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보잉의 굴욕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인근 에버렛에 있는 항공사 보잉의 공장 견학 프로그램 마지막 코스는 기념품숍이다. 티셔츠나 컵, 냉장고용 자석 기념품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If it’s not Boeing, I’m not going(보잉이 아니라면 가지 않겠다).” 영어 단어의 각운(라임)을 살려 세계 최대 항공사의 자존심을 재미있게 표현한 슬로건이다.

그런데 요즘 이 문구는 이렇게 패러디되고 있다. “If it’s Boeing, should I be going?(보잉인데, 가야 하나요?)” 보잉 항공기의 각종 사고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면서 승객들의 조롱거리로 전락한 것이다.

올 들어 보잉 항공기 사고는 벽두부터 꼬리를 물고 있다. 알래스카항공의 보잉 737 맥스 9 여객기가 5000m 상공 비행 중 동체에 냉장고만 한 구멍이 뚫려 비상착륙 하는 등 1월에만 다섯 차례 크고 작은 사고가 났다. 그 뒤로도 △운항 중 객실 연기 발생으로 회항 △착륙 중 활주로 이탈 △이륙 중 엔진 덮개 탈거로 회항하는 사고가 터졌다. 얼마 전에는 튀르키예와 세네갈에서도 이틀 새 세 건의 사고가 잇달아 발생, 국제적 망신을 샀다.

108년 전통의 보잉은 품질 최우선의 엔지니어 회사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러나 1996년 당시 금액으로만 133억달러를 들인 맥도널 더글러스 인수 뒤에는 수익 제일주의로 기조가 바뀌면서 품질 누수가 지속됐다는 분석이 많다. 예를 들어 엔지니어 대량 해고로 이전에는 15명이 하던 한 근무조의 품질 검수를 불과 한 명이 맡으면서 항공기의 문 고정 볼트가 빠진 채 출고되는 것과 같은 어이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의 반응은 냉정하다. 현재 보잉의 항공기 인도와 주문 건수는 후발 주자인 에어버스에 밀리고 있다. 주가 역시 에어버스가 연초 대비 15% 상승했는데 보잉은 28%나 떨어졌다. 엔지니어 경험이 없는 재무 전문가인 데이브 칼훈 회장은 잇단 사고의 책임을 지고 올 연말 중도 퇴임할 예정이다. 항공업계와 승객들은 보잉이 어떤 환골탈태를 보일지 새 경영진 구성을 주시하고 있다. 결국 답은 업의 본질 회복에 있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