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하고 능청스럽게 '사람 간 떨어지게' 하는 <악마와의 토크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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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옥미나의 아트하우스 칼럼
영화 <악마와의 토크쇼>
공포는 언제나 가까운 곳에
로튼토마토 선정 '2024년 가장 기대되는 공포영화'
영화 <악마와의 토크쇼>
공포는 언제나 가까운 곳에
로튼토마토 선정 '2024년 가장 기대되는 공포영화'
공포영화 장르 시장을 좀비가 장악했던 때가 있었다. 감염된 인간을 매개체로 삼아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고, 대도시를 탈출하는 사람들 사이에 감염 여부를 알 수 없는 이들이 섞여들고, 불안과 의심에 사로잡힌 이들이 편을 가르면, 번번이 좀비가 아니라 사람들의 차별과 혐오 때문에 파국을 맞이했다. 공포와 액션의 결합은 성공적이었다. 천만 영화가 나왔고 OTT 채널에서 K 좀비는 인기 검색어가 되었다. 좀비는 코미디에도, 로맨스에도 등장했다. 모두가 좀비에 열광했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그 시절은 코로나의 도래와 함께 끝났다. 바이러스의 세계적인 전파, 그보다 더 빨리 미디어가 촉발한 불안과 공포, 도시 봉쇄와 같은 사회적 혼란의 순간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좀비 서사의 클리셰가 자꾸 겹쳐졌다. 오락으로 소비했던 공포물의 에피소드가 스크린과 모니터를 넘어 현실에 출몰하자, 머리를 날리기 전에는 죽지 않는다던 좀비들이 슬그머니 사라졌다. 아무도 자신과 좀비를 나란히 놓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공포는 현실과 완전히 괴리된 판타지로 존재해야 할까. 그럴 리 없다. 유럽 고성에 사는 뱀파이어는 진작에 퇴물이 되지 않았던가. 애초에 좀비가 인기를 끌었던 이유도 흡혈귀나 요괴, 어느 마을에 출몰한다는 귀신과 달리 거침없이 아무나 공격하며 현대 도시의 건물 사이를 내달렸기 때문이다. 공포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이 순간에 존재해야 하고, 관객과의 거리는 가까울수록 좋았다.
그런 의미에서 TV 화면에서 기어 나온 사다코는 얼마나 영악했던가. 그리고 여기 힌트가 있다. 바로 텔레비전이다. 거실에 놓인 텔레비전 대신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지금 텔레비전이 답이 되냐고?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프로그램이라면 어떨까.
1992년 핼러윈 데이, BBC에서 <고스트 와치 Ghost Watch>라는 프로그램이 방송되었다. BBC의 여러 프로그램에 등장해 이미 낯익은 중후한 진행자가 생방송 스튜디오에 앉고, 실제 BBC 리포터가 소위 ‘귀신 들린 집’을 방문하는 동안, 시청자들은 전화를 걸어 자신들의 경험담을 공유할 수 있었다.
자료 화면으로 으스스한 분위기를 돋운 다음, 리포터가 아이들을 인터뷰하고 계단을 오르는 사이, 스튜디오에는 이미 전화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시청자들은 혼란스러웠다. 인터뷰하는 리포터 너머, 계단 구석 어둠에서, 커튼 사이에서 얼핏 이상한 형체가 지나가는 것 같았다. 급기야 리포터가 집 안에서 감쪽같이 사라지고, 아이들의 방에 설치된 카메라에는 믿기 어려운 행동이 찍히기 시작했고, 이내 스튜디오에도 비명이 울렸다. 모두 허구였다. 공포에 사로잡혔던 시청자들은 격분했다. 공황 발작과 수면 장애를 겪게 되었다는 이들이 속출했고, 한 10대 소년은 자살을 기도했다. BBC가 여러 번 사과를 거듭하고, 리포터가 어린이 프로그램에 직접 출연해 자신이 건재하다는 사실을 설명했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고스트 와치>는 여러 건의 소송에 휘말렸고, 재방송이 금지되었다. 그래서 지금 인터넷을 샅샅이 다 뒤져도 짧은 예고편과 리뷰 영상이 전부다. 전편을 보려면 BFI에서 출시했다는 DVD를 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대안은 있다. 바로 <악마와의 토크쇼>다.
<악마와의 토크쇼>는 1970년대 TV 심야 토크 프로그램 진행자였던 잭 델로이의 성공과 몰락을 다룬 TV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한다. 다큐멘터리는 올빼미 쇼의 시청률 하락세,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있었던 잭, 시청률 반등을 위해 기획한 특별한 프로그램의 정체를 추적하면서 ‘최근 발견된 방송용 테이프’와 비하인드 영상을 공개한다. 박수를 받으며 스튜디오에 등장하는 진행자, 추임새를 넣는 악단, 방청객의 반응을 보여주는 편집까지 모두 착실히 1970년대 텔레비전의 문법을 따르는 자료 화면이다. 잭의 야심만만한 핼러윈 기획은 토크쇼의 게스트로 생방송 스튜디오에 악령을 불러들이는 것. <악마와의 토크쇼>는 BBC의 <고스트 와치>의 얼개를 응용하면서, <블레어 위치>(1999년), <파라노말 액티비티>(2009년)로 이어진 ‘파운드 푸티지 found footage’의 장점을 적절하게 활용한다. 우연히 발견된 영상을 의미하는 파운드 푸티지는 공포에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차용한 결과물이다. '카메라는 거짓말하지 않고, 진짜로 일어난 일을 보여주며, 심지어 인간이 보지 못한 것도 본다'라는 전제를 기반으로 페이크 다큐멘터리는 공포의 순간을 극단적으로 증폭시킨다.
공포 영화에서 ‘악령에 사로잡힌 소녀’는 진부하다. 하지만 악령에 사로잡힌 소녀가 텔레비전 토크쇼에 출연한다면. 핼러윈 밤, 시청률에 따라 재계약 여부가 달린 진행자가 무리한 욕심을 낸다면. 이 모든 것이 1977년에 일어난 일이라면. 그날 밤 송출되지 못한 방송 분량이 발견되었다면. <악마와의 토크쇼>는 영리하고 능청스러운 – 그래서 즐거운 공포 영화다.
옥미나 영화평론가
그리고 그 시절은 코로나의 도래와 함께 끝났다. 바이러스의 세계적인 전파, 그보다 더 빨리 미디어가 촉발한 불안과 공포, 도시 봉쇄와 같은 사회적 혼란의 순간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좀비 서사의 클리셰가 자꾸 겹쳐졌다. 오락으로 소비했던 공포물의 에피소드가 스크린과 모니터를 넘어 현실에 출몰하자, 머리를 날리기 전에는 죽지 않는다던 좀비들이 슬그머니 사라졌다. 아무도 자신과 좀비를 나란히 놓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공포는 현실과 완전히 괴리된 판타지로 존재해야 할까. 그럴 리 없다. 유럽 고성에 사는 뱀파이어는 진작에 퇴물이 되지 않았던가. 애초에 좀비가 인기를 끌었던 이유도 흡혈귀나 요괴, 어느 마을에 출몰한다는 귀신과 달리 거침없이 아무나 공격하며 현대 도시의 건물 사이를 내달렸기 때문이다. 공포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이 순간에 존재해야 하고, 관객과의 거리는 가까울수록 좋았다.
그런 의미에서 TV 화면에서 기어 나온 사다코는 얼마나 영악했던가. 그리고 여기 힌트가 있다. 바로 텔레비전이다. 거실에 놓인 텔레비전 대신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지금 텔레비전이 답이 되냐고?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프로그램이라면 어떨까.
1992년 핼러윈 데이, BBC에서 <고스트 와치 Ghost Watch>라는 프로그램이 방송되었다. BBC의 여러 프로그램에 등장해 이미 낯익은 중후한 진행자가 생방송 스튜디오에 앉고, 실제 BBC 리포터가 소위 ‘귀신 들린 집’을 방문하는 동안, 시청자들은 전화를 걸어 자신들의 경험담을 공유할 수 있었다.
자료 화면으로 으스스한 분위기를 돋운 다음, 리포터가 아이들을 인터뷰하고 계단을 오르는 사이, 스튜디오에는 이미 전화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시청자들은 혼란스러웠다. 인터뷰하는 리포터 너머, 계단 구석 어둠에서, 커튼 사이에서 얼핏 이상한 형체가 지나가는 것 같았다. 급기야 리포터가 집 안에서 감쪽같이 사라지고, 아이들의 방에 설치된 카메라에는 믿기 어려운 행동이 찍히기 시작했고, 이내 스튜디오에도 비명이 울렸다. 모두 허구였다. 공포에 사로잡혔던 시청자들은 격분했다. 공황 발작과 수면 장애를 겪게 되었다는 이들이 속출했고, 한 10대 소년은 자살을 기도했다. BBC가 여러 번 사과를 거듭하고, 리포터가 어린이 프로그램에 직접 출연해 자신이 건재하다는 사실을 설명했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고스트 와치>는 여러 건의 소송에 휘말렸고, 재방송이 금지되었다. 그래서 지금 인터넷을 샅샅이 다 뒤져도 짧은 예고편과 리뷰 영상이 전부다. 전편을 보려면 BFI에서 출시했다는 DVD를 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대안은 있다. 바로 <악마와의 토크쇼>다.
<악마와의 토크쇼>는 1970년대 TV 심야 토크 프로그램 진행자였던 잭 델로이의 성공과 몰락을 다룬 TV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한다. 다큐멘터리는 올빼미 쇼의 시청률 하락세,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있었던 잭, 시청률 반등을 위해 기획한 특별한 프로그램의 정체를 추적하면서 ‘최근 발견된 방송용 테이프’와 비하인드 영상을 공개한다. 박수를 받으며 스튜디오에 등장하는 진행자, 추임새를 넣는 악단, 방청객의 반응을 보여주는 편집까지 모두 착실히 1970년대 텔레비전의 문법을 따르는 자료 화면이다. 잭의 야심만만한 핼러윈 기획은 토크쇼의 게스트로 생방송 스튜디오에 악령을 불러들이는 것. <악마와의 토크쇼>는 BBC의 <고스트 와치>의 얼개를 응용하면서, <블레어 위치>(1999년), <파라노말 액티비티>(2009년)로 이어진 ‘파운드 푸티지 found footage’의 장점을 적절하게 활용한다. 우연히 발견된 영상을 의미하는 파운드 푸티지는 공포에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차용한 결과물이다. '카메라는 거짓말하지 않고, 진짜로 일어난 일을 보여주며, 심지어 인간이 보지 못한 것도 본다'라는 전제를 기반으로 페이크 다큐멘터리는 공포의 순간을 극단적으로 증폭시킨다.
공포 영화에서 ‘악령에 사로잡힌 소녀’는 진부하다. 하지만 악령에 사로잡힌 소녀가 텔레비전 토크쇼에 출연한다면. 핼러윈 밤, 시청률에 따라 재계약 여부가 달린 진행자가 무리한 욕심을 낸다면. 이 모든 것이 1977년에 일어난 일이라면. 그날 밤 송출되지 못한 방송 분량이 발견되었다면. <악마와의 토크쇼>는 영리하고 능청스러운 – 그래서 즐거운 공포 영화다.
옥미나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