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불허의 감동, 백인백색의 매력 … 2024년 봄 교향악의 항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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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교향악축제 리뷰
‘2024 교향악축제’가 지난 4월 3일부터 28일까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펼쳐졌다. 참가한 23개 교향악단 중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 한경아르떼필하모닉, 심포니송 등 민간오케스트라의 활약이 두드러진 한해이기도 했다. 사정상 모두 참석할 수는 없었지만 10개 공연을 봤다.
9일 백진현이 지휘한 대구시향은 브리튼 ‘네 개의 바다 간주곡’ 중 ‘폭풍’으로 시작했다. 브리튼 특유의 육감적이고 미스터리한 성격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강렬한 펄스로 끊임없이 몰아붙이는 뚝심이 대단했다. 엘가 교향곡 1번은 완전히 자신만의 세계로 장악해서 재해석하는 지휘자가 돋보였다. 엘가 교향곡에서 이례적으로 느껴본 설득력이었다. 김다미가 협연한 브루흐 스코틀랜드 환상곡은 바이올리니스트 특유의 우아한 곡선미가 아직 살아있음을 보여줬다. 10일 윌슨 응이 지휘한 한경아르떼 필하모닉은 에스메 콰르텟이 쇤베르크 ‘현악 사중주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을 협연하며 공연을 시작했다. 헨델 합주협주곡 Op.6의 7번을 자유롭게 개작한 곡으로, 입자가 거칠고 입체적인 바로크 음악 같았다. 에스메 콰르텟만의 앙코르 여수연의 ‘옛소리’는 가야금을 닮은 바이올린, 대금을 닮은 비올라, 첼로 몸통을 북처럼 두들기고 목소리도 내는 국악풍의 곡이었다. 말러 교향곡 5번은 은근한 절제와 매끈한 마무리가 돋보였다.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악구를 꾹꾹 밟고 나아가는 연주는 무심해 보였지만 저류가 도도했다. 5악장 말미에서 금관군의 긴장감이 풀어질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느긋하고 의연함을 유지한 것도 기억나는 순간이었다.
19일 서울시향 공연은 수석 부지휘자인 피터 빌로엔의 지휘를 처음 볼 수 있는 무대였다. 이지혜가 협연한 버르토크 바이올린 협주곡이 인상 깊었다. 평면적이고 건조하게 다가올 수 있는 곡의 성격을 풍윤한 표현으로 입체적이고 음향적으로 바꿔 놓았다. 브람스 교향곡 3번은 셈여림에 기민하게 반응한 서울시향의 역량이 돋보였다. 몇몇 군데에서 고요한 숲속같은 정적의 순간들을 만들고 이에 대비되는 다이내믹으로 스토리텔링을 펼치는 모습이었다. 리허설 시간이 부족했는지 이음새가 많고 자주 끊기는 등 합이 맞지 않는 부분이 아쉬웠다. 20일 함신익이 지휘한 심포니송의 공연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으로 시작했다. 협연자인 피아니스트 김준형은 또랑또랑하고 빛나는 톤으로 곡에 임했다. 베토벤적인 피아니즘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충실한 해석이었다. 베토벤 교향곡 7번 연주는 사람의 움직임을 보는 듯 자연스러웠다. 심포니송 단원들은 서로 귀를 기울이며 표현을 조절했다.
21일 부산시향 공연은 본머스 심포니 음악감독인 우크라이나 출신 키릴 카라비츠가 지휘했다. 까다롭고 도전적인 프로그램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리스트 교향시 ‘마제파’는 오케스트라를 독려하는 카라비츠의 정확한 비팅이 돋보였다. 쇼스타코비치 첼로 협주곡 2번에서 협연자 문태국은 강렬한 보잉으로 다소 건조하면서도 긴장감 넘치게 곡을 풀어갔다. 스트라빈스키 ‘페트루슈카’는 다양한 색채와 그림자를 연상시킨 입체적인 해석이었다.
매년 교향악축제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무릇 연주란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다. 예측불허의 감동은 이 축제의 재미이자 선물인 것 같다.
류태형 음악 칼럼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민간 오케스트라 활약 두드러져
6일 최수열이 지휘한 코리안 챔버 오케스트라는 슈만 피아노 협주곡으로 공연을 시작했다. 윤이상 콩쿠르 우승자 정규빈의 연주를 처음 듣는 무대였다. 예쁘고 단정한 타건은 고전주의의 필요조건은 충족했지만 낭만주의의 주관성과 스토리텔링과는 거리가 있었다. 로베르토 디아즈가 협연한 펜데레츠키 비올라 협주곡은 작곡가 특유의 고통과 갈등의 표현, 느닷없는 폭발이 잘 드러났다. ‘고전주의의 백화점’이라 불리는 베토벤 교향곡 8번은 헤레베헤의 지휘를 연상시키는 절충주의적 원전연주같이 자극적이고 리드미컬했다. 김민 악장의 리드가 돋보이는 신선한 해석이었다.9일 백진현이 지휘한 대구시향은 브리튼 ‘네 개의 바다 간주곡’ 중 ‘폭풍’으로 시작했다. 브리튼 특유의 육감적이고 미스터리한 성격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강렬한 펄스로 끊임없이 몰아붙이는 뚝심이 대단했다. 엘가 교향곡 1번은 완전히 자신만의 세계로 장악해서 재해석하는 지휘자가 돋보였다. 엘가 교향곡에서 이례적으로 느껴본 설득력이었다. 김다미가 협연한 브루흐 스코틀랜드 환상곡은 바이올리니스트 특유의 우아한 곡선미가 아직 살아있음을 보여줬다. 10일 윌슨 응이 지휘한 한경아르떼 필하모닉은 에스메 콰르텟이 쇤베르크 ‘현악 사중주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을 협연하며 공연을 시작했다. 헨델 합주협주곡 Op.6의 7번을 자유롭게 개작한 곡으로, 입자가 거칠고 입체적인 바로크 음악 같았다. 에스메 콰르텟만의 앙코르 여수연의 ‘옛소리’는 가야금을 닮은 바이올린, 대금을 닮은 비올라, 첼로 몸통을 북처럼 두들기고 목소리도 내는 국악풍의 곡이었다. 말러 교향곡 5번은 은근한 절제와 매끈한 마무리가 돋보였다.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악구를 꾹꾹 밟고 나아가는 연주는 무심해 보였지만 저류가 도도했다. 5악장 말미에서 금관군의 긴장감이 풀어질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느긋하고 의연함을 유지한 것도 기억나는 순간이었다.
난곡 깔끔하게 소화한 여자경
13일 여자경이 지휘한 대전시향 공연은 첼리스트 율리우스 베르거가 협연한 블로흐 ‘셸로모’로 시작했다. 뭔가를 내려놓은 사람이 들려줄 수 있는 금욕적인 연주였다. 네 곡의 앙코르 중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프렐류드가 감칠맛 나게 다가왔다. 2부의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은 1부와 반대로 생명력이 꿈틀댄 연주였다. 무대에서 객석으로 쏟아지는 야성적인 음의 향연에 몸을 맡겼다. 초긴장 상태로 강력하게 두드린 팀파니스트를 비롯한 타악기 연주자들, 바순을 비롯한 목관악기들과 트롬본 등 금관악기들의 파워에 귀가 얼얼했다.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 여자경은 난곡을 깔끔하게 교통정리했다. 16일 김홍식이 지휘한 제주교향악단은 김홍기가 협연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으로 문을 열었다. 독주가 또렷하게 잘 들리는, 소담스런 소규모의 반주였다. 브루크너 교향곡 4번은 예전 제주에서 브루크너 교향곡을 자주 올렸던 이동호 지휘자의 전통이 떠올랐다. 그만큼 도전이 아닐 수 없는 곡인데, 제주교향악단의 이날 연주는 오르간적인 꽉 채운 음향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정중하고 진지한 브루크너 연주의 자세를 견지하려 애쓴 수연이었다.19일 서울시향 공연은 수석 부지휘자인 피터 빌로엔의 지휘를 처음 볼 수 있는 무대였다. 이지혜가 협연한 버르토크 바이올린 협주곡이 인상 깊었다. 평면적이고 건조하게 다가올 수 있는 곡의 성격을 풍윤한 표현으로 입체적이고 음향적으로 바꿔 놓았다. 브람스 교향곡 3번은 셈여림에 기민하게 반응한 서울시향의 역량이 돋보였다. 몇몇 군데에서 고요한 숲속같은 정적의 순간들을 만들고 이에 대비되는 다이내믹으로 스토리텔링을 펼치는 모습이었다. 리허설 시간이 부족했는지 이음새가 많고 자주 끊기는 등 합이 맞지 않는 부분이 아쉬웠다. 20일 함신익이 지휘한 심포니송의 공연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으로 시작했다. 협연자인 피아니스트 김준형은 또랑또랑하고 빛나는 톤으로 곡에 임했다. 베토벤적인 피아니즘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충실한 해석이었다. 베토벤 교향곡 7번 연주는 사람의 움직임을 보는 듯 자연스러웠다. 심포니송 단원들은 서로 귀를 기울이며 표현을 조절했다.
21일 부산시향 공연은 본머스 심포니 음악감독인 우크라이나 출신 키릴 카라비츠가 지휘했다. 까다롭고 도전적인 프로그램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리스트 교향시 ‘마제파’는 오케스트라를 독려하는 카라비츠의 정확한 비팅이 돋보였다. 쇼스타코비치 첼로 협주곡 2번에서 협연자 문태국은 강렬한 보잉으로 다소 건조하면서도 긴장감 넘치게 곡을 풀어갔다. 스트라빈스키 ‘페트루슈카’는 다양한 색채와 그림자를 연상시킨 입체적인 해석이었다.
말코 우승 이승원이 지휘봉 잡은 경기필
27일 경기필 공연은 말코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금의환향한 이승원이 지휘봉을 잡았다. 글린카 ‘루슬란과 류드밀라’ 서곡으로 문을 열고 툴루즈 카피톨 국립관현악단의 종신악장인 김재원이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협연했다. 나무는 뚜렷했지만 숲이 잘 보이지 않는 연주였다. 차이콥스키 4번은 이승원 지휘의 강렬하고 일관적인 흐름과 박동감이 돋보인 연주였다. 앙코르인 호두까기 인형 중 ‘파드되’가 압권이었다. 노래하며 표현한 희로애락은 차이콥스키의 진수였다. 마지막날인 28일 이병욱 지휘 인천시향. 황수미가 노래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네 개의 마지막 노래’는 잊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큰 글꼴의 가사를 음미하며 황수미의 고혹적이고 능숙한 노래에 귀를 기울이니 어깨 위로 인생의 오의가 내려앉는 듯했다. 경기필에서 인천시향으로 이적한 정하나 악장의 바이올린 솔로도 황홀했다. 앙코르인 슈트라우스 ‘내일’은 잘 어울리는 디저트이면서 본 프로그램의 여운을 확장시켰다. 2부 브루크너 교향곡 7번도 국내 오케스트라의 수준을 뛰어넘은 연주였다. 관과 현의 잔실수도 감지됐지만 지휘자 이병욱은 큰 스케일로 곡의 맥을 짚어나가며 자신감 있게 이끌었다.매년 교향악축제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무릇 연주란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다. 예측불허의 감동은 이 축제의 재미이자 선물인 것 같다.
류태형 음악 칼럼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