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평화누리도 작명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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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년은 한국의 지방 행정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해다. 1010년 거란의 2차 침입으로 나주까지 몽진 갔던 고려 현종은 그해 북방 경계 강화를 위해 후일 행정 구역 체계의 근간이 되는 ‘5도 양계’ 체제를 마련한다.
그때 생긴 지명이 경기·경상·전라다. 전라도는 현종이 몽진 왕복 과정에서 묵은 전주와 나주에서 따온 이름이고, 경상도는 경주와 상주에서 유래했다. 경기는 서울 경(京) 자와 수도 주변 지역을 뜻하는 기(畿)자를 합한 말인데, 당시 5도에는 포함되지 않고 수도 개경과 인근 12개 고을을 묶은 특별 구역 이름이었다. 그러다 1414년 조선 태종 때 8도의 하나인 경기도가 됐다.
경기는 이처럼 10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행정 지명이다. 이런 유구한 전통의 지명이 요즘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있다. 김동연 지사가 추진하는 경기북부특별자치도의 새 이름 공모로 ‘평화누리특별자치도’가 선정되자 도민은 물론 국민적 비난과 조롱을 사고 있다.
평화누리특별자치도는 누가 들어도 행정 지명으로 적합하지 않다. 경기도의 정체성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 코미디 같은 작명이다. 무엇보다 문제는 이념적이라는 것이다. 군사시설이 몰려 있는 경기 북부 지역에 이런 이름을 붙여 놓고 ‘종북’ ‘친북’ 시비에 휘말리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면 참으로 순진한 발상이다.
행정 지명까지 정치에 이용하는 대표적인 곳이 북한이다. 양강도의 김정숙군(김정일 생모), 김형직군(김일성 아버지), 함경북도 김책시(김일성 전우), 은덕군 안길리(김일성 전우) 등이 멀쩡하게 내려오던 지명을 김일성 일가와 그들에게 충성한 사람들의 이름을 붙여 바꾼 사례다.
행정 지명을 공모로 결정하는 것도 능사가 아니다. 부산 강서구는 2028년 조성될 신도시의 이름을 공모해 외국어 ‘에코델타동’으로 선정했다가 주민 반발과 함께 행정안전부로부터 타당성 검토 요청을 받았다. 시인 김춘수의 ‘꽃’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사물의 의미를 공유하는 것이다. 인구 350만 명이나 되는 도의 이름을 그렇게 함부로 지어서야 되겠는가.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
그때 생긴 지명이 경기·경상·전라다. 전라도는 현종이 몽진 왕복 과정에서 묵은 전주와 나주에서 따온 이름이고, 경상도는 경주와 상주에서 유래했다. 경기는 서울 경(京) 자와 수도 주변 지역을 뜻하는 기(畿)자를 합한 말인데, 당시 5도에는 포함되지 않고 수도 개경과 인근 12개 고을을 묶은 특별 구역 이름이었다. 그러다 1414년 조선 태종 때 8도의 하나인 경기도가 됐다.
경기는 이처럼 10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행정 지명이다. 이런 유구한 전통의 지명이 요즘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있다. 김동연 지사가 추진하는 경기북부특별자치도의 새 이름 공모로 ‘평화누리특별자치도’가 선정되자 도민은 물론 국민적 비난과 조롱을 사고 있다.
평화누리특별자치도는 누가 들어도 행정 지명으로 적합하지 않다. 경기도의 정체성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 코미디 같은 작명이다. 무엇보다 문제는 이념적이라는 것이다. 군사시설이 몰려 있는 경기 북부 지역에 이런 이름을 붙여 놓고 ‘종북’ ‘친북’ 시비에 휘말리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면 참으로 순진한 발상이다.
행정 지명까지 정치에 이용하는 대표적인 곳이 북한이다. 양강도의 김정숙군(김정일 생모), 김형직군(김일성 아버지), 함경북도 김책시(김일성 전우), 은덕군 안길리(김일성 전우) 등이 멀쩡하게 내려오던 지명을 김일성 일가와 그들에게 충성한 사람들의 이름을 붙여 바꾼 사례다.
행정 지명을 공모로 결정하는 것도 능사가 아니다. 부산 강서구는 2028년 조성될 신도시의 이름을 공모해 외국어 ‘에코델타동’으로 선정했다가 주민 반발과 함께 행정안전부로부터 타당성 검토 요청을 받았다. 시인 김춘수의 ‘꽃’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사물의 의미를 공유하는 것이다. 인구 350만 명이나 되는 도의 이름을 그렇게 함부로 지어서야 되겠는가.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