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필 이끈 정명훈, 대가의 관록이 무엇인지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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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세종문화회관에서 '합창 교향곡' 공연
베토벤 삼중 협주곡에선 직접 피아노 연주
베토벤 삼중 협주곡에선 직접 피아노 연주
정명훈은 2015년에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직을 사임한 뒤 더 이상 특정 오케스트라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초대 수석객원지휘자(2012년부터)와 라 스칼라 필하모닉의 초대 명예음악감독(2023년부터),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명예음악감독(2015년부터) 등의 명예직은 여전히 보유하고 있다. 내게 ‘정명훈씨는 요즘 뭐 하시냐’고 묻는 분들이 있어서 이 자리를 빌어 간단히 정리해 봤다.
정명훈은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도쿄필)와도 특별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2001년 이래 이 오케스트라의 특별 예술고문으로 있으며, 2016년에는 명예음악감독 직위가 추가되었다. 서울시향을 떠난 직후에 이런 영예를 얻게 되어 지휘자 입장에서도 느낌이 남달랐을 것이다. 이런 귀한 인연에도 불구하고 정명훈과 도쿄필의 내한공연은 생각보다 무척 드물어서, 양자가 정식 단독 투어로 서울을 찾아온 것은 2005년 이후 19년 만의 일이다. 참으로 오래간만의 일인 만큼, 얼마나 준비를 철저히 한 무대일까 궁금해하며 공연을 참관했다. 베토벤의 작품으로만 채운 이번 공연에서 첫 곡은 ‘삼중 협주곡’이었다. 정명훈이 피아노를 겸해 연주했는데, 고전주의 시대 피아노 협주곡에서 지휘자가 피아노를 겸해 연주하는 일은 꽤 흔하지만 이 곡에서 그렇게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화제가 될 법했다. 정명훈은 지휘자로서뿐만 아니라 피아니스트로도 나머지 두 사람을 충실하게 뒷받침했고, 바이올리니스트 이지혜와 첼리스트 문태국은 서로 훌륭하게 조화를 이뤘다. 그윽한 첼로 선율로 시작한 2악장은 꿈꾸는 듯 흘러갔고, 3악장에서 독주자들이 전보다 힘을 주어 한결 생기가 도는 연주를 들려준 것도 인상적이었다. 2부 순서는 ‘합창 교향곡’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 ‘교향곡 제9번’이었다. 정명훈은 앞서 삼중 협주곡에서 그랬듯이 이 곡에서도 전통에 충실한 해석을 보여주었다. 이런 해석은 유럽이라면 몰라도 동아시아에서는 여전히 유효하며, 이는 공연이 끝난 뒤 객석의 반응에서도 여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전반 악장은 평이한 수준이었으나 지나치게 느리지 않으면서 카타빌레적인 느낌과 생동감을 잘 살려낸 3악장은 훌륭했고, 4악장에서 기악만으로 진행되는 전반부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듯하다. 4악장 후반부는 좀 복잡한 인상을 주었는데, 일단 가장 먼저 노래한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은 전반적으로는 경륜에 맞는 무게감을 보여주었으나 ‘환희여!’[Freunde] 부분에서는 지나치게 들뜨고 높은 소리로 어색함을 느끼게 했다.
테너 박승주는 일관되게 정석적인 가창을 들려주었고, 소프라노 황수미 역시 무척 낭랑하게 노래했는데 바로 옆에 선 메조소프라노 김정미와 균형이 잘 맞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다. 이 곡의 성악 밸런스 자체가 메조소프라노에게 좀 불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말이다. 도쿄필에 대해 말하자면, 현악은 전반적으로 훌륭했으나 금관은 일부 대목에서 실수가 있었고 목관도 이따금 설익은 음향을 들려주었으며 팀파니도 종종 어택이 불분명해 일류 오케스트라다운 기량이라고 하기는 좀 어려웠다. 그러나 이 모든 난점을 떠나 안정되게 공연을 이끌어간 정명훈의 관록이야말로 정말 대가다웠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공연이 끝난 후 청중의 열화 같은 성원에 보답해 다시 연주한 4악장 마지막 대목은 ‘앙코르’라는 말의 원래 뜻에 충실한 제스처였고 연주였다.
황진규 음악칼럼니스트
정명훈은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도쿄필)와도 특별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2001년 이래 이 오케스트라의 특별 예술고문으로 있으며, 2016년에는 명예음악감독 직위가 추가되었다. 서울시향을 떠난 직후에 이런 영예를 얻게 되어 지휘자 입장에서도 느낌이 남달랐을 것이다. 이런 귀한 인연에도 불구하고 정명훈과 도쿄필의 내한공연은 생각보다 무척 드물어서, 양자가 정식 단독 투어로 서울을 찾아온 것은 2005년 이후 19년 만의 일이다. 참으로 오래간만의 일인 만큼, 얼마나 준비를 철저히 한 무대일까 궁금해하며 공연을 참관했다. 베토벤의 작품으로만 채운 이번 공연에서 첫 곡은 ‘삼중 협주곡’이었다. 정명훈이 피아노를 겸해 연주했는데, 고전주의 시대 피아노 협주곡에서 지휘자가 피아노를 겸해 연주하는 일은 꽤 흔하지만 이 곡에서 그렇게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화제가 될 법했다. 정명훈은 지휘자로서뿐만 아니라 피아니스트로도 나머지 두 사람을 충실하게 뒷받침했고, 바이올리니스트 이지혜와 첼리스트 문태국은 서로 훌륭하게 조화를 이뤘다. 그윽한 첼로 선율로 시작한 2악장은 꿈꾸는 듯 흘러갔고, 3악장에서 독주자들이 전보다 힘을 주어 한결 생기가 도는 연주를 들려준 것도 인상적이었다. 2부 순서는 ‘합창 교향곡’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 ‘교향곡 제9번’이었다. 정명훈은 앞서 삼중 협주곡에서 그랬듯이 이 곡에서도 전통에 충실한 해석을 보여주었다. 이런 해석은 유럽이라면 몰라도 동아시아에서는 여전히 유효하며, 이는 공연이 끝난 뒤 객석의 반응에서도 여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전반 악장은 평이한 수준이었으나 지나치게 느리지 않으면서 카타빌레적인 느낌과 생동감을 잘 살려낸 3악장은 훌륭했고, 4악장에서 기악만으로 진행되는 전반부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듯하다. 4악장 후반부는 좀 복잡한 인상을 주었는데, 일단 가장 먼저 노래한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은 전반적으로는 경륜에 맞는 무게감을 보여주었으나 ‘환희여!’[Freunde] 부분에서는 지나치게 들뜨고 높은 소리로 어색함을 느끼게 했다.
테너 박승주는 일관되게 정석적인 가창을 들려주었고, 소프라노 황수미 역시 무척 낭랑하게 노래했는데 바로 옆에 선 메조소프라노 김정미와 균형이 잘 맞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다. 이 곡의 성악 밸런스 자체가 메조소프라노에게 좀 불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말이다. 도쿄필에 대해 말하자면, 현악은 전반적으로 훌륭했으나 금관은 일부 대목에서 실수가 있었고 목관도 이따금 설익은 음향을 들려주었으며 팀파니도 종종 어택이 불분명해 일류 오케스트라다운 기량이라고 하기는 좀 어려웠다. 그러나 이 모든 난점을 떠나 안정되게 공연을 이끌어간 정명훈의 관록이야말로 정말 대가다웠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공연이 끝난 후 청중의 열화 같은 성원에 보답해 다시 연주한 4악장 마지막 대목은 ‘앙코르’라는 말의 원래 뜻에 충실한 제스처였고 연주였다.
황진규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