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현재와 같은 보건의료 위기 '심각' 단계에서 해외에서 의사 면허를 받은 의사들이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법을 바꾸기로 했다. 외국 의사를 활용해서라도 1만여명에 달하는 전공의 이탈에 따른 의료 공백을 메꾸겠다는 '고육지책'이다.

보건복지부는 8일 이런 내용을 담은 의료법 시행규칙 일부개정안을 8일부터 20일까지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입법예고란 법을 만들거나 바꾸기 전 새로운 법 내용을 국민에게 미리 공지하는 절차다. 입법예고 기간 동안 누구나 관련 의견을 낼 수 있다.

복지부는 개정 이유에 대해 "보건의료 재난 위기 상황에서 의료인 부족으로 인한 의료공백 대응을 위해 외국 의료인 면허를 가진 자가 복지부장관의 승인을 받아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해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이번 조치는 현실적으론 한국인으로 해외 의대에 진학해 현지 면허를 딴 의사들이 주요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행 의료법에 따르면 해외 의대 졸업해 현지 의사 면허를 갖고 있는 경우라도 국내에서 진료 등 일반 의료행위를 하려면 국내 의사 면허 국가시험을 별도로 치러야 한다.

예외적으로 복지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 국내서 의료 행위를 할 수 있지만 그 범위는 교육·기술협력, 교육연구사업, 국제의료봉사단 의료봉사 등에 국한된다. 하지만 앞으론 의료 공백이 심각할 경우, 외국 의사 면허만 있으면 한국에서 시험을 치르지 않아도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2월20일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이 시작되자 같은 달 23일 보건의료 재난경보 단계를 기존 '경계'에서 '심각'으로 올렸다.

현재 국내 의사 면허 국가시험 볼 수있도록 허용된 외국 의대는 38개국 159곳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외국 의대를 나와 국내 면허를 받은 인원은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 간 총 137명 수준이다.

정부 안팎에선 이번 시행 규칙 개정이 중장기적으로 의사 면허 개방으로 이어지는 교두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당장은 보건의료 심각 단계에 국한된 조치지만 이번 개방의 효과와 향후 의료공백 사태 전개에 따라 추가 개편이 이뤄질 수도 있다.

한국과 달리 해외 각국은 우수한 의료 인력 확보를 위해 면허를 개방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해외 주요 의대를 선정해 해당 대학을 졸업하면 자국의 의사면허를 인정해주고 있다. 한국에선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3개 대학의 의대가 지정돼있다. 국가별로 개방 범위가 조금씩 다르지만 미국 의사·전문의 취득자는 호주와 캐나다, 뉴질랜드 등 다양한 국가에서 별도의 시험 없이 의료활동이 가능하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