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가족부 장관, 학생들 항의에 '낙태권 제한' 연설 포기
지난달 이탈리아 의회를 통과한 낙태 관련 법안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가족부 장관이 9일(현지시간) 대학생 시위대의 야유와 반발로 연설을 취소하는 수모를 당했다.

안사(ANSA) 통신에 따르면 에우제니아 로첼라 가족부 장관은 이날 로마에서 열린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콘퍼런스에서 연설을 시작하기도 전에 대학생 시위대의 조롱과 야유를 받았다.

시위대는 "내 몸은 내가 결정한다"라고 쓴 작은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연설을 방해했다.

로첼라 장관은 항의하는 시위대를 향해 "아무도 여성의 몸을 다른 사람이 결정한다고 말하지 않았다"며 자제를 호소했지만 시위는 계속됐다.

주최 측은 시위대 대표를 연단으로 불러 발언 기회를 줬다.

하지만 로첼라 장관이 다시 연설하려 하자 시위대는 또다시 고성을 질렀다.

결국 그는 연설을 포기하고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그는 안사 통신에 "내가 없으면 시위대가 나갈 것이라고 생각해서 행사 진행을 위해 자리를 떠났다"고 설명했다.

伊가족부 장관, 학생들 항의에 '낙태권 제한' 연설 포기
조르자 멜로니 총리는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로첼라 장관에게 완전하고 무조건적인 연대를 표한다"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자기 생각에 반대된다는 이유로 연설을 막은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의회는 공공에서 운영하는 낙태 지원 센터를 찾는 여성에게 낙태 반대 단체가 접근해 상담 등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이탈리아 안팎에서 거센 논란을 불렀다.

인권 단체들은 가톨릭 전통이 강해 현실적으로 낙태가 쉽지 않은 환경에서 낙태 반대 단체들이 낙태 희망자에게 접근하는 게 법적으로 허용된다면 낙태권이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지만 멜로니 총리는 "선택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그것은 모든 정보와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아나 레돈도 스페인 양성평등부 장관이 이탈리아의 낙태권 후퇴를 우려하는 의견을 피력하자 "무지하다"고 독설을 날리기도 했다.

딸 하나를 둔 멜로니 총리는 그동안 '크리스천 엄마'를 자처하면서 전통적인 가족 가치를 옹호해온 걸로 유명하다.

그가 가족부 장관으로 임명한 로첼라는 2022년 한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먹는 낙태약인 '미페프리스톤' 사용 연장에 반대하기도 했다.

이번 저출산 콘퍼런스에는 정치권 인사들이 주요 연사로 참여한다.

10일에는 프란치스코 교황도 참석할 예정이다.

이탈리아 정부는 저출산 문제를 국가의 존속을 위협하는 국가적 비상사태로 규정했다.

지난 3월 이탈리아 통계청(ISTAT)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출생아 수는 37만9천명으로 1861년 이탈리아 통일 이후 역대 최저로 떨어졌다.

이탈리아는 금융 위기가 시작된 2008년 이래 경기 침체가 지속되며 15년 연속 출생아 수가 감소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