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연주자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작곡가의 유언장’을 제대로 전달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악보를 보자마가 드는 직감적인 요소는 최대한 배제하고 음표 하나, 지시어 하나를 꼼꼼히 분석하는 데 집중해요.”
박재홍 (c) rohsh
박재홍 (c) rohsh
2021년 세계적 권위의 부조니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한 피아니스트 박재홍(25·사진)은 7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N스튜디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박재홍은 부조니 콩쿠르에서 우승과 함께 작곡가 부조니 작품 연주상, 실내악 연주상, 타타로니 재단상, 기량 발전상 등 4개 부문 특별상을 휩쓸며 대회 5관왕 기록을 세운 피아니스트로도 유명하다.

박재홍이 오는 12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공연에서 협연자로 나선다. 그가 들려줄 작품은 ‘악마의 협주곡’으로 불리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이다. 피아니스트에게 초인적인 기교, 폭발적인 표현력, 엄청난 지구력, 극적인 예술성을 요구하는 것으로 악명 높은 난곡(難曲)으로 잘 알려져 있다. 박재홍의 부조니 국제 콩쿠르 결선 곡이기도 하다.

그는 “흔히 이 작품을 기교적이고 화려하고 파워풀한 작품이라고만 생각하기 쉽지만, 내가 느끼는 그의 음악은 완전히 다르다”며 “오히려 극적인 표현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1악장의 첫 음부터 3악장의 마지막 음까지 연결된 하나의 긴 호흡을 표현하는 데 집중해야 본연의 매력이 완연히 살아나는 작품”이라고 했다. 이어 “(이번 공연에서는) 지극히 감성적이면서도 섬세한 라흐마니노프의 진짜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박재홍은 이날 특별한 습관 하나를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작곡가의 뜻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연주할 때마다 새로운 악보를 사서 처음부터 다시 연습을 시작한다”고 했다. 메모가 돼 있는 기존 악보를 보다 보면 예전 생각에 함몰될 수 있어서다. 그는 “이전의 연습 패턴, 작품 해석 방향 등을 깨부숴야지만 계속해서 새로운 음악이 나올 수 있다고 믿는다”며 “연습 한 번 한 번이 작곡가의 삶에 가까워지기 위한 ‘처절한 사투’ 같다”고 덧붙였다.

박재홍은 올해 말 독일 베를린으로 유학을 떠난다. 내년 3월 미국 애틀랜타 심포니 오케스트라 데뷔 무대도 앞두고 있다. 피아니스트로서 목표는 무엇일까. “요즘엔 하루에 8시간 넘게 피아노를 치는데, 손이 아파서 더는 연습하지 못하게 될 때도 악보와 그 음표들을 머릿속에서 계속 떠올릴 정도로 피아노가 좋아요. 앞으로 70년 정도만 더 무대 위에서 피아노를 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