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순 칼럼] 국가 최상의 신뢰 시스템, 누가 화폐를 흔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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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제 교육 보건…다양한 국가제도
'최상의 신뢰 체계'는 통화
돈 가치 지키는 게 정부·국회 책무
빚 의존 과도 예산, 효과 없는 지출
'25만원 살포' 신뢰 둑에 구멍 내
화폐 타락시키면 연금개혁도 헛일
허원순 수석논설위원
'최상의 신뢰 체계'는 통화
돈 가치 지키는 게 정부·국회 책무
빚 의존 과도 예산, 효과 없는 지출
'25만원 살포' 신뢰 둑에 구멍 내
화폐 타락시키면 연금개혁도 헛일
허원순 수석논설위원
국가는 다양한 신뢰 체계를 구축한다. 좋든 싫든 우리는 그 시스템 안에서 살아간다. 세제 교육 보건 사법 국방 등 많은 신뢰 시스템이 있다. 그중 최상이 화폐다. 이는 대철학자 이마누엘 칸트의 평가다. 종이 한 장이 모든 사적·공적 거래에 따른 채권·채무를 담보하고 해소하는 것은 나라가 보증하기 때문이다. 금본위제가 아닌데도 화폐가 통용되는 것은 국가의 신뢰 시스템 덕분이다.
국가는 화폐제도를 구축하고 돈의 가치를 유지하지만 그 반대 경우도 있다. 때로는 돈의 가치 하락도 불사한다. 인플레이션이라는 ‘보이지 않는 세금’이 그렇다. ‘정식 세금’이 잘 걷히지 않거나 세금보다 더 쓰면서 정부가 무리하게 빚을 내면 그렇게 된다. ‘큰 정부와 작은 정부’ ‘팽창예산과 건전·긴축예산’의 논쟁 기저에도 깔리는 근본적 문제점이다.
화폐가 신뢰를 잃으면 그 폐해는 길고 무섭게 나타난다. 가령 기축통화국이 아닌 나라가 억지 발권력으로 통화량을 5% 늘려 쓴다고 가정해보자. 돈이 5% 증가하면 가치는 5% 하락할까. 그렇지 않다. 그 화폐 가치는 그 이상으로 폭락한다. 경제 성장에 따라 유통 가능한 재화나 서비스가 교환될 때 자연스럽게 생겨 축적되는 게 돈인데, 인위적으로 물을 타니 당연한 결과다. 신뢰 상실은 도미노식으로 이어진다. 한국 주식 30%를 가진 외국인 투자자들이 코스피에 완전히 실망해 보유 주식의 10%(상장 주식 3%)를 일거에 판다고 상정해 봐도 마찬가지다. 이 경우에도 ‘주가 3% 하락’이 아니라 시장 붕괴 정도의 아수라장이 펼쳐질 것이다. 신뢰가 무너지면 증시도 붕괴하지만 화폐는 더 큰 타격을 받는다.
한국은행법 제1조가 ‘물가안정을 도모함으로써 국민 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인 것도 그래서다. 물가안정은 그 무엇보다 국민 생활에 중요하다. 결국 원화의 가치 유지다. 개인·기업 등 경제 주체의 선택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는 금리도 달리 보면 화폐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다. 금리는 물가와 성장의 함수이고 돈의 수급 조절 수단이지만, 결국은 돈의 가치 유지책이다.
언필칭 국가를 거론하지만 사실 국가는 추상 명사다. 정책의 현실에선 행정부와 입법부가 움직인다. 권력의 이 양대 축이 근래 화폐제도의 신뢰를 흔드는 일이 잦아졌다. 5년 내내 ‘초(超)슈퍼예산’을 짜온 전 정권이 그러했다. 위험해진 국가채무, 훼손된 건전재정이라는 지적을 넘어 원화의 신뢰 체계를 흔들었다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위헌적 예산 권력으로 비필수 정부지출을 압박해온 여야 국회도 마찬가지다. 현 정부 들어 예산 남용을 자제하겠다는데도 거대 야당이 장악한 국회는 여전히 화폐의 신뢰 시스템을 흔들어댄다. 전 국민 25만원 살포가 딱 그렇다.
화폐가 신뢰를 잃게 되면 고물가는 필연이다. 원자재값 상승 이상의 인플레이션은 내부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환율이 오르며 ‘달러라이제이션’이 빚어진다. 한 나라의 돈이 미국 달러로 대체되는 현상 말이다. 경제가 엉망일수록 심해진다. 북한의 달러라이제이션 비율은 80%를 넘는다고 한다. 미국 빼고 민간 보유 달러가 가장 많은 나라인 아르헨티나도 그렇다. 신뢰할 곳을 찾는 ‘돈의 망명’이다. 돈이 도망가면 인재도 함께 달아날 것이다. 반도체·인공지능(AI) 쪽의 우수한 인재일수록 갈 곳은 많다. 미국 일본 등 경제 대국들은 벌써 글로벌 인재 쟁탈전에 돌입해 기술 인력들에 국경의 벽은 낮다. 인력과 산업의 공동화는 화폐의 신뢰를 더 흔들며 악순환을 가중시킬 것이다.
과도한 정부 지출이 이럴진대 ‘발권력 동원’ 같은 말은 누구도 입에 담지 않는 게 좋다. 2021년 9월 코로나 대책을 내세워 당시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와 그쪽 책사들이 드러내놓고 이를 거론한 적 있다. 2022년 10월 레고랜드 사태 때는 현 정부 일각에서도 발권력 동원을 해법으로 검토했다. 적자 국채 발행이 일상사처럼 되면서 위험선을 넘은 사례다.
거듭된 우려와 반대에도 22대 국회 1호 법안을 예고하며 ‘무상 25만원’에 매달리는 민주당은 나라 밖 평가도 보기 바란다. 작은 구멍으로 오래 쌓아온 신뢰의 둑이 금갈 수 있다. 경상수지에 별 이상이 없는데도 계속되는 고환율은 이미 원화의 신뢰도가 하락했다는 증거다. 화폐를 타락시키면 연금개혁도 헛일이다.
국가는 화폐제도를 구축하고 돈의 가치를 유지하지만 그 반대 경우도 있다. 때로는 돈의 가치 하락도 불사한다. 인플레이션이라는 ‘보이지 않는 세금’이 그렇다. ‘정식 세금’이 잘 걷히지 않거나 세금보다 더 쓰면서 정부가 무리하게 빚을 내면 그렇게 된다. ‘큰 정부와 작은 정부’ ‘팽창예산과 건전·긴축예산’의 논쟁 기저에도 깔리는 근본적 문제점이다.
화폐가 신뢰를 잃으면 그 폐해는 길고 무섭게 나타난다. 가령 기축통화국이 아닌 나라가 억지 발권력으로 통화량을 5% 늘려 쓴다고 가정해보자. 돈이 5% 증가하면 가치는 5% 하락할까. 그렇지 않다. 그 화폐 가치는 그 이상으로 폭락한다. 경제 성장에 따라 유통 가능한 재화나 서비스가 교환될 때 자연스럽게 생겨 축적되는 게 돈인데, 인위적으로 물을 타니 당연한 결과다. 신뢰 상실은 도미노식으로 이어진다. 한국 주식 30%를 가진 외국인 투자자들이 코스피에 완전히 실망해 보유 주식의 10%(상장 주식 3%)를 일거에 판다고 상정해 봐도 마찬가지다. 이 경우에도 ‘주가 3% 하락’이 아니라 시장 붕괴 정도의 아수라장이 펼쳐질 것이다. 신뢰가 무너지면 증시도 붕괴하지만 화폐는 더 큰 타격을 받는다.
한국은행법 제1조가 ‘물가안정을 도모함으로써 국민 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인 것도 그래서다. 물가안정은 그 무엇보다 국민 생활에 중요하다. 결국 원화의 가치 유지다. 개인·기업 등 경제 주체의 선택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는 금리도 달리 보면 화폐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다. 금리는 물가와 성장의 함수이고 돈의 수급 조절 수단이지만, 결국은 돈의 가치 유지책이다.
언필칭 국가를 거론하지만 사실 국가는 추상 명사다. 정책의 현실에선 행정부와 입법부가 움직인다. 권력의 이 양대 축이 근래 화폐제도의 신뢰를 흔드는 일이 잦아졌다. 5년 내내 ‘초(超)슈퍼예산’을 짜온 전 정권이 그러했다. 위험해진 국가채무, 훼손된 건전재정이라는 지적을 넘어 원화의 신뢰 체계를 흔들었다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위헌적 예산 권력으로 비필수 정부지출을 압박해온 여야 국회도 마찬가지다. 현 정부 들어 예산 남용을 자제하겠다는데도 거대 야당이 장악한 국회는 여전히 화폐의 신뢰 시스템을 흔들어댄다. 전 국민 25만원 살포가 딱 그렇다.
화폐가 신뢰를 잃게 되면 고물가는 필연이다. 원자재값 상승 이상의 인플레이션은 내부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환율이 오르며 ‘달러라이제이션’이 빚어진다. 한 나라의 돈이 미국 달러로 대체되는 현상 말이다. 경제가 엉망일수록 심해진다. 북한의 달러라이제이션 비율은 80%를 넘는다고 한다. 미국 빼고 민간 보유 달러가 가장 많은 나라인 아르헨티나도 그렇다. 신뢰할 곳을 찾는 ‘돈의 망명’이다. 돈이 도망가면 인재도 함께 달아날 것이다. 반도체·인공지능(AI) 쪽의 우수한 인재일수록 갈 곳은 많다. 미국 일본 등 경제 대국들은 벌써 글로벌 인재 쟁탈전에 돌입해 기술 인력들에 국경의 벽은 낮다. 인력과 산업의 공동화는 화폐의 신뢰를 더 흔들며 악순환을 가중시킬 것이다.
과도한 정부 지출이 이럴진대 ‘발권력 동원’ 같은 말은 누구도 입에 담지 않는 게 좋다. 2021년 9월 코로나 대책을 내세워 당시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와 그쪽 책사들이 드러내놓고 이를 거론한 적 있다. 2022년 10월 레고랜드 사태 때는 현 정부 일각에서도 발권력 동원을 해법으로 검토했다. 적자 국채 발행이 일상사처럼 되면서 위험선을 넘은 사례다.
거듭된 우려와 반대에도 22대 국회 1호 법안을 예고하며 ‘무상 25만원’에 매달리는 민주당은 나라 밖 평가도 보기 바란다. 작은 구멍으로 오래 쌓아온 신뢰의 둑이 금갈 수 있다. 경상수지에 별 이상이 없는데도 계속되는 고환율은 이미 원화의 신뢰도가 하락했다는 증거다. 화폐를 타락시키면 연금개혁도 헛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