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쳐보던 '그녀가 죽었다'…살인범 된 공인중개사 [김예랑의 영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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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도시4' 만큼 재밌다? 어쩌면 대항마
크랭크업 3년 만에 개봉하는 '그녀가 죽었다'
관음증 변요한X관종 신혜선, 캐릭터 '독특'
"사회 문제 관통한 스릴러, 재미도 있어"
크랭크업 3년 만에 개봉하는 '그녀가 죽었다'
관음증 변요한X관종 신혜선, 캐릭터 '독특'
"사회 문제 관통한 스릴러, 재미도 있어"

버스 옆 고등학생의 카톡을 흘깃 보며 슬며시 웃음 짓는 남성. 평범한 직장인으로 보이는 그에겐 은밀한 취미가 있다. 부동산 고객이 맡긴 카드키로 집에 들어가 남의 삶을 훔쳐보는 것이다. 그는 집주인이 잃어버렸는지 알 수 없을 것 같은 하찮은 물건을 손에 넣고 자신만의 공간에 전시한다. 공인중개사라는 직업은 타인을 관찰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그에게 '럭키'한 직업인 셈.
그날도 구정태는 편의점 창가 자리에서 컵라면을 먹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 중이었다. 그러다 편의점 소시지를 뜯으면서 온라인에서 검색한 비건 샐러드 사진을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리는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구정태는 자신의 레이더를 가동해 한소라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봤다. 이건 운명인가. 그가 일하는 부동산에 한소라가 집을 내놓기 위해 카드키를 맡긴 것. 아무리 노력해서 한소라의 집엔 '방문'(?) 할 수 없었는데, 횡재다.

3년 묵힌 '그녀가 죽었다'의 대반전…'범죄도시4' 대항마 될까
자기 과시형 '관종', 관찰의 과잉 '훔쳐보기'가 일상이 된 현대사회. 누군가는 '대관종의 시대'라고 부른다. 소위 '잘 나가는' 자기 모습을 전시하면서 타인의 관심을 끌고, 또 이를 맹목적으로 훔쳐보는 이들도 있다.김세휘 감독의 연출 데뷔작 '그녀가 죽었다'는 온라인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행태를 사실적으로 포착하고 SNS의 문제점을 스크린에 옮기는데 고민을 거듭한 흔적이 보인다.
별다른 죄의식 없이 타인을 훔쳐보고 기념품처럼 물건을 간직하는 구정태의 모습은 병들어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극적으로 표현한다. "난 내가 제일 불쌍해"라며 거짓과 위선으로 자신을 만들어간 소라도 병적인 심리를 보여준다.

하지만 시신과 맞닥뜨려도 신고는커녕 자신의 흔적을 지우고, 사람의 죽음 앞에서 죄책감 보다 자신의 평판이 떨어지는 것을 걱정하고, 인간의 죽음보다 자신이 키우던 개미의 죽음에 더 슬퍼하는. 이런 모습의 캐릭터에서 섬뜩하고 불쾌하고 찝찝한 감정을 느낀다.
영화 역사상 이런 캐릭터들만 모으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비정상적이고 비호감이다. 이를 연기한 배우 변요한과 신혜선은 연기 차력 쇼를 벌이는 듯하다.
김 감독은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SNS가 사회의 주요한 소통 창구가 되면서 관종, 염탐, 관음 등이 부작용처럼 나타난 것인데 캐릭터로 상황을 보고 대부분 경악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이어 "범죄 미화에 대해 우려를 하면서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스스로 경계했다"며 "관종이나 관음의 끝에 있는 인물을 보여주고 관객이 동정할 틈 없이 만들었다.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잘 판단해 주지 않을까 하는 믿음이 있었다"고 말했다.
구정태를 연기한 변요한은 "관객들이 불쾌감을 느끼셨다면 대성공"이라고 말하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일부 영화 관계자들은 '그녀가 죽었다'에 대해 "사회적 문제를 스릴 있게 담아내면서도 장르적 재미를 놓치지 않았다"는 평가를 하며 현재 박스오피스 독주를 이어가고 있는 '범죄도시4'의 대항마가 되지 않을지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한 엔터 관계자는 "요즘은 크랭크업이 1년만 지나도 '올드하다'며 눈치를 채는 관객들이 있다"면서 "'그녀가 죽었다'는 사회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지녔기에 편견을 뒤엎고 박스오피스에서 이름을 새길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오는 15일 개봉.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