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주요 공공기관 평가에 주민 온라인 투표를 도입한 경기도의 책임계약평가제도가 애초 취지와 달리 인맥 총동원 경쟁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관장 임기 연장을 위해 직원은 물론 주변 인맥까지 총동원하는 경쟁이 벌어지자 내부에서 “행정력을 낭비하는 전시행정 쇼”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직원·지인 동원 '인기투표' 된 경기공공기관 평가

‘인맥 총동원 경쟁’된 기관 평가

5일 경기도에 따르면 산하 경기주택도시공사(GH),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경기신용보증재단, 경기문화재단 등 4개 기관은 6일까지 진행되는 주민 온라인 투표에 사활을 걸고 있다.

지난달 16일 시작한 책임계약평가 온라인 투표는 도민이 공공기관 사업 성과를 평가할 수 있게 한다는 취지로 올해 본격 도입됐다.

도 산하 28개 공공기관 중 정원 200명 이상인 GH(779명), 경기문화재단(493명), 경기신용보증재단(344명),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231명) 등 네 곳이 평가 대상이다. 전체 평가에서 주민 온·오프라인 투표를 50% 반영해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기관에 ‘특별정원 증원’, ‘도지사 표창’ 등의 인센티브를 준다.

하지만 처음 취지와 달리 기관 직원들의 ‘출석 도장 찍기 경쟁’이 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복 투표가 가능해지자 각 기관 직원은 매일 투표에 참여하고 있다.

이날 기준 GH가 2만8819표로 1위인 가운데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2만7863표, 경기신용보증재단 2만7598표이며 경기문화재단은 2318표에 그쳤다. 3위였던 GH가 연휴 기간 가족과 친지 등을 동원해 1위로 올라서는 등 과열 양상을 빚고 있다. 경기신용보증재단은 투표 후 당첨 시 문화상품권, 모바일상품권 등을 증정하는 이벤트까지 벌이고 있다.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은 홈페이지에 투표에 참여한 100명에게 선물을 준다는 배너를 내걸고 투표를 독려하고 있다.

4개 기관에서 세 개씩 내건 평가 대상이 주먹구구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GH는 ‘청년·신혼부부 등 무주택자용 주택 공급’, 경제과학진흥원은 ‘1조원 규모 G펀드 조성’ 등 막연한 내용을 평가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제도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내부에서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경기도공공기관노동조합총연합은 “전시행정 쇼로 전락한 책임계약평가를 중단하라”며 “행정력과 혈세만 낭비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표 임기 앞둔 기관들은 사활

평가 대상 기관들이 온라인 투표를 대표 임기 연장용으로 이용한다는 비판도 있다. 도민 평가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기관장이 임기 연장에 유리한 고지를 점한다고 알려져서다. 책임계약평가 대상 기관 네 곳 중 두 곳의 대표 임기가 곧 종료될 예정이다. 강성천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장, 시석중 경기신용보증재단 이사장은 내년 1월에 임기가 끝난다.

직원 수를 늘려주는 ‘특별 증원’도 과열 경쟁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기관 공무원 정원을 늘리려면 지침에 따라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평가에서 1위를 하면 한결 쉽게 증원이 가능하다. 한 기관 직원 A씨는 “대표가 투표 진행 상황을 늘 예의 주시하고 있다”며 “기관장이 예민하게 반응하자 간부들이 온라인 투표 참여 분위기를 형성했다”고 전했다.

주민 참여를 통한 기관 평가라는 당초 목표와 달리 제도가 행정력 낭비 등의 부작용을 낳는다는 지적에 경기도는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입장이다. 도 관계자는 “도민에게 각종 정책을 홍보하고 도정 참여도를 높이기 위한 정책”이라며 “투표 외 여러 평가 등을 종합하기 때문에 지적된 부분이 보완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유림/조철오 기자 ou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