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기 현금청산 기로 놓인 상계주공5…영끌족 비명 왜
중저가 아파트가 밀집된 서울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은 부동산 상승기인 2021년께 20·30세대가 몰리면서 집값 상승 폭이 컸던 지역이다. 특히 노원구 상계주공5단지는 진입장벽이 낮고 역세권 입지 등 재건축 기대감이 커 더 많은 ‘영끌족(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을 받아 집을 산 수요자)’이 몰렸다.

고금리에 공사비 인상 등으로 재건축 사업성마저 낮아지자 분위기는 급반전했다. 손해를 보고서라도 벗어나려는 소유주가 잇따르면서 3년 만에 매매가가 반토막 났다.

지난 3월 서울시가 재건축·재개발에 대한 직접적인 사업성 보전 방안을 내놓은 것은 새로운 변수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재건축 분담금을 상쇄하기엔 역부족이란 의견과 주택공급 부족 상황 등을 감안하면 사업추진 유인이 크다는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재건축 선두 주자 였는데 …

10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에 따르면 상계주공5단지 전용 31㎡는 지난달 16일 5억2400만원(2층)에 손바뀜했다. 이어 21일에도 5억1000만원(5층)에 거래가 이뤄지는 등 5억원대를 넘긴 거래가 잇따랐다. 전용 31㎡ 단일 면적인 이 단지가 매매가 5억원대를 회복한 것은 지난해 10월 이후 약 반년만이다.




상계주공5단지는 인근 아파트 단지 중 '재건축 선두 주자'로 꼽혔다. 2018년 한국자산신탁을 시행사로 선정해 신탁 방식의 재건축이 추진됐고, 지난해 1월 GS건설이 시공사로 선정했다. 당초 기존 지상 5층 높이 840가구 노후 아파트 단지를 재건축해 지상 최고 35층, 996가구 신축 아파트로 탈바꿈할 계획이었다. 2021년 8월에는 재건축 기대감에 최고 8억원까지 매매가 이뤄지기도 했다.

서울 부동산시장이 전체적으로 하락 전환하면서 상계주공5단지를 포함한 노·도·강 일대도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이 단지 매매가가 직격탄을 맞은 것은 지난해 말 이른바 ‘분담금 이슈’가 계기가 됐다.

지난해 10월께 조합이 추산한 바에 따르면 이 단지 소유주가 전용 84㎡ 재건축 아파트를 배정받기 위해선 가구당 분담금을 5억원가량 내야 할 것으로 나타났다. 비싼 시공비 때문이란 여론이 들끓으면서 GS건설과의 시공계약을 해지했다. 그해 12월 아파트 매매 가격이 4억4000만원까지 하락했다. 약 2년반 새 매매가가 ‘반토막’난 것이다.

모든 가구 전용 31㎡로만 구성

상계주공 5단지의 높은 분담금은 단지 자체의 특징 때문이다. 이 단지는 기존 용적률이 93%로, 모든 가구가 전용 31㎡로만 구성돼 있다. 기존에 아주 작은 대지를 보유한 소유주가 모두 전용 84㎡를 받겠다고 나서니 당연히 가격이 뛸 수밖에 없다. 재건축 사업의 수익성과 직결되는 일반분양도 없다. 996가구 중 840가구는 분양물량, 156가구는 공공임대다. 일반분양 물량이 없는 1 대 1 재건축 방식이다. “별다른 수익도 없이 집 크기를 2.5배 키운다는데 분담금이 안 나오는 게 오히려 말이 안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무더기 현금청산 기로 놓인 상계주공5…영끌족 비명 왜
어찌 됐든 소유주들은 집값 수준만큼 분담금을 내야 재건축이 가능하다는 현실에 당황했다. 분담금이 높아지면 상당수 기존 소유주가 ‘현금 청산’을 당할 수 있어서다. 3.3㎡당 650만원으로 책정된 공사비와 48개월의 공사 기간 등을 놓고 GS건설과 갈등을 빚다 결국 지난해 말 시공계약을 해지한 이유다. GS건설은 조합 측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유례없는 공사비 폭등이 엎친 데 덮치며 분위기는 나아지지 않고 있다. 사업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강남권에서조차 시공사를 찾지 못하거나 경쟁입찰 없이 수의계약을 할 정도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3월 기준 건설공사비지수는 154.85(2015년 기준 100)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서울시, 사업성 보전위해 지원방안 꺼내

서울시는 상계주공5단지와 같이 재건축 사업이 표류 중인 단지의 사업성을 보전하기 위해 대대적인 지원방안을 꺼내 들었다. 공공기여 부담을 낮추고 기부채납 인센티브는 상향하는 게 골자다. 상계주공5단지 매매가가 다시 5억원을 회복하게 된 것도 서울시가 내놓은 지원방침 때문이다.

우선 1종→ 2종, 3종→ 준주거 상향 때 15% 부담해야 했던 공공기여를 10%로 낮춘다. ‘사업성 보정계수’라는 개념도 도입했다. 재건축 사업 내에 가구 수·지가·과밀 정도 등을 고려해 10~20% 수준인 허용용적률 인센티브 범위를 20~40%까지 늘려주겠다는 게 핵심이다. 보정계수는 노원구 등 강북권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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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사업에 미치는 영향을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더 우세하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새 시공사를 찾아도 공사비가 더 높을 가능성이 높다”며 “모든 상황이 잘 풀리면 분담금을 4억원까지 줄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나오지만 이마저도 불확실성이 크다”고 말했다. 상계주공5단지는 내년 초께 시공사 재선정을 추진할 방침이다.

노원구 상계동 일대는 양천구 목동과 함께 1980년대 대규모 주택공급을 위해 조성된 택지지구다. 1985~1989년 사이 노원구, 도봉구에 걸쳐 주공아파트 19개 단지가 들어섰다. 대부분은 재건축 연한인 30년을 훌쩍 넘겼지만 2020년 입주한 8단지(포레나 노원)를 제외하면 재건축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5단지를 포함해 상계주공4단지(2136가구)와 6단지(2600가구) 정도가 안전진단을 통과해 재건축 추진이 가시화됐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