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들이 지난 2일 서울시내의 한 대형마트에서 과일을 고르고 있다. / 임대철 기자
소비자들이 지난 2일 서울시내의 한 대형마트에서 과일을 고르고 있다. / 임대철 기자
복숭아와 수박 등 봄철에 거의 판매하지 않는 과일들이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0.1%포인트 이상 끌어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사과와 배 가격이 작황 부진으로 연일 급등세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복숭아와 배 등 일부 과일의 ‘통계 착시’ 현상으로 과일값 급등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복숭아와 수박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각각 61.2%, 49.6% 올랐다. 복숭아와 수박의 지난달 물가 기여도는 각각 0.06%포인트, 0.04%포인트였다.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2.9%) 중 두 과일이 0.1%를 끌어올렸다는 뜻이다. 특히 복숭아의 물가 기여도는 지난달 사상 최대 상승률(102.9%)을 기록했던 배와 동일했다.

하지만 복숭아와 수박은 대형마트나 전통시장에서 거의 판매되지 않는다. 제철과일인 복숭아는 10월부터 다음해 6월까지, 수박은 9월부터 다음해 4월까지 출회되지 않기 때문이다. 두 과일 모두 검역 규제 때문에 수입할 수도 없다.

복숭아 수확기는 통상 6~9월인데, 보관 기간이 길어야 한 달 남짓에 불과하다. 수박도 마찬가지다. 시중에서 거의 거래되지 않는 과일값이 치솟은 이유는 통계청이 계절 변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이들 과일의 물가상승률을 간접적으로 추론하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구성하는 458개 품목은 크게 보합 기간이 있는 품목과 그렇지 않은 품목으로 나뉜다. 보합 기간이란 계절성 때문에 가격을 직접 조사할 수 없는 시기에 다른 비슷한 품목의 물가 상승률을 대입해 물가 상승률을 추론하는 기간을 말한다.

보합 기간이 있는 품목은 농수산물 11개 품목과 공업제품 6개 등 총 17개다. 복숭아(10~6월), 수박(9~4월), 참외(9~2월), 딸기(6~11월), 감·귤(4~9월), 오렌지(7~12월), 체리(3~5월, 9~11월) 등 과일별로 보합 기간도 다르다.

예를 들어 복숭아와 수박이 보합 기간이었던 지난달에 통계청은 사과나 배 등 보합 기간이 없는 과일의 전월 대비 물가 상승률을 복숭아와 수박의 지난 3월 소비자물가지수에 곱하는 방식 등으로 4월 상승률을 추정했다. 사과와 배 가격이 오르면 제철에 나지도 않는 복숭아와 수박 가격도 덩달아 상승한다는 뜻이다.

4월 기준으로는 복숭아와 수박 뿐 아니라 감과 귤도 보합기간에 해당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감과 귤도 전년 동월 대비 각각 56.0%, 64.7% 급등했다. 이들 4개 과일의 지난달 물가 기여도는 0.16%포인트다. 이들 품목만 물가지수에서 제외됐더라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9%에서 2.7%대로 낮아진다는 뜻이다.

주무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는 보합 품목에 대해 가중치를 일부 조정하는 등의 보정작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보합 과일에 대한 보정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뿐 아니라 자칫 통계 왜곡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 통계청 설명이다.

통계청 관계자는 “현재의 보합 방식은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 등에 따라 2017년 한 차례 업그레이드됐다”며 “한국뿐 아니라 유럽 미국 등 다른 국가들도 계절성이 강한 품목에 대해 마찬가지로 보합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