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조세지출(세제 지원)과 재정지출 사업 간 유사·중복 여부 등을 따져보기 위해 전수조사에 나섰다. 비슷한 목적의 세제 지원과 재정지출을 단계적으로 통폐합해 재정의 건전성과 효율성을 제고할 계획이다.

5일 정부 부처에 따르면 기획재정부가 각 부처에 전달한 ‘2025년도 예산안 편성 및 기금운용계획안 작성 세부지침’엔 ‘조세지출 예산과의 유사·중복 여부 사전 점검’ 항목이 신설됐다. 재정지출 사업을 검토할 때 정책 목적과 수혜 대상이 비슷한 세제 지원이 있는지, 지원 규모는 얼마인지 등을 파악하기 위한 항목이다.

부처는 소관 세제 지원 예산 리스트와 도입 목적, 수혜 대상, 감면 내용, 근거 규정, 적용 기한, 연도별 실적 및 전망 등을 파악해 예산 요구서를 작성해야 한다. 부처는 이 지침을 참고해 오는 31일까지 내년도 예산 요구서를 기재부에 제출해야 한다.

기재부는 소위 ‘숨은 보조금’이라고 불리는 조세지출이 최근 크게 늘어나자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예상 조세지출은 총 77조1000억원으로 5년 전보다 75.3%(33조1000억원) 증가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예산 지출과 조세지출이 이중으로 지원되는 경우 어떤 방식이 더 효율적인지 중점적으로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77조원 세제지원 사업…예산 중복지출 없앤다

농민 면세유·中企 특별공제…'예산 성역' 구조조정 신호탄 되나
8459억 들여 면세유 혜택 주고 공익직불제로 보조금까지 지원

정부가 내년 예산안 편성 과정에서 유사·중복 사업 전수조사에 나서면서 그동안 예산 사업의 ‘성역’으로 여겨져 왔던 농어민과 중소기업 분야에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전문가들은 조세지출(세제지원)과 재정지출 간 통폐합이 재정의 건전성뿐 아니라 예산 집행의 효율성도 제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농어업과 중소기업 예산 지원 타깃

5일 기획재정부와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올해 조세지출 77조1144억원 중 농·어민만을 대상으로 하는 비과세·감면 등 조세지출은 6조7000억원이다. 이 가운데 농업용을 포함해 임업용, 어업용 석유류에 대한 간접세 면제가 8459억원에 달한다. 농업인은 경운기, 트랙터 등 농사에 쓸 기계를 돌리는 용도로 면세유를 살 수 있는데, 연간 약 102만 명의 농민이 이런 감면 혜택을 받고 있다. 농어민이 구입하는 비료, 농약, 사료 등 기자재 부가가치세 영세율(0%)을 적용하는 데 따른 조세지출도 올해 2조4789억원으로 추정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22년 이 제도에 대해 “공익직불제와는 지원 대상(농업인)과 목적(중·소규모 농가에 대한 소득 안정) 측면에서 중복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공익직불제는 농가의 소득 안정과 농업의 공익 기능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예산으로 농업인에게 보조금을 지원하는 제도다.

중소기업 조세지출도 재검토가 필요한 분야다. 올해 기준 중소기업 조세지출 규모는 19조4000억원으로 전체 조세지출의 25%에 달한다. 2020년 12조9000억원이었던 중소기업 조세지출이 4년 새 약 50% 급증했다.

조세지출은 특정 목적을 위해 한시적으로 도입하지만, 이해 관계자들의 반발 등 때문에 일몰이 계속 연장된다는 지적을 받는다. 1986년 도입된 ‘농업용 석유류 간접세 면제’ 조세 특례는 여덟 차례 일몰이 연장되면서 2026년까지 40년간 유지되고 있다. 1989년 도입된 농어민 기자재 부가세 영세율(0%)도 일몰이 내년 말까지 아홉 차례 연장됐다. 장기간 일몰이 연장되는 과정에 부작용도 발생한다. 농업용 면세유의 경우 불법 유통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 글로벌 탄소 중립 정책 기조와도 배치된다.

유사 세제·재정지출 사업 구조조정

정책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조세지출 사업도 많다. 1992년 도입된 중소기업 특별세액공제가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된다. 농업, 광업, 건설업, 정보통신업 등 특정 업종에 해당하면 신규 투자 규모와 실적 등에 상관없이 단지 중소기업 요건만 갖추면 사업장에서 발생한 소득에 대한 소득세와 법인세의 5~30%를 최대 1억원 한도에서 감면받는다. 올해 감면 규모는 2조6474억원으로 추정된다. 한 국책연구원 관계자는 “세제 혜택은 물론 연구개발(R&D), 금융 등 다양한 지원을 받는 중소기업에 무조건적인 특별세액 감면을 지원하는 것은 과도한 중복 특혜”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재정지출과 세제지원을 통폐합할 경우 재정 건전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끌어올린다고 설명했다. 최근 기재부 자문위원회인 중장기전략위원회가 제안한 ‘가족수당’이 대표적이다. 위원회는 아동수당, 부모급여, 자녀 세액공제 등 흩어져 있는 현금성 재정과 세제지원을 통폐합해 효율화하자고 제안했다. 박노욱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조세지출은 수요 추정이 쉽지 않아 불투명하고, 법으로 이뤄지다 보니 경직성도 강하다”며 “국가 재정 운용 관점에서 보면 재정지출을 기본으로 두고 조세지출로 보완한다는 원칙이 효율적”이라고 강조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