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프 3보다 더 무서운 '1% 룰'…美·싱가포르 기후 공시 점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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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ESG 리포트
美 SEC 기후공시 규칙 승인
2025년부터 상장사 공시 의무화
기후, 재무에 1%라도 영향 주면
재무제표 반영하고 설명해야
기후변화 대응 미진한 기업
코리아 디스카운트 경계해야
美 SEC 기후공시 규칙 승인
2025년부터 상장사 공시 의무화
기후, 재무에 1%라도 영향 주면
재무제표 반영하고 설명해야
기후변화 대응 미진한 기업
코리아 디스카운트 경계해야

첫째, 대상 기업이 달라졌다. 최초안은 모든 기업이 대상이었으나 최종안은 비상장 기업 혹은 낮은 유동 비율과 적은 매출액 요건에 해당하는 상장 기업(Smaller Reporting Company, SRC)이 배제됐다. 시가총액의 95%에 달하는 기업이 의무 공시 대상이지만, 기업 수로 보면 약 60%는 공시 의무가 면제됐다. 둘째, 최초안과 달리 특정 온실가스가 투자자에게 중대할 경우에만 공시하는 것으로 변경됐다.
스코프3 없어도 까다로운 SEC 규칙
마지막으로 적용 시점이다. 2022년 3월 초안 발표 당시 로드맵은 ‘2023년 적용, 2024년 리포팅 시작’이었다. 하지만 최종안 통과가 2년가량 늦어졌고, 기업에 준비할 시간을 준다는 이유로 최종안 통과와 보고 개시 시점 간 간격이 벌어져 2025년 회계연도 실적을 2026년 공개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유럽에서는 기후 공시안이 확정된 지 오래고, 최근에는 또 하나의 게임체인저가 될 것으로 거론되는 기업지속가능성실사지침(CSDDD), 즉 ‘공급망실사법’을 통과시켰다. 한편 여러 국가가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의 표준을 수용해 자국 기후 공시 로드맵을 발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SEC가 초안에서 후퇴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사실 미국의 독자 행보는 그리 낯설지 않다. 클라이밋 액션 100+(CA 100+)가 대표 사례다. 세계 최대 온실가스배출 기업들이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게 돕는 투자자 주도의 이니셔티브다. 2017년 시작해 700개 이상 글로벌 투자회사가 가입했고, 170개 이상 기업에 관여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미국 국적 거대 자산운용사들만 올초부터 속속 탈퇴를 선언하고 있다.
글로벌 1위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미국 본사는 탈퇴하고 글로벌 지사로 참여도를 낮췄다. 핌코, 스테이트스트리트에 이어 3월에는 인베스코까지 탈퇴했다. CA 100+가 추진하기로 한 2단계 계획에 대한 부담 때문으로 추정된다. 1단계는 기업의 기후 관련 공시와 탄소중립 목표 설정 요구가 골자이고, 2단계는 목표 실행에 초점을 맞춰 거버넌스까지 관여 활동을 확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계 자산운용사의 탈퇴 행렬은 CA 100+ 동조가 소송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는 내부 검토를 받아들인 결과로 읽힌다.
중요한 것은 SEC 기후 공시에 ‘1% 룰’이 있다는 점이다. 1% 룰 아래에서는 기후변화로 인한 재무적 영향이 재무제표상 주요 항목(total line item) 수치의 1% 이상이면 반드시 재무적으로 반영하고 주석 사항으로 설명해야 한다.
싱가포르, 비상장사도 의무화
투자자 관점에서 보면 중대성에 입각한 까다로운 규칙이다. SEC는 스코프3를 배제했지만, 미국 주정부 중 최대 경제 규모인 캘리포니아는 2024년부터 스코프3를 포함한 기후 공시 의무화를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미국 자산운용사들은 투자자를 위한다는 원칙을 강조하지만 사실상 모호한 데다 항상 실리에 민감한 의사결정을 한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기후 공시 의무화 대상은 상장 기업에 국한되지 않고 2027년부터 일정 규모 이상(매출액 10억달러, 자산 5억달러) 비상장 기업으로 확대된다. 단, 비상장 기업은 2029년 전까지 스코프3 배출량 공개 의무가 면제된다. 전체적으로 ISSB S2(기후 관련 의무 공시 표준안)는 물론 인증을 의무화한 EU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CSRD) 기준까지 받아들이며 싱가포르 상황에 맞게 자체 기준안과 로드맵까지 수립한 것이다.
주목할 점은 이번 기후 공시 의무화 결정 전부터 싱가포르의 지속가능성 정보공개 의무화의 진도가 꽤 나갔다는 것이다. 2021년 싱가포르 증권거래소(SGX)는 모든 상장기업이 2022년부터 준수 또는 설명 기준(comply or explain basis)에 따라 TCFD에 맞춰 기후 공시를 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TCFD가 기후 공시의 근간을 이룬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산업별로 2023년까지 금융업·농림축산물·임업·에너지, 2024년까지 소재·건축물·운송업으로 의무화 대상을 확장해왔다. 2023년부터 ISSB, 유럽연합(EU), 미국에서 기후 공시 최종안이 속속 확정 발표되기 꽤 오래전부터 싱가포르는 기후 공시 의무화 로드맵을 진행해온 것이다. 일본과 또 다른 아시아 금융 허브인 홍콩도 유사한 과정을 밟고 있다.
기후 공시는 기후 금융의 기초 인프라
한국회계기준원 지속가능성 공시기준위원회(KSSB)는 지난 4월 30일 국내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공개초안을 발표했다. 제2호에는 기후 관련 기회 및 위험에 관한 공시 요구 사항을 담았다. KSSB 공개초안은 ISSB가 2023년 6월 발표한 공시 기준의 내용을 비교적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KSSB는 '글로벌 정합성 추구'라는 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발표에서 도입 일정과 의무화 대상, 즉 로드맵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공시의 형식이나 인증도 빠졌다. 스코프3 배출량 공시는 의무화 여부를 추후 관계 부처 협의를 통해 정하기로 했다. 예민한 내용에 대한 의사결정을 최종안 확정 시점으로 미룬 것이다.
기후 공시 의무화는 기업의 리스크를 노출한다. 기업이 반길 리 없다. 하지만 글로벌 투자자들은 기업의 기후변화 대응책을 묻고 있고, 대응 계획이 미흡한 곳에는 변화를 요구한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해당 주식을 멀리한다. 바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다.

신지윤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전문위원·전 KTB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