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오스트리아 빈의 거리 한복판에 개처럼 묶여 네 발로 걷고 있는 남자와 줄을 끌고 있는 여자가 등장한다. 주위의 사람들은 물론 그 기록을 본 사람들에 큰 충격을 안겨 주었던 이들의 행위는 <개 같음에 대한 포트폴리오에서 (From the Portfolio of Dogness)>(1968)라는 제목의 퍼포먼스로 그 주인공은 미디어 및 퍼포먼스 작가인 발리 엑스포트(VALIE EXPORT, b. 1940)와 당시 그의 파트너이자 미디어 개념미술 작가인 페터 바이벨(Peter Weibel, 1944-2023)이었다. 이들은 이 행위예술에서 여성이 능동적 역할, 남성이 수동적 혹은 굴욕적 역할을 취하는, 기존 관념과 반대되는 극적 행위를 수행함으로써 기존 사회의 젠더 역할과 권력 구조에 도전하였다.
<From the Portfolio of Dogness> (1968), In cooperation with Peter Weibel, Courtesy Galerie Thaddaeus Ropac © VALIE EXPORT, VG Bild-Kunst, Bonn 2023; Photo: Joseph Tandl
<From the Portfolio of Dogness> (1968), In cooperation with Peter Weibel, Courtesy Galerie Thaddaeus Ropac © VALIE EXPORT, VG Bild-Kunst, Bonn 2023; Photo: Joseph Tandl
이 같은 전복적 행위의 주체자인 발리 엑스포트는 오스트리아 린츠 출생으로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보수적 사회에 경종을 울린 빈 액셔니즘(Vienese Actionism), 실험 정신이 충만한 행위를 예술적 실천으로 발전시킨 플럭서스(Fluxus) 등이 주를 이룬 1960년대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예술가로 활동을 시작했고, 20세기 대표적 미디어 및 퍼포먼스 작가 중 하나로 평가된다. 현재의 시각으로 보아도 전위적인 그의 작업을 아우른 회고전이 5월 21일까지 사진 및 미디어 아트 미술관인 C/O 베를린에서 열리고 있고, 이 전시를 보았을 때 서울에서라면 개최되지 못했을 전시란 생각을 하기도 했다.

《발리 엑스포트 회고전 (VALIE EXPORT. Retrospective)》은 입구에 설치된 그의 1969년작 <생식기 공포 (genital panic)>로 강렬한 선언을 하며 시작한다. 성기를 드러낸 바지를 입고 소총을 든 작가의 모습을 담은 이 작품은 가부장적 사회와 여성을 대상화하는 미디어를 비판하며 도전한 그의 예술을 함축해 나타낸다.
《발리 엑스포트 회고전》 전시전경, Photo: Hyunjoo Byeon
《발리 엑스포트 회고전》 전시전경, Photo: Hyunjoo Byeon
"(기호 매개체인) 언어가 부당함을 표현하지 못한다면, 오직 직접적인 행동만이 도울 수 있다."
- 페터 바이벨


예술이 행동주의적일 수 있으나 모든 행동주의적 예술가가 예술을 실천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직접적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 중요하지만 스스로의 작업 세계를 발전시키지 않는다면 예술가로서 예술적 실천을 수행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전시는 발리 엑스포트가 단지 행위를 실행한 이가 아니라 20세기 대표적 미디어, 퍼포먼스 작가이자 페미니스트 아트의 아이콘이라는 명성에 걸맞은 다양한 층위의 작업 세계를 구축해온 작가임을 보여준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성이나 전남편의 성을 거부하고 27세에 스스로에게 (모든 문자를 대문자로 표기한) 발리 엑스포트라는 이름을 부여한 작가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에 주어진 역할을 거부하고 미디어에서 여성을 관음증적 시선의 대상으로 다루는 방식에 저항하기 위해 오히려 자신의 몸을 드러내고 매체로 사용하며 공공장소에서 퍼포먼스를 전개했다. 특히 1960년대는 여성의 동등한 법적·정치적·경제적 권리를 요구하며 기존 사회적 규범과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는 페미니즘 운동이 활발하게 행해진 시기로 발리 엑스포트는 페미니스트 아트의 아이콘이 되었다.
“나는 모든 것을 기호로 이해했다. 매체부터 나 자신의 몸까지.”
- 발리 엑스포트


발리 엑스포트는 자신의 몸을 예술 매체로 활용해 행위를 수행하는 것은 물론 신체를 ‘영화’로 만들기도 했다. 일례로 1968년 오스트리아 빈과 독일 뮌헨의 거리에서 가슴 부분이 뚫린 상자를 메고 길을 다니는 사람들에게 일정 시간 동안 자신의 가슴을 만지게 한 < TOUCH CINEMA >가 있다. 상자의 뚫린 부분은 ‘영화 객석’으로 역할하는 커튼으로 덮고 그의 신체는 촉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영화’가 되어 < TOUCH CINEMA >를 경험하러 오는 관객의 눈을 직시하는 일종의 ‘확장된 영화(Extended Cinema)’를 제공하는 개념으로서의 작업이었다. 또한 어두운 극장에서 여성을 관음증적 대상으로 그린 영화를 보는 경험을 전복시킨 것으로 작업에서 여성은 주체가 된다.
<TOUCH CINEMA> (1968), The ALBERTINA Museum, Vienna – The ESSL Collection © VALIE EXPORT, VG Bild-Kunst, Bonn 2023; Photo: Werner Schulz
<TOUCH CINEMA> (1968), The ALBERTINA Museum, Vienna – The ESSL Collection © VALIE EXPORT, VG Bild-Kunst, Bonn 2023; Photo: Werner Schulz
《발리 엑스포트 회고전》 전시전경, Photo: Hyunjoo Byeon
《발리 엑스포트 회고전》 전시전경, Photo: Hyunjoo Byeon
공공장소에서의 센세이셔널한 행위예술을 넘어 발리 엑스포트는 1972년부터 건축적 공간 및 이 공간에서 기대되는 관념과 행동에 대한 틀에 대해 도전을 시작한다. <신체 환경 설정 (Body Configurations)>(1972-1982) 연작은 세계대전으로 인한 참사가 남겨진 빈의 건물들을 드러내는데 초점을 둔 초기 작업부터 가부장적 사회 구조를 대표하는 시청 같은 건물의 모서리나 계단에 작가의 몸을 구부리거나 펼쳐 맞추는 행위를 촬영한 후기 작품까지 남성 중심의 사회의 공간에서 여성이 주체적으로 바라보고 개입함을 보여준다. 더불어 예술 매체로서의 신체 활용에 대해 작가는 당시 기계적 장치를 신체의 확장으로 해석한 마샬 맥루한(Marshall McLuhan) 이론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Injuries I> (1972), The ALBERTINA Museum, Vienna – The ESSL Collection © VALIE EXPORT, VG Bild-Kunst, Bonn 2023; Hermann Hendrich
<Injuries I> (1972), The ALBERTINA Museum, Vienna – The ESSL Collection © VALIE EXPORT, VG Bild-Kunst, Bonn 2023; Hermann Hendrich
전시는 퍼포먼스를 기록한 사진 및 영상뿐 아니라 다양한 미디어 설치 작품까지 포괄하며 발리 엑스포트의 1966년부터 2009년까지의 작품을 여러 소주제로 나눠 그의 작업 세계가 다층적으로 발전한 궤적을 따라간다. 전시 마지막 즈음에 디스플레이된 대형 설치 작품 <애무의 이미지들의 파편 (Fragments of the Images of a Caress)>(1994)은 작가가 미디어 및 개념미술에 대한 관심을 신체 외의 매체를 사용하면서도 신체를 연상시키는 물질성으로 재현했음을 나타낸다.

그는 이를 ‘완전한 흑백 영화’ 같은 영화적 작품이라 설명한다. 18개의 전구가 오일, 우유 대체재, 물이 채워진 실린더에 자동적·반복적으로 천천히 잠겼다 올라오는 설치 작업은 영화의 한 장면을 위해 필요한 최소 프레임 개수를 전구 수를 통해 표현하고 흑백 영화의 색값을 검은색과 흰색, 투명한 액체로 나타내며 육체성과 미디어를 시적으로 그려낸다.
《발리 엑스포트 회고전 (VALIE EXPORT. Retrospective)》 전시전경, Photo: Hyunjoo Byeon
《발리 엑스포트 회고전 (VALIE EXPORT. Retrospective)》 전시전경, Photo: Hyunjoo Byeon
혹자는 여성 해방을 주장한 작가 발리 엑스포트 전시의 시의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과연 엑스포트의 전위적이고 공격적인 페미니스트 예술적 실천이 현재에 재조명되어야 할지 비판을 하기도 한다. 전시를 본 후 이러한 비평과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은 발리 엑스포트의 회고전과 더불어 C/O 베를린에서는 함께 열리는 전시를 통해서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바로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라이아 아브릴(Laia Abril)의 전시 《강간, 그리고 제도적 실패에 대하여 (On Rape and Institutional Failure)》로 이는 오늘날에도 만연한 성폭력과 강간에 대한 작가의 리서치를 바탕으로 만든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변현주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