힘은 한국에도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세계 경제 흐름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왜곡된 한·일 관계를 정상화해야 합니다.”
■일본 국민이 한국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어떠합니까.
“일본이 패전한 지 80년이 지났습니다.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과거 식민 지배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운 세대가 등장한 것입니다. 일본 청년 세대는 한국 사람을 부러워하고, 심지어 한국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 합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일본의 새로운 세대는 한국의 무조건적인 ‘가해자 취급’을 더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한국 국적은 왜 포기하지 않으셨나요.
“부모님 영향이 컸습니다. ‘나는 한국인’이라는 생각이 뿌리 깊게 자리했습니다. 한국 국적을 지키는 게 효(孝)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유독 재일동포에 대해서 색안경이 심합니다. 국적을 포기해도 한국인으로서 성과를 낸 재미교포는 자랑스러워합니다. 반면 재일동포에게는 ‘일본인이 됐다’고 손가락질합니다.”
■최초의 재외 한국학교인 오사카 금강학교의 이사장을 맡고 계십니다.
“재외동포로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 정서를 이해할 수 있는 ‘민족 교육’과 ‘한국어 습득’이 중요하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재일동포 학생들이 한국인이라는 뿌리를 잊지 않고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이사장직을 수락했습니다. 적극적인 후원과 개혁으로 인터내셔널스쿨로 변모한 금강학교는 재학생 수가 2018년 197명에서 제가 부임한 뒤인 지난해 312명으로 늘었습니다.”
■어려운 점은 없습니까.
“일본에 있는 다른 한국학교와 달리 금강학교는 교육부의 재외공무원 파견제도로 파견 교장을 받아야 합니다. 이 때문에 지속적인 개혁과 발전이 어렵습니다. 80년 전 해방 직후 재일교포들이 잃어버린 우리말을 자식들에게 교육하기 위해 십시일반으로 만든 금강학교는 1970년대 이후 중동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국가의 번영을 위해 싸워온 한국 기업 주재원 자녀들에게 한국교육을 할 목적으로 정부가 만든 한국학교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지금 일본에서 나고 자란 4~6세 재일교포 자녀들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고 일본 사회에서도 인정받는 리더가 되도록 육성하는 교육이 중요합니다. 이런 교육을 해본 경험이 없는 파견교장을 받아야 하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습니다. 파견 교장제의 유연한 적용이 필요합니다.”
■내년이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입니다.
“한국과 일본이 과거사 문제로 어려운 시기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한·일 관계가 완전히 끊어지지 않은 건 기업의 역할이 작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양국 기업이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끊임없는 지지와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기업인으로서 저도 한·일 민간 교류 증진 및 경제 관계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조미현/서형교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