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공지능(AI) 인재 쟁탈전에서 한국이 속절없이 밀려나고 있다. 인력 격차가 기술 격차로 이어지면 미래 산업의 주도권을 잃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예삿일이 아니다.

미국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HAI)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은 인도와 이스라엘에 이어 AI 인재 유출이 세 번째로 많은 국가였다. 미국 시카고대 폴슨연구소 산하 싱크탱크 매크로폴로는 2022년 기준 한국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친 AI 인재의 40%가 해외로 나간다는 분석 결과를 내놨다. 2027년까지 국내 AI 분야에서만 1만2800명이 부족한 상황인데, 그나마 국내에서 키운 인재마저 삼성이나 네이버가 아니라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로 떠나는 게 현실이다.

전방위에서 인재를 빨아들이는 글로벌 빅테크의 막강한 자본력에는 무력감을 느낄 만하다. 이들 기업 최고급 연구원의 시작 연봉은 10억~20억원에 이른다. 연봉이 1억~2억원인 국내 기업들과는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다. 하지만 연봉 못지않게 중요한 게 연구 환경이다. 글로벌 빅테크에서 일하는 한국인 AI 연구자를 대상으로 ‘귀국을 고려할 만한 조건’을 설문조사한 결과, 1위는 우수한 동료 연구진, 2위는 데이터·컴퓨팅 시스템 같은 AI 연구 인프라, 3위는 자율적이고 수평적인 연구 문화를 꼽았다. 그런데 AI 연구의 한 축을 담당하는 국내 대학들은 5500만원에 달하는 엔비디아의 최신 칩을 구하지 못해 구형 게임용 칩으로 연구하는 실정이라고 한다. 이러니 고급 두뇌는 해외에서 스카우트를 받지 않아도 스스로 짐을 쌀 수밖에 없다.

이처럼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해선 연구 인프라 조성과 생태계 구축 등 정부 차원의 지원책이 절실하다. 하지만 국내 환경은 오히려 거꾸로다. “AI를 반도체, 2차전지, 백신처럼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해 R&D(연구개발) 세제 혜택을 달라”는 국내 업계의 절박한 건의는 국회 벽에 가로막혔다. AI 기업에 직접 보조금을 지원하는 해외 경쟁국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관련 산업 육성을 위해 3년마다 인공지능 기본계획 수립·시행을 규정하고, 인공지능위원회 등 관련 조직을 신설하는 내용을 담은 ‘AI 기본법’도 국회에서 1년 넘게 표류하다가 폐기될 처지다. 이러다가는 정부가 목표로 내건 ‘인공지능 3대 강국’ 도약은커녕 해외에 인재와 기술을 모두 빼앗긴 채 AI 시대 낙오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