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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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기업집단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한 명을 특정하고, 그 사람에 각종 의무와 형사책임까지 지우는 ‘동일인 지정제’가 시대 흐름에 역행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이런 내용을 담은 ‘기업의 지배구조 자율성 확보를 위한 공정거래법상 대규모 기업집단 규제 개선 방안’ 보고서를 9일 발표했다. 한경협 의뢰로 홍대식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작성했다.

동일인 지정제는 그룹 총수가 친인척에 특혜를 주거나 그룹을 순환 출자형 또는 피라미드형 구조로 운영하는 걸 막겠다는 취지로 1986년 제정됐다. 공정위는 매년 자산 5조원 이상 공시 대상 기업집단 등을 발표하면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감안해 동일인을 지정하고 있다.

동일인은 대기업집단 지정 자료와 관련된 모든 책임을 진다. 자료를 누락하거나 허위로 제출하면 형사 처벌을 받는다. 이에 대해 홍 교수는 "기업집단의 동일인을 ‘기업 총수’가 아닌 ‘핵심 기업’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룹의 상당수가 지주회사 구조를 갖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홍 교수는 “지주회사 체제를 갖춘 그룹은 최상위 회사 등 핵심 기업을 중심으로 기업집단의 범위를 충분히 획정할 수 있다”라며 “총수를 동일인으로 지정하는 제도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 도입 등 기업의 자율적인 지배구조 개선 흐름에도 역행한다”고 강조했다.

동일인 관련자 중 친족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는 점도 언급했다. 현행 제도는 동일인의 친족 범위를 ‘혈족 4촌, 인척 3촌’으로 규정하고 있다. 홍 교수는 시대 변화를 반영해 동일인의 친족 범위를 ‘배우자, 직계 존비속 및 동거친족’으로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들 "자료 누락해도 처벌…'동일인 지정제' 시대 역행"
동일인으로 지정되면 매년 친인척이 소유하거나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회사의 상세 정보를 수백 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로 제출해야 한다. 홍 교수는 “동일인 관련자에 친족을 포함하는 것은 동일인이 친족들에게 지배력을 행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라며 “최근 친족 간 유대가 약해지고 있어 시대 변화에 맞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홍 교수는 총수에게 부과하는 자료 제출 의무를 줄이고 핵심 기업에 부과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강조했다. 동일인이 수많은 계열회사의 자료를 일일이 검증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절차적 의무 위반에 불과한 행위를 형사 처벌하는 건 과도한 만큼 자료 누락 등 단순한 의무 위반은 과태료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